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맨발로 도망치다

그녀들의 목소리가 가닿기를

by 어찌

각자가 가진 ‘자원’과 ‘공간’들은 성장하고 살아나가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 안전하게 길러준 부모, 힘들 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지인, 취업에 도움이 되는 학력, 지친 몸을 편히 쉬게 할 집, 나의 신념을 지지해 주는 든든한 동료들, 고민되고 어려울 때 늘 곁에 있어주는 선배들 등 모두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원과 공간이 지금의 나를 존재하게 했다. 그런데 내가 ‘오늘 점심 식사비를 걱정’하며 생계에 쫓겼다면, ‘저녁 잘 곳이 없어’ 공간을 찾아 방황했다면, ‘술에 취한 아버지가 오늘도 때리진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떨며 안전을 걱정하는 삶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맨발로 도망치다』는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원을 가지지 못했던 여성청소년들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인 우에마 요코는 이들의 이야기를 인터뷰와 작가의 생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유카의 「집을 나와서 하는 집들이」, 어린 시절부터 계속된 친오빠의 폭력을 피해 17세에 결혼하고 출산을 하지만 1년 뒤 시어머니가 아이를 데려가고 이혼을 하게 되면서 방황을 했던 유카는 새로운 아이와 집이 생기면서 ‘친구들 초대해서 나베 파티 같은 거 한번 해보고 싶어’라고 소소한 희망을 밝힌다. 두 번째 이야기는 쓰바사의 「기념사진」이다. 쓰바사는 5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이들만 있는 집, 밥이 없는 집을 기억한다. 중학교 졸업 후 ‘아이에게만은 아빠와 엄마가 있는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어 결혼 하였지만 남편의 폭력으로 이혼한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게 어떤 건지,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남자가 아닌 친구를 통해 배웠다’며 이혼과정에 함께한 친구 미우와 독립된 삶을 꿈꾼다. 세 번째 이야기는 스즈노의「책가방에 드레스를 쑤셔 놓고」, 17세에 임신한 아이가 남자친구의 폭력으로 조산 후 뇌성마비로 태어난다. 스즈노는 자신의 폭력피해를 눈치 챈 한 간호사가 써준 ‘울고 싶을 때에는 소리 내서 마음껏 울어요. 울고 나면 왠지 힘이 날 테니까’ 쪽지를 간직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스즈노는 ‘나에게 당연한 일이었던 쇼핑이나 바다 여행 같은 것들을 아이에게도 해주고 싶다며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네 번째 이야기는 아야의「병원 대기실에서」, 15세 때 집단성폭력을 당하지만 사건을 은폐하려는 부모님으로 인해 아야는 보호받지 못했다. 아야는 당시 느낀 공포감에서 벗어나 내 몸을 내가 제어할 수 있다는 감각을 다시 되찾기 위해 혼자 힘으로 자신을 회복하려 애쓰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그때 그 사건은 그저 단편적인 조각으로 과거의 그 곳에 남아 있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교카의 「새 섬유유연재, 새가족」이다. 교카는 16세에 임신을 하게 되지만 남자친구는 ‘내 아이가 아니다’며 부정한다. 교카는 혼자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교카는 ‘남자는 이제 귀찮아. 싱글맘으로 살기로 정했어’라며 이야기할 정도로 당차기도 하지만, ‘울고 있을 때 괜찮냐고 물으면 더 울게 된다. 그냥 내버려두면 좋겠다’고 말하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기도 하다. 새로운 남자친구와 아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익혀나간다. 마지막 이야기는 하루나의 「찾지 말아요 안녕」,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의 이혼으로 수 주 동안 야간보육시설에 방치되었다가 아버지와 겨우 살게 되었다. 새어머니와 행복하게 지냈지만 또다시 아버지의 이혼과 재혼으로 하루나는 돌아갈 집이 사라진 후 가출하여 만난 가출팸의 ‘남자친구와 함께 지내면서 모든 감정을 느꼈다’고 말한다. 하루나는 남자친구를 비난하면서도 ‘자신의 과거를 모두 이해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여섯 명의 여성청소년들은 캬바쿠라에 일하는 캬바조이거나 원조교제를 통해 생계를 이어간다. 캬바조의 시급은 편의점 800엔보다 많은 2,000엔으로 특히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에게는 육아와 경제 활동을 병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의 직업이다. 자원이 부족한 십대 여성청소년들이 꼽은 장래직업 가운데 순위 안에 들어간다고 한다. 폭력적 상황에 노출된 십대소녀들의 상실감과 무력감은 이 짧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애원하고 울부짖어도 폭력은 멈추지 않는다’며, 우에마 요코는 ‘폭력을 당한다는 것’의 의미를 『맨발로 도망치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우선 몸을 깨끗이 씻기고 속싸게로 따뜻하게 감싸 포근하게 안아준다. 우리의 몸은 따스한 보살핌을 받았던 기억, 존재자체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몸이 억눌리고 두들겨 맞고 아무리 애원하고 울부짖어도 폭행이 멈추지 않는 상황에 놓이는 것. 폭력피해에 노출된 여성청소년들은 대부분 가난하고 고립된 환경에서 쉽게 도망칠 수 없기에 마음속 깊이 고독감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다. 언제든 맨발로도 도망칠 기회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참고 기다린다.


여성청소년들이 폭력적 공간에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에게 의존하여 살아가거나, 자신의 몸을 상품화하여 파는 일이다. 법적으로 캬바쿠라에는 19세 이하는 일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섯 명의 여성청소년들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캬바조로 일을 하였다. 이런 현실이 가능했던 것은 일부 남성들이 ‘어린 여성’의 몸을 원했고 언제나 댓가를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맨발로 도망친 여성청소년들이 갈 곳이 그 곳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일찍부터 카바조로 일하며 다른 경험을 충분히 하지 못한 여성청소년들의 독립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많은 카바조의 희망은 ‘괜찮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고, 시간이 흘러 캬바쿠라를 그만두게 될 때 또다시 맨발로 도망쳤던 시절로 돌아가 자원 없이 새로 시작해야하는 무력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세상에 캬바쿠라같은여성청소년들을 성적대상으로 소비하는 시장이 존재하지 않고 여성청소년들이 독립을 할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더 거슬러 올라 처음부터 폭력적인 시간과 공간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자랄 수 있었다면 이 여섯 명의 이야기는 어떻게 채워졌을까.


만약 내가 당시의 스즈노였다면 집에 들어오지 않는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의 아침을 차려주고, 점심 도시락을 싸주며, 집안환경이 어려우니 악착같이 공부해 스스로 환경을 개척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친구를 만나지 않고 장애 아동도 출산하지 않았을 수 있을까? 나 역시 결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시절부터 박탈된 삶의 ‘자원’과 안전한 ‘공간’이 결국 그 후 일어난 폭력적 상황에 대응할 ‘힘’을 빼앗고, 폭력의 연속선에 놓이게 만든다. 많은 이들이 폭력이 발생한 시점에만 주목하며 오히려 피해자에게 왜 잘못된 선택을 했는가, 왜 폭력에서 벗어나오지 못하고 순응하는가라고, 책임을 묻는다. 폭력의 연속선을 보지 않는 이런 사회의 시선은 피해자에게 낙인이 되어, 스스로를 자책하고 위축시킨다. 이것 또한 폭력을 연속시키는 더 큰 가해가 된다.


나는여성청소년들이 겪는 피해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된다. 가깝게는 반성매매활동가인 나의 정체성이다. 활동가로서 나는 많은 성매매피해여성들을 만난다. 여성들은 『맨발로 도망치다』의 여섯 명과 다름없이 십대 때부터 성매매에 지속 노출되어왔다. 여성들은 성매매기간이 오래될수록 고립된 경험을 더 많이 하였고, 가족은 물론이고 사회적 자원이 열악했다. 내가 만난 여성들 또한 어느 정도의 자원과 공간이 있었다면 오랜 기간 성매매업소에 일하는 대신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또다른 이유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이다. 자본주의사회에 사는 우리들은 ‘올라가긴 어려워도 내려오긴 쉬운 계급사회’ 안에 있으며, 나 역시 언제든 성매매여성의 자리에 위치할 수 있다. 남성연대가 공고한 가부장사회의 여성으로서 그녀들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고 책속의 그녀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우에마 요코는 일본어로 쓰인 문장이 다른 나라의 말로 바뀌어 출판되는 것은 편지가 든 작은 유리병을 바다로 흘려보내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내가 받은 작은 유리병 속 메시지는 어린시절 상상하던 보물섬의 지도도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도 아니었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십대 여성청소년들의 이야기였다. 그녀들은 누군가를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고, 오롯이 스스로의 삶의 무게를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우에마 요코의 바람처럼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여성청소년들 곁에 서 있기를, 그녀들의 목소리가 가닿기를, 나 또한 간절히 바란다. 또한 더 많은 여성들이 함께 폭력의 사슬을 끊는 연대의 ‘힘’에 연결되기를 희망하며 작은 유리병을 다시 띄워보낸다.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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