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상충되는 말이지만 그만큼 간절하기에..
"힘들다."
단 세 글자 만으로도 다양한 상황들과 의미들을 내포할 수 있다.
나에겐 대부분 힘이 너무 없어서, 극한의 무기력한 증상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는 상황을 의미한다.
힘이 없어서 힘이 들다는 말을 막상 받아 적으니 이만한 어폐가 있나 싶다.
대개는 사람들이 일이 많거나 힘에 부칠 때, 쉬고 싶은 의미에서 "힘들다"라는 말을 되뇌곤 하는데, 나의 경우는 힘이 너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하고 속상하다.
너무 힘들어서,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저 누워 있을 때면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들이 오간다. 아무도 날 안 찾았으면 좋겠고, 카톡도 문자도 어떤 알림도 울리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이 드는 한편, 누군가 내 손을 잡으며 묵묵히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
외롭고 적적한 마음에 데이팅 앱을 켜고 한 손으로 영혼 없이 화면을 쓸어 넘겨보지만, 그렇다고 또 아무나 만나고 싶지는 않은 마음.
정신없고 휘황찬란한 sns 피드에 지쳐 sns를 탈퇴하고 싶은 마음.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단절되고 싶지는 않은 마음. 다른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긴 하지만 그 삶에 같이 동요되고 싶지 않은 마음.
힘들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잠깐 쉰다고 생각하자'라고 마음을 먹다가도 어느새 손에는 무언가가 잡혀있고,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으면서 전전긍긍해하는 내 모습.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불안을 다스려 보려고 하지만, 불안에 직면하면 할수록 불안의 불씨가 점점 커져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는 심장박동과 함께 거칠어지는 숨소리.
조금 호전이 되나 싶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허우적.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삶이 이제는 너무 지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가도 그간 해왔던 것들이 아까워서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어폐와 모순이 가득한 마음속에는 그만큼 낫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한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끊임없이 스스로를 굴리고 또 굴리면서 아등바등 버텨나가고 있다.
얼마 전 화제리에 종영했던 영화 「헤어질 결심」 에서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을 모순되는 표현을 통해 상대에게 진심을 전달하는 대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세상 속에서 사라지고 싶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잊혀지고 싶지 않은 마음. 형사의 역할과 살인용인자라는 모순되는 존재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극 중 주인공의 심리를 디테일한 장면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담아냈다.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서래(극 중 여주 이름)는 죽음을 택하는 방법도 상대가 절대로 자신을 영영 찾지 못하게끔 자신을 제대로 각인시킨다. 어쩌면 죽기 직전까지도 혼자이고 싶지 않은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 아닐까 싶어 우리도 별다를 바 없는 비슷한 존재인 것 같아 마음 한켠이 아려왔다.
"당신이 사랑한다고 말할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어요"
「헤어질 결심」 극 중 송서래 대사
무엇이든 올 수 있고, 무엇이든 오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그것만큼은 꼭 좋겠다고 생각하는 모순
「불안의 쓸모」, 최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