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를 가진 모든 물체는 빛을 낸다
“물리학자 김상욱이 바라본 우주와 세계 그리고 우리”라는 문구에 이끌려 책을 구입하게 되었다. 책의 제목인 ‘떨림과 울림’에서 우주를 통해 인간사의 어떤 이치를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책의 중반을 읽을 때까지 어째서? 왜? 왜? 제목이 떨림과 울림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고, 이를 포기하고 완독을 목표로 옮겨갈 때쯤 나는 책에서 저자의 의도를 읽게 되면서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알게 되었다.
저자가 말하는 떨림과 울림은 이러하였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회전하듯이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돈다. 세상을 이루는 가장 작은 원자와 거대한 천체의 운동이 모두 단진동으로 되어 있다.”, “진동이 물질을 만들었고, 그 물질은 다시 진동하여 소리를 만든다.”, “진동은 우주로 돌아가고, 결국 우주는 떨림이다.”라고 하였다.
“우주에 빈 공간은 없으며 존재가 있다면 그 주변은 장으로 충만해진다.” 하였다. 어떤 존재가 진동하면 주변에는 장의 파동이 만들어져 존재의 떨림은 우주 구석구석까지 빛의 속도로 전달된다. 이렇게 온 우주는 연결되어 있다. 즉 내가 어떤 에너지를 발산할지는 나의 몫이며 그 파동은 주변으로 전달되며, 나의 파장에 화답은 다시 내게 돌아온다. 이렇게 나는 세상과 공명한다는 것이다. 마치 엄청난 비밀을 알아버린 듯 놀라움에 가슴이 벅차고 나의 에너지를 조용히 관찰하게 된다.
많은 의미부여로 존재를 확인하고 정의롭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나에게 작가가 책에서 알려주는 사실과 질문은 적잖게 나를 당혹게 하였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슬픈 일도 기쁜 일도 아니다. 아무 의미 없이 법칙에 따라 그냥 도는 것일 뿐이다.”, “공룡이 멸종한 것이 어떤 의미인가? 진화에 목적이나 의미는 없다.”, “지구 상의 물체가 1초에 4.9미터로 자유낙하하는 것은 행복한 일일까? 4.9가 아닌 5.9미터였다면 더 정의로웠을까?”. 나에게 일어나는 많은 사건과 일상의 일들을 다시 바라보는 계기를 가진다. 세상에는 ‘그냥’ 일어나는 일도 있으며, 사람마다 저마다의 다른 관점으로 ‘정의’를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대의 필요에 따라 구성원들의 합의에 따라 무한적으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무엇이 금방 떠오르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 그것은 내가 나를 소중히 여긴다면 타인도 소중하다는 것이 기본적인 전제이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다음에 조금 더 써보기로 하자.
마지막으로 ‘상보성’. “빛과 전자는 왜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가지는 것일까? 이 두 성질은 물리적으로 결코 양립할 수 없다. 무선 통신일 때 빛은 파동으로 행동하지만, 광전효과 실험에서 빛은 입자로 행동한다. 마치 남자냐고 물으면 남자가 되고 여자냐고 물으면 여자가 되는 것과 같다.” 작가는 “전자도 이런 이중성을 가진다며 이런 이중성은 자연의 본질인 것 같다”며 “질문이 존재를 결정한다.”라고 하였다. 질문이 존재를 결정한다는 말은 최근 본 어떤 말보다도 시원한 문장이다. 모두이지만 함께 존재하지 않는 것. 결국 어떤 질문이냐에 따라 존재가 결정되는 것. 무엇도 될 수 있는 존재이지만, 어떤 하나의 존재로만 쉽게 규정지워 질 수있는 것. 이 아슬한 경계에서 나는 어떤 것을 떠올았는데 그것은 ‘편견’이라는 단어였다. 쉽게 단정지음으로써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되는 아쉬움.
2019년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