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그저 원하기만 하면 된다.
"그대들을 막아선 장벽이 어떤 것이건 그것을 넘어서는 힘이 그대들 안에 있다. 그대들은 그저 그것을 원하기만 하면 된다."
위 글은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선언의 마지막에 나오는 올랭프 드 구주의 말을 인용한 문장이다. 글을 읽는 순간 나는 멍해지면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아... 이건 뭐지? 나는 그동안 누구보다도 행동하고, 말하고,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넘어설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혹은 안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냥 고만고만하게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말 나는 나를 믿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나를 믿지 못함으로써 내가 해내지 못했던 많은 이유를 탓할 핑계가 필요했을지도 모르는 삶을 살며 나를 속여온 것은 없을까?
여성이기 때문에 나를 막아섰던 수많은 불합리한 것들. 그런 불합리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착한 내가 양보한다'라고 생각하며 합리화했던 시간들과 도저히 양보가 되지 않는 순간에는 타협이란 이름으로 내주었던 수많은 나의 권리들이 떠오른다. 내가 나의 권리를 내주었던 과정들은 보통 이러했다. 주변의 관계를 생각하느라 주춤거렸던, 착해 보인다는 이미지를 위해 참아왔던, 비난받지 않기 위해 행동하며 나의 욕망을 억압하여왔다. 물론 이런 과정에서 '칭찬'이라는 강력해 보이는 보상이 따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놀랍게도 신기한 것은 이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는 정말로 누군가를 배려를 '잘'하거나 착해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작은 선택과 행동들이 쌓이면서 정작 나의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조차도 타인과의 관계를 우선으로 생각하게 되어버렸다. 가끔 나는 분노하였지만 타인과의 관계 때문에 화를 낼 수 없었다.
앞서 작성한 나의 사고 형성과정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여성'이라는 나의 정체성이다. 나는 여성이기에 가족 구성원으로서 누릴 권리에서 배제당하였고, 직장의 선택권 역시 협소하였으며, 의복, 밤길, 운동, 공공장소에서 즐길 일상도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 여성으로 태어났는지 남성으로 태어났는지에 따라 규제되고 통제되어온 나의 권리들이 조금씩 박탈되어 가는 과정에서 나는 생존하여야만 했다. 앞으로 다가올 혹은 지금 가진 나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기술들을 익혔다. 지금 과거를 돌아보면 그러했던 시도와 포기 과정에서 살아야만 했다는 사실에 나는 분노하며,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 자신을 위로한다.
책을 읽는 과정 과정에서 깜짝깜짝 놀라는 구절들이 많다. '정말 이렇게까지 생각해도 괜찮은가?'라는 질문이 들었다가 곧 '당연한 것이 아니냐!'라는 결론을 짓곤 한다. 나뿐만 아닌 많은 여성들이 같거나 비슷한 삶을 살았으리라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여성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일부 인용한다. "제1조 모든 여성은 자유롭고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 사회적 차별은 오직 공익에 입각해서만 허용될 수 있다.". "제4조 자유와 정의는 타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돌려주는 데 있다.". "제10조 그 누구도 근본적인 견해 때문에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이가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그 의사 표현이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흐리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를 가진다.". "여성들이여, 깨어나라. 온 세상에 이성의 경종이 울리고 있다. 그대의 권리를 인지하라. 강력한 자연의 제국은 더 이상 편견과 맹신, 미신과 거짓에 둘러싸여 있지 않다. 진실의 횃불이 어리석음과 침탈의 먹구름을 몰아냈다. 제 힘을 기른 노예 상태의 남성은 그 사슬을 끊는데 그대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자유로워진 남성들은 이제 자신의 동반자를 부당하게 대한다.". "그대들을 막아선 장벽이 어떤 것이건 그것을 넘어서는 힘이 그대들 안에 있다. 그대들은 그저 그것을 원하기만 하면 된다.".
그 누구도 근본적인 견해 때문에 위협을 받을 수 없고 비난을 받을 수 없다. 누구나 경험과 역사가 다르기에 견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여성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 스스로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올랭프 드 구주의 말처럼 '그냥 그것을 원하기만 하면 된다' 여성들이여! 감은 눈을 뜨자. 당신들은 이미 충분히 멋지고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성들은 이제는 더 이상 "여성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평화에 더 이상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올랭프 드 구주가 전국적 민주적 투표를 제안해 사형을 선고받았을 때 남긴 유언을 인용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나의 조국에는 나의 심장을, 남성들에게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나의 정직함을 남긴다. 나의 영혼은 여성들에게 남긴다. 그녀들에게 별것 아닌 것을 선물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