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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 ttuk Jan 10. 2022

각자에게 '빛났던 시절'은 언제인가요?

다양한 '사회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성장할 수 있었던 스무 살의 기억



  얼마 전 데일리 루틴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플랫폼인 <밑미> '나를 껴안는 글쓰기' 클래스에서 나의 빛나는 시절에 적어보는 시간을 가진 적이 있었다. '빛나는 시절'이라 함은 꼭 대단한 성과를 이뤘다거나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이 가득했던 기억이라기 보단 사소한 기억이라도 유독 마음속 한켠에 자리 잡은 경험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잘 헤쳐나갈 수 있었던 나의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심리상담사이자 모임을 이끌어주시는 호스트분께서 '빛나는 존재'라는 건 어쩌면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일 수도 있다고 했는데 힘든 상황 속에서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큰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난 20대를 돌아보았을 때 가장 크게 느껴지는 ‘성장의 기점’이 언제였을까 생각해보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스무 살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당시 고등학교 학창 시절 내내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느라 학교 출석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졸업 후 대학이라는 ‘조직’에 적응하기엔 엄청난 부담감으로 다가왔었다. 대부분의 그 나이 또래들이 경험하는 긴 수험생활이 끝남과 동시에 일종의 ‘해방’으로 느껴지는 신입생 캠퍼스 생활은 나에게는 먼 이야기처럼 들렸고 더욱 큰 집단에서 주어진 ‘자유'와 '자율'적인 시스템 하에 방황을 하다가 결국 한 달도 안돼서 휴학이라는 수단을 선택했다.


보통은 입학하자마자 휴학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에 나에겐 굉장한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휴학계를 내면서 오로지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1년이라는 기간을 스스로에게 '배팅' 하듯 도전했다.



"사회경험을 다양하게 쌓고 조금 더 단단해진 나로 성장해서 돌아오자"



옛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클라우드 사진첩을 찾아보던 도중 당시에 쓰던 dslr 카메라와 제주도 올레길 투어시 찍었던 스탬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마인드 하나로 보다 다양한 경험을 하기 위한 아르바이트와 같은 경제활동부터 한동안 놓았던 공부를 다시 해보기 위해 비교적 접근성이 높지 않은 토익으로 시험까지 응시해보면서 처참한 영어점수와 함께 현실을 깨닫기도 하고, '스펙'과 '경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도전하게 된 대외활동, DSLR 카메라 하나 어깨에 메고 버스로 갈 수 있는 서울 근교 벽화마을부터(카메라를 가지고 뚜벅이가 돌아다니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나중에는 조금 더 용기 내 제주도 올레길도 하루에 몇십 킬로씩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대외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다!


혼자서만의 시간만 가진 것은 아니다. 사회경험을 쌓기 위해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의 만남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지금도 대학생들이 많이 찾는 플랫폼인 스펙업, 아웃캠퍼스와 같은 사이트에서 다양한 종류의 동아리를 보면서 우선 나에게 가장 적합한 성격의 모임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중·고등학생 때의 동아리 경험도 전무했던지라 수없이 서류와 면접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그렇게 스무 살의 막바지쯤 나에게 있어 정말 잊을 수 없는 소중한 동아리인 장애인식개선 캠프 기획단 '달고나'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서른 명 가까이 되는 대학생 단원들 사이에서 막내였던 나는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형, 누나들 사이에서 사랑을 듬뿍듬뿍 받으며 프로그램을 기획해보고 2박 3일간의 캠프에서 장애인·비장애인 친구들의 조장 역할도 맡아보면서 차츰차츰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달고나를 통해 대외활동에 눈을 뜨기 시작한 이후로는 평소 잘 몰랐던 분야나 진로선택을 위해 심화과정처럼 보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졸업 전, 마지막 학기까지 약 7개의 교외활동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대외활동에 대해 꿀팁을 전수해주는 멘토 느낌으로 인터뷰이(interviewee)로도 참여해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매력을 전파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순탄치 만은 않았던 휴학 생활, 업무에서 거듭되는 실수, 넘어짐과 일어섬의 반복을 통해 보다 단단해지는 과정을 겪다.


 휴학 후 다양한 경험을 해보기 위해선 금전적 도움도 필요했기 때문에 고3 수험생활이 끝남과 동시에 이마트 캐셔로 시작해 각종 식음료 업장에서 소비자가 아닌 ‘피고용인’ 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과 돈을 바라보는 경제적 관념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남들보다 한 박자 늦은 ‘상황판단력’, 서비스 업종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신속함’이 보청기 착용으로 인해 순간순간 정확하게 듣지 못해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곤 했다. 그때마다 '아직 깨지면서 배우는 시기이다'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했지만 남들보다 시간을 더 투자해서 메모하고 계속 상기시키려고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아 좌절감을 많이 느꼈다.


학과수업, 대외활동, 아르바이트, 인턴 등 나에게 있어 '메모'는 정말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비단 아르바이트뿐만 아니라 그 이후 경험했던 산학실습과 인턴 경험에서도 '일을 잘 못하는' 캐릭터로 인식되면서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지와는 별개로 사수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었다. 사회생활을 이미 하고 있는 지인들에게 조언을 구해보기도 하고 공통적으로 지적받는 부분을 상기시키면서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메모와 같은 기록 습관으로 고쳐나가고자 했지만 예기치 못한 컨디션의 난조까지 겹칠 때면 속절없이 무너지곤 했다.


어쩌면 또래 친구들보다 출발선이 늦었기에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남들보다  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심리상담과 컨디션 관리에도 신경을 쓰면서 넘어지 다시 일어서고, 때로는 ‘능력’하다는 생각에 좌절하면서 다시 회복되는 데까지 오래 걸리는 날도 있었지만 늘 그랬듯,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며 정진해온  같다.


그때는 그저 ‘스펀지’처럼 흡수하기 바빴기에 미처 인식하지 못했지만 스무 살의 휴학 생활은 분명 지금의 내가 존재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 중 도약을 쌓기 위한 정말 중요한 ‘발판’ 역할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청소년기에 확립하지 못한 ‘자아’를 조금씩 찾아가며 흰 도화지에 다양한 색을 칠해보듯 다양한 경험을 통해 보다 다채로운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1년간의 휴학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했을 때는 같은 과 동기 친구들도 한층 밝아져 있는 모습에 놀라기도 하면서 이제는 과거의 내 모습을 안주삼아 “너 진짜 많이 변한 거 알지? 대단하다..!” 라며 엄지를 치켜세워 주기도 한다. 새삼 뿌듯하기도 하면서 묵묵히 응원해준 친구들에게 고마은 마음이다.


과거에 비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과거의 어린 시절의 상처 입은 자아가 불쑥불쑥 튀어 올라올 때는 이제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어루어만져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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