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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 ttuk Jun 13. 2022

나에게는 13년 지기 반려견이 있다.

내 인생의 절반 가까이 동고동락해온 하나밖에 없는 동생




  얼마 전, 김연수 작가님의 단편집 <깊은 밤, 기린의 말>에서 자폐를 앓고 있는 태호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끔 도와준, 눈이 보이지 않는 강아지 '기린'의 이야기를 보면서 눈물을 슬쩍 훔쳤다. 구절구절마다 마음속 깊은 부분을 후비듯 아프게 다가왔다. '기린'이를 통해 태호의 밝고 명랑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듯, 앞이 보이지 않는 기린이에게도 태호는 눈과 귀 역할을 해주는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아픈 태호에게 소중한 친구를 만들어주고자 기린이를 데려왔던 것처럼 우리 '토미'도 어둡고 힘든 시기를 겪었던 고등학생 때 데려온 친구였다. 그렇게 우리는 소중한 가족이 되었고 서로에게 든든한 존재가 돼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동물적 감각으로 감정을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을 토미를 통해 배웠다. 너무 힘들어서 학교를 가지 못한 날, 집에서 혼자 우울해하며 서럽게 울고 있으면, 토미는 정말 내 마음을 아는 건지 쪼르르 와서 볼을 타고 흐르는 내 눈물을 혀로 핥아주면서 위로해주곤 했다. 부모님의 맞벌이와 누구에게도 의지할 곳 없었던 나에게 토미는 누구보다 큰 힘이 돼주었다. 그렇게 13년을 같이 살아왔고 어느덧 노견이 되어 어디 하나 성한 곳 없는 토미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바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토미랑 함께한 시간, 토미가 좋아하는 순간들



토미는 산책과 목욕을 시켜주는 아빠를 가장 좋아한다. 특히 주말에 아빠가 집에서 쉬는 날이면 단 한시도 아빠 곁을 떠나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에도, 문서작업을 할 때에도, 피아노를 칠 때도, TV를 볼 때도 정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잠시라도 자리를 뜨게 되면 아빠 꽁무니를 그렇게 졸래졸래 따라다녔다.


자는 것도 꼭 사람같이 잔다. 아빠가 팔을 뻗는 시늉을 하면 본인만의 "준비~ 땅!" 신호와 함께 침대로 폴짝! 뛰어올라 어느새 이불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아빠의 팔을 배게 삼아 눕는다. 그렇게 몇 분도 안돼서 금세 스르르 잠들곤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아빠 다음으로 순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내게도 토미를 사로잡을 수 있는 무기가 있다면 "코코 낸네~" 순간이다. 토미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인 사과와 수박을 줄 때를 제외하고는 이 시간만큼은 나에게 기꺼이 시간을 할애해준다. 서로의 따뜻한 품을 함께 하고 있으면 세상 그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긴다. 걱정과 불안함들이 눈 녹듯 사르르 사라지며 잠시나마 평온함을 느낄 수 있다. 눕는 동시에 한쪽 소매를 걷으면, 기다렸단 듯이 내 팔을 정신없이 할짝할짝 핥는다. 침대 한편에 핸드폰을 놓고 강아지들이 좋아하는 잔잔한 노래를 함께 틀어주면 토미도 금세 편안함을 느끼곤 한다.


토미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바라보고 있자면 속세의 것들에 얼룩덜룩 찌들어 있던 내 마음이 새하얗게 변하는 기분이다. 하얀 솜털로 가득한 얼굴에 반짝반짝 빛나는 바둑알 두 개가 나를 쳐다보고 있으면 세상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다.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상상하고 있으니 당장이라도 토미를 꽈-악 안아주고 싶다. 



토미에게 아픈 순간, 기억들


강아지는 소리에 예민하다. 밤중에는 더더욱 조그마한 소리에도 흠칫 놀라곤 한다. 평소에 악몽을 꾸면서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지르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토미가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어느 날은 무서워서 부모님이 계시는 안방으로 들어가 안겼다고 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부모님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면 속상한 마음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밀려오면서 어떻게 해야 하나 답답했었다. 최근 들어 급격히 심장 쪽이 안 좋아지면서 조그마한 자극에도 쉽게 흥분하며 콜록콜록 기침을 하곤 하는데 많은 원인 중 나의 잠버릇이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 않나 싶어 마음이 너무 아프다.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얼마 전, 천둥번개가 쳤었다. 대부분의 강아지들이 그렇듯 우리 토미도 가장 무서워하는 소리가 천둥 번개이다. 평소에는 그 어떤 소리에도 같이 맞대꾸하며 멍멍! 짖곤 했지만, 시커멓고 어두운 구름과 함께 우르르 쾅쾅 소리 앞에선 한없이 연약해지는 토미다. 그렇게 집에 있는 아무에게나 쪼르르 달려가 안긴다. 같이 있을 때야 언제든 안아주고 할 수 있지만 가족 모두 집을 비우는 날이면 혼자 무서워하고 있을 우리 토미가 마음에 걸린다. 보통은 불을 켜고 토미가 편안해하는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고 나오지만 미처 깜빡하고 나왔을 경우, 반나절 가까이 어둡고 조용한 집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누구든 가장 먼저 집에 도착하는 가족을 향해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며 안아달라고 짖는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불이 꺼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토미의 안위보다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한 부랴부랴 준비하던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며 후회되곤 한다. 같이 살아가는 반려견이라지만 늘 주인 위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지금은 본가에 있는 토미를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가끔 축 처져있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토미의 앞날을 반려견의 평균수명으로 재단할 수는 없겠지만 건강이 점점 악화됨에 따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듯,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최대한 편안한 환경에서 덜 아플 수 있도록 성심성의껏 더욱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강아지는 백수를 제일 좋아한다는 말이 있듯, 같이 보내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지금까지 토미에게 받았던 사랑을 더 늦기 전에 보답해야겠다. 






추신_ 이번 글은 다른 글을 쓸 때보다 몽글몽글, 간질간질한 마음으로 기분 좋게 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글을 열어볼 때마다 토미 사진을 보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지더군요 ◠‿◠ 여러분의 마음에도 간질간질한 마음이 전달되길 소망해봅니다.


화장실 잠깐 들어간 사이에 발수건에 쪼그려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던 우리 토미. 어쩜 이렇게 사랑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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