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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o Dec 27. 2021

안방 손님과 어머니 (6)

<내맘대로 매탈문학관> 세 번째 이야기

새 집에 도착하였는데, 집 안에 들어가기 전에 밖에서 본 집은 썩 훌륭해 보였어요. 그렇지만 나는 식구들을 볼 생각에 마당이 어떠한지, 어느 집이 더 넓은지 따위를 따질 여유가 없었지요.

내가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여 걱정하게 만들었으니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날 것이라고는 각오하고 있었지만, 이건 좀 너무하였지요. 나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쏟으며 달려가 안기려고 했는데, 어머니도 그렇고 형제들도 나를 힐끗 보더니 데면데면하게 굴지 않겠어요. 어제도 보고 그제도 본 듯이 심상하게 코를 갖다 대고 킁킁 냄새를 맡고 얼굴을 확인한 뒤에는 각자 제 할 일들을 했지요.

그러더니 아저씨가 잠시 일을 해야겠다며 자리를 비우자마자 어머니가 냅다 머리통을 후려치지 뭐야요. 정신을 채 차리기도 전에 연이어 호되게 매를 맞는데, 문희 형이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오겠지요. 어머니께 매를 맞는 와중에도 형이 저리 성이 난 것이 근심이 되었어요.

형은 화를 거의 내지 않지만, 한 번 화가 나면 참말로 무시무시하지요. 그래서 어머니께 매를 맞고 있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어요. 힘이 센 문희 형에게 한 번 맞느니 어머니께 다섯 번 맞는 것이 열 배 나으니까요.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고 있으니 문희 형이 끼어들어서 뭘 어쩌려고 들지는 않을 테지요.

그런데 문희 형이 나랑 어머니를 번갈아 보더니, 입을 꾹 다물고는 어머니 뒤에 가서 줄을 서지 않겠어요. 그만으로도 겁이 나는데 곤희 형과 달희 누나, 하물며 어진 막례 누나까지 와다닥 달려와서 줄을 서겠지요. 심지어는 가칠이와 금희까지 희희낙락하며 와서 줄을 섰어요.

어머니가 꾸중을 다 하시고 자리를 뜨시니 문희 형이 뭐라 말도 없이 다가와 대뜸 주먹을 날리겠지요. 그렇게 세게 맞아본 적은 처음이라 하늘이 다 노랗게 보였어요. 형에게 꾸지람은 종종 들었지만 이렇게 맞아본 적은 없었는데, 서러워서 눈물이 나지 뭐야요.

내가 서글프게 눈물을 주룩주룩 쏟으면 마음 약한 문희 형이 사정을 보아줄 줄 알았는데, 손에 조금의 사정도 두지 않고 몇 대나 더 때리겠지요. 어찌나 세게 때렸던지 작은형이 눈치를 살피더니 가칠이와 금희를 데리고 줄에서 빠져나갔어요.

나 같은 아기에겐 이 정도의 매도 가혹하다 싶은데, 달희 누나와 막례 누나까지도 사정을 보아주지 않고 나를 때리지 뭐야요. 매를 다 맞고 나니 내가 이러려고 새 집에 왔나, 이런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했습니다.

속이 너무도 상해 울고 있는데 소심이가 머뭇머뭇 다가오겠지요. 나를 달래어 주려 왔나 보다 했는데 옆에 딱 붙어 앉아 잔소리를 종알종알 늘어놓지 뭐야요. 듣기가 거북하여 자리를 피하여도 그림자처럼 쫓아오며 끊임없이 나를 탓하는데, 어찌나 시끄럽고 신경에 거슬리던지 차라리 문희 형한테 몇 대 더 맞는 것이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그토록 보고 싶던 가족들에게 이런 대접이나 받는 내 신세가 참으로 서러워서 큰 소리로 우는데 밖에서 일을 하다가 들어온 달남 아저씨는 뭣도 모르면서 점남이가 새 집에 적응이 안 되어서 운다고 하지 뭐야요. 옆에 좀 붙어있다가 날 못 때리게 좀 말려주기나 할 일이지, 막상 중요한 순간에는 다른 데에 있다가 뒤늦게 와서는 속 모르는 소리나 하고 있으니. 나는 달남 아저씨가 고맙게 생각되던 마음이 싹 가시고 골이 났습니다.


꾸지람도 들을 만큼 들었으니 이제 밥을 먹고 집 구경이나 해볼까 하고 있는데, 달희 누나가 다가오더니 예분이 누나와 운섭이 형은 어찌 지내고 있는지를 묻겠지요. 예분이 누나가 일전에 누가 묻거들랑 잘 지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하라 했으니 난 시키는 대로 그네들은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했는데, 누나가 왈칵 눈물을 쏟겠지요.

그토록 다정하게 지내던 동무가 자기 없이도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내고 있는 것이 야속하고도 서운하여 속이 상해하는 것을 보니 깍쟁이 같은 달희 누나이지만 몹시 안 되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누나의 눈물을 그치게 할 요량으로 사실대로 고하였지요.

그리하였더니 누나는 또 왈칵 화를 내면서 그리 고생하는 그네들을 두고 혼자 올 생각을 하였느냐고, 어찌 그리 정이 없냐며 나를 탓하면서 쥐어박지 뭐야요. 그러면서 또 고생하는 동무를 생각하며 눈물을 쏟겠지요. 이리 하여도 울고, 저리 하여도 나를 탓하니 달희 누나를 어찌 대하면 좋을지 참 알 수가 없어요.


식구들의 심기가 편치 않으니 집 구경한답시고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은 삼가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구석에 웅크리고 숨어서 눈치를 좀 살피기로 했습니다.

새 집은 거실도 넓고 볕도 잘 들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예전 집에서는 마당을 자유롭게 오갔는데 이곳에서는 다들 아직 낯설어하니 당분간은 집 안에서만 머무르기로 말이 된 것 같았습니다. 몇몇은 조금 갑갑한 모양이지만 사실 나는 집 안에서 노는 것이 더 좋으니 마당에 나가지 못하게 된다고 하여도 별 불평이 없어요. 실은 그냥 쭉 이렇게 지냈으면 싶지요.

예전 집에서는 낮잠을 자다 깨면 집에 아무도 없어서 무서웠던 적이 많았어요.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싫기에 울면서 밖에 나가 가족들을 찾아다닌 적이 많은 터라 난 이렇게 쭉 식구들과 함께 집 안에서만 머물렀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달남 아저씨는 다음 날 또 허덕거리며 자동차를 몰고 나갔는데, 올 때는 예분이 누나를 데리고 들어왔어요. 예분이 누나를 잘 따르던 소심이와 달희 누나가 특히 더 반가워하는 가운데 예분이 누나는 새 집에 호기심도 보이지 않고 울기만 했지요.

순돌이 아재 말이 그럴싸하다 싶어 일단 무턱대고 달남 아저씨를 따라 새 집에 왔는데, 운섭이 형이 오지 않을까 봐 걱정이 태산 같은 모양이었어요. 달희 누나는 예분이 누나 곁에 붙어서 달래주었는데, 운섭이 형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예분이 누나가 너무 슬퍼해서 그러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런 예분이 누나를 보고 있자니 나도 너무 걱정이 되고 마음이 아파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운섭이 형은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을까요?


다음 날 달남 아저씨는 또 나갈 준비를 했는데, 잠시 생각하더니 예분이 누나를 데리고 나갔어요. 짐작하기로 예분이 누나를 데리고 가서 운섭이 형을 설득하도록 할 심산인 게지요.

저녁때가 되어서야 달남 아저씨는 눈이 퀭해져서는 예분이 누나만 데리고 들어왔어요. 고집쟁이 운섭이 형이 아직까지도 제 뜻을 꺾을 마음이 없는 게지요. 운섭이 형은 우리와 똑같은 것을 먹고살았는데, 혼자 몰래 고래심줄이라도 삶아 먹었나요. 어찌 그리 어리석게도 한 뜻만 내세우는지.

내가 생각하기로는 예분이 누나가 아니라 달희 누나를 데리고 가면 차라리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달희 누나는 운섭이 형을 보자마자 암팡지게 두들기고 욕을 해서 잔뜩 겁을 준 다음에 끌고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누구를 데려가든 운섭이 형이 빨리 왔으면 싶지요. 이리 계속하다가는 달남 아저씨도 그렇고 예분이 누나도 쓰러질 것 같으니까요.


이틀이나 더 지나서야 드디어 달남 아저씨는 운섭이 형을 데리고 왔습니다. 역시 순돌이 아저씨 말대로 예분이 누나가 저를 두고 가버리니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던 게지요. 운섭이 형이 들어오자마자 다들 예전에 나한테 한 모양으로 혼을 내주려는지 줄을 섰다가 운섭이 형의 모양새를 보고는 말을 잃었습니다.

며칠 동안 대체 무슨 고생을 한 것인지 털이 듬성듬성 빠지고 얼굴은 생채기 투성이인 데다 살이 퍽 많이 빠졌지요. 달희 누나는 운섭이 형의 몰골이 어떻든 간에 꼭 때려주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달남 아저씨가 운섭이 형을 따로 가두어 놓는 바람에 그리하지 못했어요. 그새 어디서 피부병까지 얻어 왔다지 뭐야요. 자긴 혼자서도 살 수 있으니 제 식구들을 기다리겠다고 큰소리를 탕탕 치더니, 아주 꼴사납게 되었지요.  

이래서야 나만 억울하게 되었지 뭐야요. 난 셋 중에서 제일 먼저 들어왔는데도 그리 모질게 맞았는데, 식구들 중 누구도 예분이 누나는 탓하지 않고 오히려 욕봤다며 다독여 주었지요. 운섭이 형은 혼내 주고 싶어도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무엇보다 꼬락서니가 병든 도둑고양이 몰골이니 다들 안 되었다 싶었는지 골도 아니 내었어요.

운섭이 형은 그리 말썽을 피워 놓고는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낮밤을 가리지 않고 울었는데, 울음소리에 맥이 한 푼어치 없지요. 울음소리가 신경을 건드려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으니 피할 수도 없어서 다들 신경이 날카롭기에 내가 예전에 들었던 얘기를 식구들에게 해주었어요.

그제야 운섭이 형이 하는 모양을 이해하게 된 가족들이 다들 한뜻으로 운섭이 형을 노란 고양이 취급하기로 입을 모았습니다. 저리 소심한 이가 그리도 고집을 피웠던 까닭은 제가 누렇지 않고 다르게 생겼다고 내쳐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니까요. 운섭이 형은 귀가 얇고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니 모두가 넌 누렇다 누렇다 하면서 아끼어 주면 곧 그런가 하고 납득하고 새 집에 마음을 붙이겠지요.


이젠 모든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고, 복잡하게 설키었던 일들도 슬슬 정리가 되어가니 여유가 생긴 나는 집을 쭉 둘러보았어요. 그러다 보니 새삼스럽게 신경을 건드리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처음에 내가 왔을 때는 우리 모두가 방 하나에 모여 있었는데, 집이 정리가 되어 가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거실로 나오고 예전처럼 달남 아저씨가 안방에 들어앉았지요. 참 알 수 없는 노릇이야요.

예전 집에서야 어떤 사정으로 아저씨가 안방을 쓰게 되었는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니 나는 모르지만, 다 같이 새 집으로 옮겨온 지금에는 당연히 집주인인 어머니가 안방을 쓰는 것이 옳지 않나요? 아저씨가 또 안방을 쓰고 우리가 출입하지 못하게 되면서 우리가 쓸 수 있는 공간이 그만치 좁아지게 되었는데, 이래서야 어떻게 일전에 내게 약속했던 내 방을 만들어 주나요?

분한 일은 이뿐이 아니지요. 당장 내 방부터 만들어 주어도 성이 풀릴까 말까 한데, 아저씨는 운섭이 형의 방을 커다랗게 만들어 주지 뭐야요.

완성된 형의 방을 보니 썩 훌륭해서 더 골이 났어요. 복층 구조에 창가에 위치해 있어서 밖을 구경하기에도 좋고, 혼자만 쓸 수 있는 화장실도 있지요. 아무리 운섭이 형이 아파서 치료 중이라 잘해 준다지만, 이건 차별대우이지 뭐야요.

방을 보고 나니 아저씨에게 서운하던 마음이 운섭이 형에게까지 옮겨져서 공연히 운섭이 형이 나쁘게 생각되었어요. 그동안 운섭이 형에게 앞으로 잘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좀 골려 주어야지 안 되겠다 하고 심술이 나지 뭐야요.

나는 아저씨에게 떼를 좀 써 보려 했으나, 집안 분위기가 내가 전에 지은 죄를 아직 보아 넘기지 않는 눈치이지요. 내가 떼를 썼다가는 이때다 하고 다들 단단히 혼쭐을 내주려 나설 느낌이라 용기가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소심이를 붙들고는 귀에다가 입을 갖다 대고 가만히 속삭이었습니다.

"얘, 달남 아저씨 거짓부리 썩 잘하누나. 내 방을 만들어 준다고 하여 놓고는 뒷전이고, 간식도 원하는 대로 준다고 하여 놓고는 아무리 달라고 하여도 못 들은 척하누나. 떼를 좀 쓰고 싶다만, 아저씨 얼굴을 좀 봐라. 어쩌문 저리두 해쓱해졌을까? 아마 몹시도 분주한가 부다."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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