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심리상태를 대변해주는 신체적 증상
초반에 화농성 여드름에 관해 언급하다 보니 약간은 다소 거북한 표현이 나올 수 있는데 응축되어 있는 마음속 응어리들이 표출되는 현상을 빗대어 표현하고 싶었음을 감안하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상처가 오래 지속될수록 염증이 심해지면 고름이 발생하기도 한다. 어릴 적에도 피부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얼굴에 화농성 여드름(일명 성인 여드름)이 올라올 때가 있는데 고름이 찰 때까지 기다리거나 가끔은 손으로 짜는 경우도 더러 있다. 특히 며칠 동안 수면과 식단이 엉망인 상태일 때 울긋불긋 자주 올라오곤 하는데 여드름의 크기가 클수록 하루 종일 찝찝한 기분으로 신경이 쓰이곤 한다.
얼마 전, 거울을 보는데 볼 쪽에 난 왕여드름이 유독 잘 가라앉지 않는 것 같아 신경이 쓰이던 와중에 평소 같았으면 건드리거나 손으로 짤 생각을 안 했겠지만 그날따라 유독 심리적으로 많이 힘든 날이었어서 ‘에라 모르겠다’라는 생각으로 세안을 한 뒤 양손으로 짜는데 “파팟!” 하고 고름이 터지면서 피가 쉴 새 없이 나오는 것이었다.
염증이 터지면서 피가 나오는 것이니 당연한 증상이겠지만 그날따라 나오는 피가 유독 한이 맺혀 보이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그간 내 마음 상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대변해주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비단 여드름뿐만이 아니라 어떠한 형태든 마음속 응어리들이 한껏 응축되어 있다가 부풀어 오르면서 손이나 외부 자극으로 인해 봇물 터지듯 그간 쌓였던 설움들이 한 번에 복받치듯 올라올 때면 한동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서러움에 휩싸이곤 한다. 서러움의 근간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것에 대한 속상함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흔히 어떤 일이 생길 기미가 보일 때 '전조(前兆)'라는 표현을 사용하듯 극한의 상황, 혹은 감정이 극에 치닫기 전에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릴 수 있으면 미리 대비할 수 있고 몸에게 쉼이나 휴식을 취함으로써 보다 빨리 안정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내면의 감정’을 알아차리려고 하는 과정이 어찌 보면 사치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감정은 스멀스멀 올라오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폭발하면서 그제야 내 심리상태와 몸 컨디션을 인지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마치 ‘활화산'처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일상을 살아가다 결국 스스로의 몫을 감내하지 못하고 폭발하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지난 2년간의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제한된 가이드라인 안에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생기며 외부적/내부적으로 힘든 시간들을 보내왔다. '코로나 우울(코로나 블루)'라는 단어가 생겨났을 정도로 '우울'이라는 감정이 만연해진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내면의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경우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
몸과 마음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만큼 어느 한 곳이 고장 나면 연달아서 여기저기 아프게 되듯 바쁜 삶 속에서 따로 시간을 내서 건강을 신경 쓴다는 것이 정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오늘 밤 자기 전, 한번 내 몸과 마음을 살펴보는 잠깐의 시간이라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은은한 조명을 켜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든, 명상을 하든, 몸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하든 조용한 공간에서 본인이 선호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나 역시 아직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날이 훨씬 더 많지만 글을 쓰면서 잠깐이나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보다 긍정적인 생각의 회로로 바꿔보려고 한다. 지난날의 나의 모습을 후회하기보단 따뜻한 한마디와 함께 토닥토닥해줄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주제의 글을 쓰면서 예전에 읽었던 마음과 관련된 독립출판 서적이 생각나서 핸드폰 갤러리에서 한참 찾던 도중 <마음에도 파스를 붙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 김봉철> 책을 찾을 수 있었는데, 책 제목처럼 우리 마음에 상처가 났을 때 염증이 심해지거나 고름이 차기 전, 파스나 연고를 발라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부에 상처가 나면 연고를 발라 딱지가 앉으면서 자연스럽게 회복되듯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지만 잘 돌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