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나서 혼자서도 잘 큰 줄 알았지 #1

나는 우리 가족이 미웠다

by shining days

"나중에 꼭 너랑 똑같은 자식 낳아봐라."

할머니가 서운하단 듯이 말했다.


"나 닮으면 알아서 제 앞가림 잘하고 좋지."

그때 나는 내가 잘나서, 부모 도움 없이도 혼자서 잘~ 큰 줄 알았다.


그랬던 내가 어느덧 두 아들의 엄마가 되었다.

미혼에서 결혼까지는 28년이 걸렸는데 아내에서 엄마가 되는 건 금방이었다.


차가 좁아서 앞 좌석에 아이들 발이 닿는다.

결혼할 때 중고로 샀던 스파크를 6년째 타고 있다. 경차라서 안이 매우 비좁다 보니 첫째는 차를 타면 앞자리를 발로 쿵쿵 찬다. 둘째도 조금만 더 크면 짜증 내고 불편해할 것 같아서 걱정이다. 흙수저라 불리는 우리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영혼까지 끌어 모아야 하는데.. 당장 차를 바꿀 수 있는 여윳돈이 없어서 차 탈마다 애들에게 미안해진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사소한 것에도 미안하고 속상한 일 투성이다. 최근엔 놀이터에서 다른 아이들의 멋진 옷과 장난감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 집엔 저렇게 큰 변신 로봇이 없는데.. 자기만 없다고 속상해하지 않을까?

"친구 로봇이 멋있네."

슬며시 아이의 눈치를 살폈다.


"나는 집에 엄청 큰~ 소방차 있다~~"

아이가 자랑하는걸 보며 혼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야..


오랜만에 집 안 구석구석 대청소를 하니 아이가 소리쳤다.

"우와~ 우리 집 엄청 커. 장난감도 진짜 많아."


4살인 첫째한테는 좁은 14평짜리 임대아파트도 넓게 느껴지나 보다. 장난감도 물려받거나 장난감 도서관에서 빌려 쓰는 게 대부분인데 아이는 고맙게도 불평 없이 잘 논다. 최근에는 당근 마켓으로 구입한 중고 공룡 장난감을 받으러 가면서 예쁘게 인사한다.

"엄마, 아빠. 새 장난감 사주셔서 감사해요."


나중에 아이가 커서 더 많은 걸 알게 되면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상처를 받지 않을까, 엘사(LH 임대파 아트에 사는 사람)라는 말로 놀림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꼭 더 넓고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가야지.



술 마시느라 일을 안 해도, 돈 걱정은 안 했던 우리 아빠를 닮았을까? 아니면 없이 사는 삶에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었을까? 아이를 낳기 전엔 나는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공무원 첫 월급에 동기들은 너무 적다고 푸념을 할 때도 나는 경제적 독립을 이뤘다는 것에 감격스러웠다. 남들보다 아껴 쓰면 되지. 그건 내가 아주 잘하는 일이니까. 매달 꼬박꼬박 들어올 월급 생각에 마음이 든든했다.


그동안 집에서 누구 하나 제대로 돈 버는 사람이 없었다. 다 쓰러져가는 오래된 단독주택에 살면서 아랫집의 월세를 받았고, 고모들이 조금씩 생활비를 보태줬다. 그 돈으로 아빠, 나, 할머니, 할아버지 네 식구가 다 먹고살았는데 이 정도 월급도 감지덕지였다.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자신의 아픈 몸보다 병원비 걱정을 먼저 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다.


가난한 집에서 자라면서 맛있는 고기반찬은 없었지만 굶은 적은 없었다. 매일 똑같은 옷만 입는다고 친구들이 뒤에서 수군대기도 했지만 한 겨울에 입을 따뜻한 패딩이 없어서 감기에 걸린 적은 없었다. 남 보기에 번듯한 것들은 아니었지만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은 다 있었다.


그래, 그 없는 형편에 내가 살아온 것 자체가 기적이었지. 대학도 가고, 내가 하고 싶던 공부도 하고, 원하던 직장도 가게 됐으니 이만하면 됐다 싶었다. 지금 내가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자꾸만 욕심이 생긴다. 더 큰 차를 사고 싶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싶다. 지나가다가 예쁜 옷을 보면 우리 아이도 멋지게 차려 입혀주고 싶고, 내 아이만은 돈 때문에 속상한 일을 겪지 않길 바랬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이 걸스카우트나 아람단을 하면서 멋진 단복을 입고 학교에서 캠핑하던 날, 나는 부럽고 속상한 마음에 집에서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학교 합창단에서 리더를 맡았던 내가 너무나 하고 싶던 시립합창단에 지원하지 못했다. 이게 다, 그놈의 돈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몇 푼 되지도 않는 돈 때문에 어린 나는 자꾸만 꿈을 접어야 했다. 가족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혼자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소리 내지 않으려 애쓰면서 오랫동안 울었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한쪽엔 아이를, 한쪽엔 육아서적을 끼고 살았다.


사랑을 듬뿍 받은 티가 나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마음에 날마다 육아서적을 읽었다. 시간만 나면 집 앞 도서관에서 책을 잔뜩 빌려왔고 도서관 육아 코너의 절반 이상을 다 읽었다. 엄마 없이 자란 나의 부족한 점을 책으로라도 채우고 싶었기에.. 쉴 시간, 잠잘 시간을 쪼개가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배우고 노력해서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수고를 감내하리라.


책을 읽을수록, 아이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었다. 날카로운 목소리로 혼내기보다 부드럽게 설명해주는 다정한 부모가 되고 싶었다. 우리 아이에겐, 무엇이든지 이 세상 최고의 것을 주고 싶은 마음. 그게 바로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러다 문득, 미웠던 우리 가족들이 생각났다. 우리 가족들도... 나를 키우며 그런 생각을 했을까? 난 가족들에게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아무것도 받은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상처만 많이 받았으니, 분명 빚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빚진 게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커 갈수록 서툴었던 우리 가족들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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