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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 ttuk May 14. 2022

순간, 순간의 기억을 잡아둔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며 인생이라는 서사를 들여다보다:


  포켓몬 빵 안에 들어있는 띠부띠부씰을 모으기 위해 물류차가 올 때까지 편의점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마지막 로그인이 언제인지도 기억 안나는 싸이월드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겨우 찾아가며 오랜만에 열어본 사진첩, 미디어에서 2010년대를 주름잡았던 2세대 아이돌의 컴백 등 우리는 5g 최첨단 디지털 시대에서 너무나 옛것이 돼버린 것들을 회상하며 그리워하곤 한다. 물론 리셀의 목적으로 사는 포켓몬빵과 각종 복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목적이 조금씩은 다를 순 있겠지만, 그때의 기억이 반갑고 마음속 몽글몽글한 감정이 올라오는 건 다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경주의 '피오르다' 카페에서 발견한 추억의 문구류들, 그리고 지인이 모은 포켓몬 띠부띠부씰.


 전에는 이렇게까지 반가웠었나 싶을 정도인데 요즘따라 어릴  사용했던 물건들, 특히 애장품처럼 항상 가지고 다녔던 문구류들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퍽퍽하고 버거운  속에 소소한 재미를 가져다주는 존재라고 해야 할까. 누구나  추억을 회상하면 향수에 젖곤 하겠지만 요즘은  자리에서 한참을 멍하니 바라볼 정도로 좀처럼 그리운 감정을 쉬이 떨쳐내지 못하기도 한다.


특정 세대만 지칭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90년대생으로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문명을 모두 경험해본 점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편지나 종이에 직접 손으로 꾹꾹 눌러 담아 쓰는 아날로그 감성부터 스마트폰으로 브런치 화면을 손으로 위아래로 스크롤하며 어디서든 쉽게 글을 볼 수 있는 환경까지, 우리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드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sns나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피로도가 쌓였을 때, 손글씨 편지나 다이어리•노트에 깨알같이 적혀있는 글씨들을 보면서 환기가 되는 느낌을 받곤 한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핸드폰의 갤러리 사진 개수만 약 32,000장이 될 정도로 평소 순간, 순간의 기억을 사진으로 담아두는 편인데, 가끔 아이폰 사진 앱 추억 기능과 엔드라이브에서 과거 사진들이(ex.8년 전의 오늘) 알람과 함께 뜨면 잊고 있었던 옛 추억들을 회상할 수 있어 괜히 설레는 마음으로 클릭해보게 된다. 최근에 화제가 되었던 싸이월드 사진첩 복구 소식도 너무 반가웠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는 심정으로 나의 흑역사가 가득 담긴 사진첩을 열어보는 기분이랄까. 그만큼 나에게 있어 사진은 순간, 순간을 기억하는 소중한 도구 중 하나이다.



   얼마 전 글쓰기 모임에서 어렸을 때 썼던 일기나 다이어리를 꺼내보며 그때의 나는 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회고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숙제가 아닌 자발적으로 속 이야기를 적어보기 시작한 것이 아마 고등학생 때부터였기에 10년이 훌쩍 넘은 시점에서 아직 보관하고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온갖 서랍을 뒤져가며 겨우 찾을 수 있었다. 하나씩 꺼내서 찬찬히 살펴보는데 우선 너덜너덜 해진 표지, 온갖 스티커와 형형 색깔의 펜들로 휘황찬란하게 적어놓은 흔적들이 눈에 띄었다. 다이어리 안에는 그날그날, 그날의 에피소드와 수많은 감정들을 보따리 풀듯 누구 한 명을 붙잡고 하소연하는 느낌이었다.


 수차례의 병원 입원과 퇴원 후 학교로 복귀하기까지 두려움과 불안함에 사로잡혀 있었던 날들, '해내야 된다', '이겨내야 한다'라는 강박적인 사고로 가득했었다. 그리고 하루의 마무리는 항상 비장한 각오로 매듭을 짓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걱정했던 부분들이 하루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굉장히 조급해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보던 도중,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간 스스로를 얼마나 옥죄어왔나 싶어 그때의 나에게 한마디라도 위로를 건네주고 싶었다.


 애쓰느라 고생 많았어. 많이 버거웠을 텐데.



어딘가에 의지할 곳 없이 늘 바짝 긴장된 상태로 홀로 우뚝 서있는 모습을 보며 지금의 내가 따뜻한 말을 건네줄 수 있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간 열심히 사는 게 정답인 것 마냥 스스로 몰아붙이며 살아왔다면 이제는 그 무게감을 조금은 내려놓고 다정하게 대하고 싶다.

 

시간이 많이 흐르기도 했지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많이 달라져있기에 오랜만에 보는 일기는 새삼 낯설고 신기하게 느껴지면서도 지금 겪고 있는 증상들과 오버랩되며 여전히 고민하는 지점은 비슷하구나 싶다.


과거의 일기와 사진들을 보면, 인생이라는 서사를 마치 한 폭의 파노라마 장면처럼 쫘-악 펼쳐서 보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살다 보면 노력해도 좀처럼 목표했던 결과들이 나오지 않아 속상할 때가 많은데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내가 이어지면서 퍼즐들이 한 조각, 한 조각 완성된다면 인생의 방향이 보다 뚜렷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앞으로도 글을 쓰면서 내 안의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나가고 싶은 바람이다.



(…) 사진을 현상해서 앨범에 넣기 전에는 어떤 버릇처럼 혹은 어떤 의식처럼 반복하는 행동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진의 뒷면에 사진을 찍은 날짜와 장소 그리고 사진을 찍을 때의 상황을 간략하게 기록하는 것입니다. 먼 곳까지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을 때, 여행지의 풍경은 담을 수 있지만 그곳까지 나를 따라온 고민이 무엇이었는지는 남지 않으니까요. 다시 말해 몸의 기록을 담는 사진과 함께 마음의 기록을 담는 글을 적어두는 것입니다.

<계절 산문, 박준>


우리가 기억을 소홀히 한다 해도 그 기억은 결코 우리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사람의 기억은 장소와 연결 지을 때 가장 오래도록 기억되고, 장소를 생각해내면 거기에 얽힌 사건이 연결된다.

- 철학자 알라이다 아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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