"제가 이런 착한 일을 했는데 이 정도는 효행이랄 것도 없잖아요? 남들 다 이 정도는 하잖아요?"
이런 글이 아니다.
난 정말 아. 무. 것. 도. 한 게 없다. 이 글이 끝날까지 내가 효를 행한 일은 단 한 가지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 상장이 서쪽 현관에 떡하니 걸렸다. 무려 한 달 동안이나 걸려있었다. 실내화를 갈아 신을 때마다 상장을 본 친구들이 "오~ 효행상~" 하면서 놀리기도 하고, 때로는 진심 어린 감탄으로 나를 추켜세우기도 했다.
친구들의 의도가 어찌 됐든, 나는 효행의 '효'자만 나와도 싫었다. 그럴 때마다 얼굴이 시뻘게져서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무도 없는 밤에 몰래 혼자 학교에 와서 저 상장을 뜯어갈까 싶을 정도로, 한시라도 빨리 내 눈 앞에서 상장이 사라지길 간절히 바랬다.
그러니까 누구 맘대로! 내 허락도 없이! 나한테 효행상을 준거야?
거기에 걸린 효행상이 자꾸만 나를 꾸짖는 것 같았다.
자식은 부모님에게 말씀드려 설사 잘못을 고치지 않으시더라도 공경해야 한다. 속으로는 애태울지언정 부모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 논어 -
부모를 섬길 줄 모르는 사람과는 벗하지 말라. 그는 인간의 첫걸음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 소크라테스 -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 성경 -
부모가 어떠하든지 자식이라면 응당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도리이거늘.. 악법도 법이라던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악한 부모도 부모니까 공경하고 효도하는 것이 자식 된 의무인데..
너보다 더한 환경, 더한 부모 밑에서도 군말 없이 효도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넌 그게 최선이야? 가족들이 너를 서럽게 만든다고 너도 똑같이 그래도 되는 거야?
분명 저 상장은 눈도 없고 입도 없는데 자꾸만 나를 비난하는 것 같았다. 그 상장 앞에 서면 자꾸만 내가 작아졌다. 초라해지는 나 자신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굳이 멀리 돌아 다른 현관에 가서 신발을 갈아신었다.
어쩌다 내가 효행상을 받게 된 걸까? 그래, 대충 예상은 된다. 새 학년이 되면 매번 적어내는 가족사항 조사에서 (엄마 없음), 아버지 (직업) 무직, 할머니 무직, 할아버지 무직을 써낸 나를 선생님께서 좀 더 눈여겨보셨겠지.
혹시나 말썽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됐던 아이가 반에서 1등을 하고, 학교 행사 준비를 할 때면 밤늦게까지 남아서 선생님을 도와드리고 친구들이랑도 잘 지냈으니.. 집에서도 응당 착한 아이겠거니 추측하셨겠지.
(나로서는 집에 가는 것보다 학교에서 노는 게 더 재밌어서 그랬던 건데..)
상장 속에 적힌 내용처럼 '품행이 단정하고, 웃어른에게 잘하고, 모범적'이라서 주는 거라면 차라리 모범상이라고 하든가.. 집에서 누가 진짜 부모님께 잘하는지 알 수가 없는데 애초에 효행상은 누가 만든 거야?
어느덧 중학교 졸업식날이 되었다. 예행연습을 하기 위해 전교생이 운동장에 줄을 서고 있었는데 마이크에서 내 이름이 울려 퍼졌다.
"3학년 6반 정혜원, 구령대 위로 올라오세요!"
뭐지? 영문을 모른 채 계단을 올라갔다. 그리곤 뭔지도 모를 상장을 받고 나서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교장선생님과 전교생에게 인사하는 연습을 했다. 중학교 3년 내내 한 번도 구령대에서 상을 받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 날 하루에만 3개나 받게 되었다. 한 번에 다 받은 것도 아니고 각각 따로 받았기에, 나는 3번이나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결국 또 효행상! 바로 그 녀석이었다. 나를 한 달 내내 괴롭힌 것도 모자라 이젠 졸업식까지!
그건 가짜 상이 었다. 이 상장의 진짜 임자는 내가 아니었으니 하나도 자랑스럽지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창피했다. 내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계단을 뛰어 올라가서 교장선생님 앞에 서면 전교생이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와~ 상을 3번이나 받아?쟤 누구야? 쟤가 그렇게 착한 애야?"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어버이날을 맞아 학교에서 카네이션 꽃을 만들면, 친구들이 자기 것도 만들어달라고 할 정도로 예쁘게 카네이션을 만들고선 할머니께 드리기가 부끄러워서 내내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며칠 뒤 책들 사이에 끼여서 잔뜩 구겨진 카네이션은 결국 예정되었던 주인 손에 닿지도 못한 채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다른 어른들에게는 "감사합니다." 꼬박꼬박 인사도 잘하면서 집에서는 그런 말들이 왜 그렇게 낯간지럽게 느껴졌는지..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누군가가 효도한 순서대로 전교생을 한 줄을 세워놓으면 난 오히려 꼴찌일지도 몰랐다. 가족들과 따스한 포옹 한번 주고받은 기억이 없었던 내가 전교생의 대표가 되어 상을 받았다.
심지어 그 날 졸업식에는 우리 가족들이 아무도 초대되지 않았다. 엄마 없는 걸 친구들이 알게 될까 봐 걱정이 됐던 나는, 그 날 아침에도 졸업식 금방 끝나고 집에 오니까 안 오셔도 된다고 한사코 할머니를 말렸다. 그렇게 나는 꽃다발도 없이, 그 흔한 졸업 사진 한 장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이 상을 가져가면 '학교에 그렇게 효행상 받을 애가 없었니?' 라며 할머니가 속으로 웃지나 않을까...
내 생각에 '효심이 지극하다'는 건 부모가 효도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따지지 않고, 부모에게 미운 감정이나 억울한 마음을 품지 않고, 부모님이 해주신 것들이 아주 작을지라도 그저 감사해하는 거였다.
효심 깊은 심청이는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도 뛰어들었는데,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소한 잘못들도 너그러이 용서하지 못했다.
나는 지극히 평범하거나, 아니면 평범에 조금 못 미치는 사춘기 소녀였다. 내 맘은 잘 알지도 못한다고 짜증을 내고, 성질도 부렸다. 내가 남들보다 짜증을 더 냈으면 냈지, 절대 덜 한 것 같진 않았다. 세대차이, 성격차이는 생각보다 더 나를 많이 힘들게 했다. 가족들이 준 상처들은 가슴속에 깊이 새겨졌고, 잘해준 것들은 까마득히 잊혀졌다.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그 화목한 분위기가 부러웠다.
나도 저런 부모 밑에서 자랐으면 좀 더 구김살이 없었을 것 같은데, 좀 더 너그럽고 용서를 잘하는 사람이 됐을 것 같은데, 훨씬 더 사랑 넘치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마음속 아쉬움은 커져만 갔다.
차라리 누군가가 내 잘못을 지적하면, "우리 집에서 한번 살아봤어요?" 라며 억울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히려 전교생 앞에서 '잘했다, 잘했다' 칭찬하며 국회의원 표창에, 부상(국회의원 이름이 적힌 손목시계)에, 10만 원이라는 장학금까지 쥐어주니 내 속이 편할 리가 없었다.
차라리 이런 상을 주지 않았더라면, 내가 할머니께 포달을 좀 부리더라도 사춘기 시절에 이런 가정환경을 견디고 있는 사람은 이 정도 짜증쯤은 낼 수도 있다며 변명하거나 스스로를 합리화시킬 수도 있었을 텐데..
'이러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살아계실 때 잘해드리지 못한 걸 분명 후회할 거야.'
늘 가슴 한편에 그런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잘해야지, 화가 나도 참고 잘 지내야지.'라며 현관문 앞에서 매번 다짐을 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제와 다를 것 없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웠다.
잘해야 하는 걸알면서도 끝끝내 고쳐지지 않는 내 완악한 마음이 미웠다. 하지만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면 제멋대로 가버린 마음이 벌써 실컷 성질을 부리고 난 뒤였다. 그리고 나는 뒤돌아서 또 후회했다.
아빠가 너무 무서워서 아빠에게는 찍소리도 낸 적이 없었다. 아빠 때문에 화가 날 때도, 내게 주어진 삶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져서 세상이 미워질 때도, 갈 곳을 잃은 나의 분노는 애꿎은 할머니에게, 만만한 할머니에게 다 쏟아졌다.
누군가의 품에서 실컷 울 수 있다면, 누군가가 나에게 맘껏 울어도 괜찮다고 토닥여준다면 좋겠는데..
그런 품이 아쉬워질 때마다 괜히 더 할머니가 미워졌던 건 아니었을까..
사실은 내가 가장 기대고 싶었던 사람이 바로 할머니였으니까..
남들 눈에는 누구보다 화려한 나의 졸업식이었지만 나는 그 왕관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