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잘나서 혼자서도 잘 큰 줄 알았지 #2

나는 우리 가족이 미웠다.

by shining days

부모님이 이혼하신 뒤로 할머니, 할아버지가 갓난아기였던 나를 키우셨다. 엄마 없는 불쌍한 어린것이 남들에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도록 더 큰 정성으로 키워주셨다. 친척 언니들이 입던 옷과 신발을 물려받았다. 교복을 사면 사은품으로 주는 가방으로 새 책가방을 대신했다.


그래도 수학여행날 아침엔, 고모가 용돈으로 주고 간 돈을 차곡 차곡 모아서 내 손에 5만원을 쥐어주셨다. 친구들 앞에서 돈 없다고 무시당하지 말고 남들처럼 똑같이 맛있는거 사먹으라고 했다. 가난해도, 엄마가 없어도 남들 앞에서 창피해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고 하셨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동네에서 같이 놀던 친구들이 학원을 다니게 되자 나도 친구들처럼 속셈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할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우리 집 형편에 피아노 학원, 속셈 학원을 둘 다 다닐 수가 없어서 다닌 지 얼마 안 된 피아노 학원을 그만뒀다.


얼마 후,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들어오는 아빠의 품에 커다랗고 길쭉한 박스가 있었다. 전자피아노였다.


'우리 아빠가 무슨 돈으로 이런 걸 가져왔지?'

술 취한 아빠가 돈도 내지 않고 사과를 집어갔다던 과일가게 아줌마 생각이 났다.


'혹시 이것도 술김에 가져온 걸까? 아니면 또 창피하게 고모부가 일하는 치과에 찾아가서 다짜고짜 돈 달라고 행패를 부렸을까?'

아무도 모르게 슬쩍 들고 오기엔 너무 컸다. 훔쳐온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피아노를 치고 싶어도 학원 끝나고 집에 오면 이미 깜깜한 밤이 되었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만나서 뛰어놀기 바빴다. 아빠는 기껏 비싼 돈 주고 사다 줘도 치지도 않는다며 가져온 지 한 달도 안 된 내 피아노를 들고나가버렸다.


'아니, 누가 언제 사달랬나? 치사하게 줬다 뺏으면서 변덕을 부릴 건 또 모야.'


환불해달라고 생떼를 부렸는지, 같이 술 마시는 삼촌들에게 그냥 줘버렸는지 피아노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다.

(집안 물건을 죄다 버리거나 나눠줘서 할머니 속터지게 하는 게 아빠의 특기였다.) 그 뒤로 피아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이지만 아빠가 일을 하면 돈을 주셨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비밀이라고 했다.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지만 어떨 땐 1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셨다. 한 푼 두 푼 아껴도 모자랄 판에 큰돈을 덥석 딸에게 주다니. 철없는 아빠는 우리 집의 힘든 사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여겼다.


그러던 내가 엄마가 되었다. 월급날이 되면 퇴근길에 애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고 기뻐 뛸 아이의 모습을 흐뭇하게 상상하며 집에 왔다. 엄마가 되어보니, 부모는 돈이 생기면 가장 먼저 자식을 떠올린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 아빠는 피아노 학원 가방이 없어진 걸 알 게 됐을 테고, 내가 좋아하던 피아노 학원을 그만둔 걸 뒤늦게 할머니에게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빈속에 깡술을 드셨을 아빠 생각이 났다. 그 때 변덕스러웠던 아빠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엄마 돈가스 먹고 싶어요. 빵도 사주세요"

첫째는 어린이집 하원 할 때마다 오늘 저녁에 먹고 싶은 걸 얘기한다. 내가 어릴 땐 갖고 싶은 것 앞에서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우리 아이는 내 눈치를 보지 않아서 그게 참 고맙다. 어린 자식이 부모에게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와 엄마가 사줄 거라는 확신에 찬 눈빛이 아주 맘에 든다.


아이에게 맛있는 걸 사줄 때마다 일찍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났다. 나는 아빠와 좋은 식당에서 그 흔한 외식 한 번 하지 못했다. 여름 휴가? 가족여행? 단 한번도 못 가봤다. 내가 4살 아이에게 벌써 몇 번이나 사줬던 케이크와 생일 선물들을 아빠는 평생 한 번도 해주지 못했다.


우리 아빠도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게 얼마나 많았을까. 그 미안함을 홀로 어떻게 견뎠을까. 엄마와 이혼 한 뒤로 딸을 외롭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더 많이 술을 마시던 아빠. 가슴속엔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딸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밖에 없는데 막상 입 밖으로 나오는 건 야단치는 말들 뿐이라서 속상한 마음에 또 한잔을 마시던 아빠.


아빠가 나 몰래 흘렸을 뜨거운 눈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청준 소설 '눈길'의 주인공처럼 나는 가족에게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다 내가 잘해서, 자수성가한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어느 것 하나 받지 않은 것이 없었다. 가족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갖지 못했을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60세 할머니가 어린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결심이었다. 우는 손녀를 달래기 위해 포대기를 두르고 둥가 둥가 노래를 부르는 동안 할머니의 허리는 점점 더 굽어져 갔다. 할머니는 몇 백 원, 몇 천 원을 아끼기 위해 가까운 슈퍼 대신 30분 거리의 먼 시장을 다녔다.


성치 않은 허리와 무릎으로 몇 걸음 가다 쉬다를 반복하던 우리 할머니.

손녀딸 대학 다닐 돈까지는 어떻게든 꼭 마련해주겠다고 맛있는 반찬 한번 마음 편히 드시지 못했던 할아버지.

술을 마실 때마다 입버릇처럼 "혜원아, 아빠가 못나서 미안하다." 나에게 용서를 구하던 불쌍한 우리 아빠.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 희생과 눈물을 먹고 자랐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내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까마득한 어린 시절부터 나 하나를 위해 고생해오신 수많은 날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주고도 더 해주지 못하는 걸 미안해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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