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이 밝았다. 원룸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는 분주하게 옷을 갈아입고 가방에 성경책을 넣어 교회 갈 준비를 했다. 나는 혼자 게으름뱅이처럼 누워 밀린 잠을 자고 있었다.
이 꼴이 된 내 모습이 보기 싫었다. 하나님도 미웠다. 그래서 몇 주째 교회에 가지 않았다. 비몽사몽으로 이불을 어깨 끝까지 끌어올릴 때 할머니는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서며 말했다.
"혜원아, 다른 건 몰라도 교회는 나갔으면 좋겠다."
나는 뒤돌아 누운 채로 퉁명스럽고 조그맣게 알겠어, 대답했다.
갓난아기 때부터 포대기에 업혀 일요일마다 꼬박꼬박 교회 문턱을 넘나들었던 나였다. 여러 교회를 다녀보고 활발하게 교회 봉사도 했지만 오늘 와본 대형 교회의 분위기는 퍽 낯설었다. 완벽한 시스템이 오히려 차갑게 느껴진달까. 그래도 넓은 예배당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건 마음에 들었다. 지금 난 맘껏 삐뚤어져있고 이런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예배 시작 전까지 아직 10분이나 남아 있었다.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 하품을 한번 하고 저 멀리 우뚝 서 있는 십자가를 바라봤다. 예전이었으면 눈물이 먼저 났을 텐데, 이번엔 분노가 울컥 올라왔다. 그리곤 십자가를 향해 속으로 따지듯 물었다. 뭐가 문제예요?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시는 거예요?
내 평생 기도제목은 단 한 가지였다. 수능을 잘 보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우리 집에 돈이 많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없다. 유일한 바람은 '우리 아빠가 술을 그만 마시게 해 주세요'였다. 이제는 좀 나아지려나 기대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간절한 기도가 무색하게, 아빠는 더 망가져갔다. 술 끊으라고 알코올중독병원에 보냈더니 금주는커녕 안 피던 담배를 배워왔다. 이러다 죽을까 싶어 없는 살림에 무리해서 또 병원에 보내놨더니 다녀온 뒤로 욕하고 때리기까지 하며 견디기 힘들 만큼 난폭해져 갔다.
그래도 믿었다. 한낱 인간이 헤아리지 못할 거룩한 신의 뜻이 있겠지, 아직은 신이 계획하신 때가 아닌가 보다, 좀 더 기다려야 하나 보다. 그렇게 무조건적으로 이해하려 애쓰며 지난 20년을 보냈다.
하지만 믿음의 결과는 비참했다.
그래도 습관이 무서운지라 다시 교회를 매주 나가고 있었다. 그날은 얼마 전부터 광고했던 새 가족 초청주일이었다. 누군가가 강대상 위로 올라왔다.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저 사람이 누군지도 못 들었는데 어느새 그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는 어려서부터 노래를 아주 잘했다고 한다. 성가대에서 찬양을 하다가 주변 사람들이 유학을 권유했고, 그 말에 진짜로 미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생활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미국 땅을 밟고 있어도 대학 가는 길은 여전히 막막했다. 마지막 생활비까지 거의 다 떨어졌을 때 그는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절망스러웠던 그는 그날 밤 자기 전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1,000달러가 필요합니다. 제가 계속 미국에 있길 원하신다면 집세 낼 돈을 주세요."(정확한 금액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날 아침, 그는 일어나자마자 온 집안을 다 뒤졌다고 한다. 자신이 어제 기도한 것을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에 신이 1,000달러를 어디에 두셨을까, 베개 밑도 들춰보고 온 가구 밑을 샅샅이 뒤져보았다고 했다. (나에겐 이 부분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집 안 어디에도 숨겨진 돈은 없었다. 얼마 후 이 분의 상황을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이 건너 건너 은행 지점장을 소개해줬다. 은행 지점장이 돈을 빌려주려나 기대했지만 늘 그렇듯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공연을 한다면 자기가 은행 VIP 고객들에게 초청장을 보내줄 수는 있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고 공연준비에 최선을 다했고 그의 노래에 감명받은 고객들은 공연이 끝나고 그를 위한 후원금을 지불했다. 그 돈으로 미국에 좀 더 남아있을 수 있었다.
그가 준비해야 할 입시 시험 지정곡은 이탈리어로 된 노래였다. 개인 레슨은 커녕, 이탈리어조차 배울 수가 없어서 대형 음반판매점을 매일같이 들러 귀에 들리는 대로 발음을 옮겨 적었다. 시험 당일, 자신의 노래를 들은 다른 수험생이 실력을 칭찬하며, 어느 교수님께 레슨을 받았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는 속으로 웃으며 대답했다. CD로 들었다, 인마~
시험은 잘 봤지만 모으고 모아도 등록금 낼 돈이 부족했다고 한다. 이렇게 합격의 문턱에서 좌절하게 되는 건가 싶어 필요한 돈을 위해 기도하던 중에 버클리 음대에서 연락이 왔다. congratulation이라는 말과 함께 입학 장학생이 됐음을 알려줬고, 장학금은 자신에게 부족했던 딱 그 액수였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정신없이 쿵. 쿵. 쿵. 충격을 받았다. '시크릿'도 그렇고, 간절히 믿으면 우주의 기운이 돕는다는 식의 책들은 이미 여러 권 읽어봤었다. 그런데 저 정도로 믿는다고?
내 믿음은 늘 상식 선이었다. 내가 저렇게 철석같이 믿은 적이 있을까? 내게 필요한 돈이 반드시 채워질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저 사람에 비하면 내 기도는 그저 불안감을 덮기 위한 혼자만의 중얼거림이었다.
내 인생이 잘 될 거라고 진짜로 믿어본 적이 없었다. 기도하면서도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이번에는 이거 때문에, 어디가 아파서.. 이래서, 저래서.. 하나님, 이번에도 안될 것 같아요. 다음 기회를 노려볼게요. 내 기도는 항상 이런 식으로 마무리됐던 것 같다.
진짜로 믿어보고 싶어졌다. 한 번쯤은 제대로 믿어보고 싶었다. 처음으로 나를 위해, 시험에 붙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번엔 지구가 두쪽이 나도 합격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짧게 성경책을 읽고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다.
'오늘 본 내용을 다 기억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러면 진짜로 전부 기억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예전처럼 공부하면서 불안하지도, 잡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나중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기도를 바꿨다. 합격 커트라인에 간당간당하게 붙는 거 말고, 기왕 붙는 거 아주 높은 점수로 합격하게 해달라고. 그리고 그것 또한 반드시 이루어질 거라고 믿었다.
낯선 교회에서 들은 그날의 이야기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고 불모지에서 피어난 희망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순신 장군의 말처럼, 솔개가 자신의 발톱을 뽑고 다시 날아오르는 순간처럼, 나에게도 아직 기회가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