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했다, 이 문장에 한점 부끄럼 없는 시기가 있었다.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시간낭비처럼 느껴질 만큼 공부에만 매달렸고 100m를 달리는 속도로 5km, 10Km.. 마라톤의 끝을 향해 쉼 없이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체력이 달리기 시작했다. 입도 대지 않던 홍삼, 영양제를 챙겨 먹고 링거도 맞았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고, 늦게까지 잠 못 들고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는 일상이 하루 이틀 늘어갔다. 악주술에 걸린 사람처럼 시름시름 시들어갔다.
체온을 재니 37.8도였다. 매일 미열이 났고, 가만히 앉아 책을 읽다가 내용이 조금만 이해가 안 돼도 열이 떠서 찜질방에 온 사람처럼 얼굴이 벌게졌다. 상열하한. 상체로 혈액이 쏠리면서 식은땀이 나고 맥박이 빨라져 숨쉬기가 힘들었다가, 열기가 식은 뒤엔 한기가 돌아 몸이 떨리고 기진맥진한 상태가 됐다. 공부할 게 산더미라 마음이 조급한데몸이 제멋대로 반응해 버리니 읽던 책을 던져버리고 싶을 만큼 화딱지가 났다.
샐리의 법칙보단 머피의 법칙이 친숙한 삶이었다. 꼭 중요한 시점마다 일이 꼬였다. 수능을 앞두고는 아빠가 3개월 밖에 못 사실 거라고 시한부 판정을 받고(그러나 수능이 끝나자 멀쩡해지셨다),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는 급성췌장염으로 아빠가 병원에 실려가서 당분간 물도 마시면 안 된다고, 잘못하면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했다. 지방직 시험을 앞두고는 평생 연락 한번 없던 엄마가 갑자기 날 데려가겠다고 자꾸만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가 내 핸드폰 번호는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는데도, 그 후로 모르는 번호가 뜰 때마다 이게 스팸일까, 엄마일까 생각했다. 그러다 내가 다니는 학교를 알려줬다는 할머니의 말에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는 동안 학생처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발신자를 추측하게 됐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이젠 놀랍다기보단 '또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겉으로는 의연한 듯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선 날마다 무너졌다. 결심과는 달리 난 대단하지도, 강인하지도 않았고 요동치는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시험공부 밖에 없어서 계속했을 뿐, 고민할 선택지가 하나라도 더 있었다면 더 자주, 더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삶이란 게 중고품 같았다. 남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거, 언제 고장 날지 모르는 낡은 것들을 무더기로 쌓아 놓은 게 내 인생 같았다. 안정되고 반짝이는 게 내 삶에 있을까. 발버둥 쳐봤자 실패의 수레바퀴 안 일까.
"탈진 상태네요."
6개월간 아픈 원인을 못 찾다가,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 10 중에서 7-8이 정상범위인 신체기능이 내 몸은 전부 2-3였다. 꾀병이 아니라는 사실에 속이 후련했다.
"이 몸으로 많이 힘들었겠네요."
의사 선생님의 그 말이 내 고생과 애씀을 알아봐 주는 것 같아서 "힘내세요."보다 더 보드랍고 따뜻했다.
토요일 오후, 학생들이 빠져나간 학교는 평화로웠다. 햇살이 눈부시고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쾌청한 날씨에 뜨끈한 자판기 커피를 뽑아 들고 벤치에 혼자 앉았다. 머리 위로 보이는 나뭇잎 잎맥 하나하나를 천천히 관찰하다가 식곤증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차라리 교통사고나 당했으면 좋겠다.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만큼 가볍게. 아니다, 간단하게 오른손 깁스만 하는 게 제일 좋겠네. 그럼 시험을 보러 가지 않아도 될 텐데.
적당한 핑곗거리가 필요했다. 합격자 명단에서 내 수험번호를 검색했을 때 '더 이상 찾는 내용이 없습니다.'라는 팝업창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게, "넌 공부 잘하는데 왜 이리도 운이 없냐."라고 사람들이 인정해 줄 수 있게 면죄부를 갖고 싶었다. 지금까지의 실패와 내 무능력의 상관관계를 인정하기엔 억울함이 반이고, 두려움이 반이었다.
어린 왕자는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말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아무런 힘이 없다. 잠재력, 가능성, 최선의 노력, 어쩔 수 없는 사정, 사람들은 그런 것 따윈 믿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이력서의 한 줄이 될 수 없고 결과만이 세상을 설득할 수 있다. 하지만 내 손에 쥐고 있는 건 내게만 보이는 가벼운 가능성과 무거운 노력뿐이었다.
"공부 잘했던 애가 어쩌다 전문대를 갔대?"
오징어 게임의 조상우처럼, 내 영광은 과거형이었다.
행정학의 예산 파트만 보면 화가 치밀었다. 하루종일 붙잡고 늘어져 봐도 한 페이지를 못 넘길 때도 있었다.
"카페모카요, 휘핑크림 많이 올려주세요."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니 한도초과의 달달함이 필요했다. 엄청 매운 음식을 먹어서 위장을 정신 못 차리게도 해보고, 친구들과 수다 떨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맘껏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다시 책상 앞에 앉으면 그 모든 상쾌함은 무용지물이 됐다.
30분도 앉아있지 못하고 다시 일어나 복도 끝에 있는 자판기 버튼을 꾹 눌렀다. 위잉 하면서 종이컵이 내려오고 갈색 커피가 채워지는 동안 자판기 빨간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벌써 세 번째 커피였다.
'결국 스트레스를 이길 방법은 공부 밖에 없구나. 이 파트를 습득해야 끝이 나겠구나.'
돌고 돌아도 시험의 두려움을 넘어설 방법은 합격밖에 없었다. 지금 넘지 못하면 인생의 고비마다 또 완주하지 못하고 돌아설 것 같았다. 못했다, 못한다, 못할 것이다, 이대로 내 삶이 굳어질까 무서웠다.
상황 탓이 아니야. 재능이나 열심이 부족해서도 아냐. 두려움만 넘어서면 돼. 잘할 수 있다고, 나를 믿고 끝까지 밀고 나갈 뒷심이 필요해. 딱 한 끗 차이. 나에게 부족한 건 그 정도 차이일 뿐이야.
좌절의 습관, 딱 한 번만 넘으면 다 끝날 일이다. 얼마나 힘들었고,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 구구절절 남들한테 설명할 필요도 없다. 두 번도 말고, 세 번도 말고, 딱 한 번만 넘어 보자.
몇 번을 실패해도 괜찮아. 천천히 가도 돼. 에디슨의 전구처럼 수만 번을 실패한다 한들, 사람들은 내 마지막 성공만 기억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