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뚝 ttuk Aug 24. 2022

덜 들리지만 진심을 더 읽으려고 해요

보청기 착용으로 인해 불편함은 존재하지만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혹시 농인과 청인의 개념을 정확히 알고 계신가요? 농인은 청각에 장애가 있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으로 수어로 소통하고 청인은 청각 장애인에 상대하여, 청력의 소실이 거의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며 비장애인을 의미합니다. 


청각장애는 들을 수 있는 청력 데시벨을 기준으로 등급을 나누는데 (지금은 급수 제도가 없어지고 중증/경증으로 구분됩니다) 필자는 5살 때 고열로 인해 난청을 앓게 되었고 지금은 많이 회복되었지만 당시 2급으로 장애등급을 판정받았다(두 청력을 모두 잃어 아예 들리지 않을 경우 2급에 해당된다). 어머니는 다니던 직장에서 휴직계를 내고 몇 년 간 나의 언어치료를 위해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말을 튼 상태에서 입학할 수 있게끔 전력을 다해 힘을 쓰셨다. 덕분에 현재까지 보청기를 착용하면서 일상생활에 거의 지장 없이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할 수 있게 되었다.


5살 때 발병된 것이므로 장애등급을 판정받고 보청기를 착용하기까지의 과정은 사실상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매일 경기도 광명에서 서울 강남까지 왔다 갔다 하며 언어치료를 받고, 집에 와서는 어머니와 함께 반복 훈련을 했던 기억은 어렴풋이 난다. 그중 유독 기억이 선명하게 남는 장면이 있는데, 언어치료 수업이 끝나면 오디오 앞에서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카세트테이프로 녹음해서 듣고 따라 말하기를 수없이 반복한 장면이 떠오른다. 우리가 제2 외국어인 영어 듣기 공부를 할 때 모든 문장들이 생소하게 들리는 것처럼, 나에게는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글을 쓰게 되면서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어머니한테 직접 어린 시절의 모습을 물어보기도 했는데 곧잘 따라왔다는 말을 해주셨다. 이 모든 건 어머니가 휴직기간 동안 온전히 나의 언어치료에 힘써준 덕분일 테다. 장애를 극복한다는 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주어진 환경 아래 최선을 다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은 희망적인 부분이다.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지만 초중고를 일반학교를 졸업하여 성인이 될 때까지 수어를 접할일이 없었다. 그저 매체에서 수어를 접하게 될 때면, 같은 청각장애여도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없다는 사실이 가끔 생소하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결정적으로 졸업 후 취업을 하게 되면서 배리어프리 관련 업무를 맡게 될 일이 있었는데, 그때 수어 학습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청각장애인 분들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실시간 음성 번역기와 같은 보조수단의 도움이 필요했고, 영상 촬영 시에도 의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새삼 우리가 같은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소통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상황 자체가 낯설게 느껴지면서 '수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귀'가 돼주면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라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차별


 보청기를 착용하면 대화가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래도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불편함은 늘 존재해왔다. 필자가 착용한 보청기는 귓속형 보청기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어려웠고 최근에 새로 맞추게 된 블루투스 기능이 있는 보청기는 시중에 있는 블루투스 이어폰 디자인과 비슷해서 종종 오해가 발생하곤 한다. 예를 들어 잘 못 들어서 다시 한번 여쭤볼 때면 상대측에서 "왜 이어폰을 끼고 말을 하냐", "집중을 안 하냐"라는 식으로 쉽게 판단하고 내뱉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청각장애가 아니어도 경증 혹은 보이지 않는 부분이라면 비슷한 사례가 많을 것이다. 매번 확인하고 배려를 한다는 건 당연히 어렵겠지만,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심해주면 어떨까 싶다.


 게다가 장기화된 마스크 착용으로 인해 입모양을 보지 못해 잘 못 듣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그래도 필자는 보청기를 착용하면 듣는데 큰 무리는 없지만,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들의 경우(수어는 얼굴 표정이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손동작과 얼굴 표정을 함께 봐야 한다) 상대측에서 입모양이 보이는 립뷰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소통이 더욱 어렵다.


햇수로 26년, 거의 반 오십 세월을 함께해온 보청기이지만 여전히 일상에서 놓치는 부분은 빈번하게 발생하며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불편함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저 한번 더 설명하고, 한번 더 물어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존재할 뿐이다.



진심 어린 말이 가져다주는 힘


 늘 남들의 입모양을 더욱 주의 깊게 보며 대화를 했던 탓에 늘 내 목은 거북목처럼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그만큼 경청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게 되었다.


어쩌면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표정이 다양하다, 액션이 크다, 리액션이 좋다와 같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조금 더 잘 듣기 위해 경청하는 습관이 상대에게 진심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진심 어린 말에는 단단한 힘이 있다. 대화를 통해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형성하기까지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진심은 통하듯, 알고 지낸 세월이 흐를수록 진면모를 알아봐 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내 곁에 생겼다. 내면의 결핍이 건강한 자아로 형성하기까지,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일 것이다. 그래도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읽고 공감할 수 있다면 충분히 행복한 삶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진심이 담긴 말을 알아차릴 수 있는 기민함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글을 쓰면서 관련된 영상을 찾다가 유튜브 보관함에 저장해둔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국적도 인종도 다양한 16명의 농인들이 청인들에게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영상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장애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이 아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을 존중하자는 의미를 수어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인상 깊게 와닿았습니다.


< “들리는 사람들에게” 청각장애인 16인이 전하는 메시지 > 유튜브 영상



이전 05화 각자에게 '빛났던 시절'은 언제인가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