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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o Dec 25. 2021

안방 손님과 어머니 (5)

<내맘대로 매탈문학관> 세 번째 이야기

새 집으로 가는 날은 모르는 사람들이 집에 무척 많이 드나들었어요. 우리 어머니는 낯선 이가 집에 오는 것을 싫어하는데 어머니 허락은 받고 저리 드나드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머니는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딱히 불평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난 달남 아저씨한테 깜박 속아 새 집으로 강제로 끌려갈 뻔했지 뭐야요. 집의 살림살이들이 막 밖으로 옮겨지고 모르는 사람들이 드나들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는 통에 아저씨가 난데없이 간식을 준다고 하시기에 난 심란한 김에 간식이나 먹어볼까 싶었지요. 자꾸만 움직이는 간식을 얌냠 먹는 사이에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보니 어느새 이동하는 방에 갇혀 있었어요.

난 당황해서 내보내 달라고 소리를 치기 시작했는데 다들 들은 척도 않겠지요. 내가 순순히 가지 않을 것을 알고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배신감이 느껴지고 화가 났습니다.

난 이 집을 지켜야 하니 나가려고 안달이 났는데 다들 바보같이 순순히 이동방에 들어가지 뭐야요. 슬픈 얼굴들을 하면서도 아저씨가 들어가라고 이동방의 문을 열어주면 발을 질질 끌며 안으로 들어갔어요. 심지어는 소심이까지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얌전히 방에 들어가서는 가기 싫다며 울기 시작했지요.

아저씨는 우리를 하나씩 들어서 자동차에 태웠어요. 난 문을 두들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는데 어머니가 도끼눈을 하고는 가뜩이나 속 시끄러운데 조용히 하지 못하겠느냐고 역정을 내시지 뭐야요. 그래서 난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도망쳤어요.

달남 아저씨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는데, 아저씨는 가칠이만 문을 여닫는 재주가 있는 줄 알지요.

 그렇지만 나도 그렇고 소심이도 문을 열고 닫을 줄 알아요. 딱히 아저씨에게 숨기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나나 소심이나 집 밖을 잘 나가지 않으니 태가 나지 않았던 게지요.

우리 셋은 다 손이 빠르고 기운깨나 쓰는데, 어머니는 문을 여는 것을 힘에 부쳐하는 것을 보면 우리들은 아버지에게서 손재주를 물려받았나 봐요. 아마도 우리 아버지는 썩 잘나고 똑똑한 도둑 고양이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내가 문을 열고 나가자 온통 야단이 났어요. 달희누나는 저 천치 하는 짓 좀 보라며 소리를 질렀고, 어머니는 당장 다시 들어가지 못하겠느냐며 노여워하셨습니다. 막례누나는 날 달래려 들었고 곤희형도 말 들으라며 성을 내었지요. 문희형까지도 언성을 높일 때엔 무서워서 도로 이동방으로 들어갈 뻔했어요.

소심이는 엉엉 울면서 다시 돌아오라고 나에게 애원을 했는데, 그 와중에 가칠이는 나 하는 모양을 보더니 재미있겠다며 저도 문을 열고 나와버리지 뭐야요. 그러더니 아수라장이 된 가운데 혼자 시시덕거리며 마당을 활개치고 다녔어요. 금희는 그 모양을 보더니 저도 나가서 가칠이와 놀겠다고 떼를 쓰며 어떻게든 문을 열려고 애를 썼습니다.

달남 아저씨는 운섭이 형을 열심히 구슬리느라 사고가 벌어진 줄을 뒤늦게 알았지요. 아저씨는 몹시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어요. 날 불렀다가 운섭이 형을 불렀다가. 하다못해 예분이 누나만이라도 이동방에 들어가게 하려고 애타게 타일렀지만 운섭이 형이 저리 버티고 있는데 예분이 누나가 혼자 갈 리가 없지요. 예분이 누나도 몹시 당황해서 운섭이 형을 구슬렸다가 쥐어박았다가, 또 애원했다가 화를 내다가 하며 애를 썼지만 운섭이 형은 요지부동이었어요.

그 와중에 나뿐 아니라 제 동무까지 고집을 피우는 모습을 본 큰누나는 몹시 성이 나 욕을 하면서 악을 쓰기 시작했지요.

늘 새침하게 굴던 달희누나가 걸걸한 육두문자를 쏟아내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기겁을 하고 달희누나를 꾸짖으셨고, 곤희형은 누나를 진정시키랴 운섭이 형을 설득하랴 바빴습니다. 큰누나가 큰소리를 내자 소심이는 놀라서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고, 가칠이는 저도 덩달아 흥분해서 날뛰었어요. 운섭이 형은 달희누나한테 겁을 먹고 숨어버렸고, 예분이 누나는 운섭이 형을 잡으러 부리나케 쫓아갔지요.

난 평생을 대가족에 둘러싸여 살았지만 이런 아수라장은 처음 겪어 보았어요. 다들 어찌 그리 목청이 좋으며 그 땡볕 아래 어떻게 그런 기운이 나는지.

나뿐 아니라 달남 아저씨도 이런 난장판은 처음인지 혼이 나간 모습이었어요. 심지어는 동리의 사람들과 고양이들도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모여들었지요. 그러자 문희형까지도 이곳은 아직까지는 우리 영역이라며 다른 고양이들을 쫓아내려 큰 소리로 위협을 시작했어요. 그러자 건달 고양이들이 떠나는 주제에 무슨 영역이냐며 대거리를 했고, 내가 사랑하는 우리 집은 그야말로 꿈에 볼까 두려운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한순간도 울음소리와 고성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아저씨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덩달아 혼이 나간 가칠이를 덥석 집어 들고 냉큼 차에 태운 후에 급하게 자동차를 몰고 떠났습니다. 귀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던 달희누나의 악 쓰는 소리는 자동차가 멀어지면서 점점 작아져 갔어요.

"야 이 천하제일의 멍청하고 쓸모없는 천치들아! 당장 들어오지 못..."


집에 몰려들었던 구경꾼들도 하나둘씩 떠나자 집은 갑자기 조용해졌지만 난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로 한참을 멍하니 있었어요. 아까 같은 난리 통도 처음이었지만 이렇게 조용한 집도 난생처음이었지요. 간신히 진정하고 상황 파악이 되자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어요.

정말 떠날 줄은 몰랐는데, 다들 날 두고 가버렸어요. 이 집이 어떤 집인데 그렇게 포기하고 가버리나요.

단단히 각오하고 있었는데도 혼자 남으니까 무서워서 눈물이 그쳐지지가 않았어요. 텅 빈 집에 문은 활짝 열려 있고, 낯익은 얼굴 하나 보이지 않으니 평생 살아온 집이 너무나 낯설어서 나는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습니다.

그러자 어디에선가 예분이 누나가 나타나 나를 달래주었어요. 예분이 누나도 무척 막막하고 겁이 나는지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나를 다독이며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나는 예분이 누나 품에 파고들며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지요. 그러자 운섭이 형도 슬금슬금 나타나서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았는데, 표정이 불퉁한 데다 얼굴이 부어있는 모습을 보니 예분이 누나한테 적잖게 쥐어 박힌 모양이었어요.

운섭이 형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못하다가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어요. 예분이 누나도 우리 둘을 달래려 애를 쓰다가 결국 눈물을 터뜨렸지요.

그렇게 우리 셋은 나란히 앉아서 해가 저물 때까지 같이 울었습니다. 나중에는 지쳐서 눈물도 나오지 않고 목도 쉬고 말았어요.

가장 먼저 자신을 추스른 예분이 누나가 기운을 차려야 한다고 우리를 다독이면서 밥을 먹게 했어요. 종일 기운을 다 쓴 터라 허겁지겁 밥을 먹던 중에 밥그릇에 얼마 남아있지 않은 밥을 보자 또 눈물이 터져 나오지 뭐야요.

이 밥을 다 먹으면 이제 누가 우리 밥을 차려주나요. 난 사냥도 못하는데 이제 뭘 먹고 살지요? 걱정이 되어서 눈물이 앞을 가리는 가운데 운섭이 형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입을 비죽이면서 저도 다시 울려고 하겠지요.

그러자 예분이 누나가 걱정하지 말라며, 다 방법이 있을 거라고 우리를 달랬어요. 예분이 누나가 그리 말하니 적잖이 안심이 되어서 나는 마저 밥을 먹었습니다.

예분이 누나는 사냥도 잘하고 야무진 데다 정도 많으니 나를 잘 보살펴 주겠지요. 너무 무섭고 겁이 나지마는 누나와 형이 있어서 그래도 든든하지 뭐야요. 이들도 없이 나 혼자 남았다면 얼마나 무서웠을지, 상상할 수도 없어요.


밤이 되자 몹시 무서웠어요. 평생 혼자 있어본 적이 없는데 텅 빈 집은 참으로 조용했지요. 혼자 자자니 오만 생각이 다 들고 이상한 소리도 들리는 듯하여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하는 수 없이 누나와 형을 찾아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한 번도 밖에서 자 본 적이 없으니 잠을 잘 수 없는 것은 매한가지이지요. 예분이 누나와 운섭이 형한테 집에 들어가서 자자고 졸라서 다 같이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네들은 도저히 안에서 못 자겠다며 도로 나가버렸어요.

결국 나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면서 벌벌 떨었답니다. 무서운 가운데 서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서 눈물이 계속 났어요.

아저씨를 따라갔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난 이대로 평생 어머니와 달남 아저씨, 형제들을 못 보는 것인가 싶으니 너무나 후회스러웠어요.

어머니는 새 집을 마련하느라 애를 많이 쓰셨을 텐데 내가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행동해서 많이 노여우시겠지요. 달남 아저씨도 그리 고생을 하게 만들었으니 어째요. 달희 누나는 본디 화를 자주 내긴 하지만 그토록이나 성을 내는 모습은 처음 보았는데, 아직까지 성이 풀리지 않았으려나요.

소심이가 그리 울면서 돌아오라고 부탁을 했는데, 내가 야멸차게 굴었으니 원망이 크겠지요. 금희는 아직 어리니 커가면서 나를 금방 잊어버릴 텐데, 혹여 나중에 만난다 하더라도 나를 기억이나 하겠나요.

내가 혼자서 집을 지키겠답시고 퍽 속 편하게 생각했던 게지요. 내가 고집을 부리고 집을 못 떠나겠다고 강짜를 부리면 모두들 체념하고 가지 않겠거니 하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가족들과 생이별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해 보았지요.

다시 한번만 식구들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가족들이 없는데 이깟 집이 뭐 그리 중하다고 내가 그리 고집을 부렸을까요.

눈물이 줄줄 흐르는 가운데 달남 아저씨 생각이 많이 났어요. 되짚어 보니 난 아저씨에게 다정하게 대했던 기억은 많지 않고 늘 매정하게 굴었지요. 아저씨는 늘 나와 친하고자 애썼는데 난 아저씨 손에 상처나 내고 날 만지지도 못하게 하며 으스대었지요. 형제들은 다 할아버지라고 부르는데 나 혼자 아저씨라 부르며 쌀쌀맞게 굴고, 아저씨는 속으로 서운했으려나요.

다시 만나게 된다면 순순히 새집으로 따라가야지 싶었는데, 다시 볼 일이 있으련가 그리 생각하니 다시 울음이 터져 끅끅 소리를 내며 울다 까무룩 잠이 든 것 같아요. 눈을 떴을 땐 날이 밝아 있었습니다.

간밤에 그리 울다 잠이 들었으니 얼굴은 짐짝만치 부어 있고 골도 아팠지요.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였으니 몹시 피곤했습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고 하는데 물그릇에 물이 어제 떠 놓은 그대로 있겠지요.

이런 아침은 처음 맞아 보았어요. 날이 밝아 눈을 뜨면 우리가 몸단장을 하는 사이에 곤희형이 아저씨 방 앞으로 가 아저씨를 깨우고, 그러면 아저씨는 잠이 덜 깬 얼굴에 산더미 같은 머리를 해가지고 거실로 나오지요.

그리고는 우리가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고는 아침도 챙겨 주고 깨끗한 물도 떠주고 하는데, 오늘 눈을 떴더니 아무도 없는 집에 문이 죄다 열려 있어 바닥에는 먼지가 더께로 앉아 있고 물에도 털이 둥둥 떠 있겠지요.

밥을 먹을 기운도 나지 않아 멀거니 앉아 있는데 낯익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살피니 마당에 아저씨의 자동차가 들어오고 있지 뭐야요.

아저씨의 얼굴을 보니 또 울음보가 터지려고 하겠지요.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리 보게 되어서 어찌나 반갑던지요.

아저씨를 보니 얼굴이 참 안 되었어요. 고생은 내가 하였는데 어찌 저리 낯이 딱한가요. 눈 아래가 어찌나 거뭇하던지 까마귀가 형님 하겠지요.

나는 아저씨에게 와르르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붙들고는 시치미를 딱 떼고 앉아 아저씨를 새초롬하게 쳐다보았습니다. 필시 나를 데리러 온 것일 텐데 어이구야 왜 이제 왔소 하고 반기기에는 영 싱겁지요.

아저씨는 대뜸 내 이름을 부르면서 걸어와 집에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왜 밥도 먹지 않았느냐고 타박하며 과자를 주겠다고 하기에 난 얼른 집으로 들어갔어요.

그랬더니 아저씨는 얼른 문을 닫고는 혼자 여기서 무얼 하겠느냐, 네 탓에 내가 손을 다쳤다, 여긴 이제 우리 집이 아니니 얼른 새 집으로 가자 하며 대뜸 나를 데려가려 들지 뭐야요. 나는 다시 만나면 고분고분 말을 들어야지 했던 다짐도 잊고 그만 앵돌아지고 말았어요.

아니, 누가 저의 신세타령을 듣자고 했나요? 내가 간밤에 얼마나 무섭고 속이 상했는데, 내 맘을 헤아리고 다독여 주어야지 어째서 만나자마자 날 타박하는 것인지. 아저씨가 손을 다친 것은 안 되었지만 그것은 아저씨가 부주의했기 때문이지 어째서 날 원망하나요?

가뜩이나 마음이 좋지 않은데 이 집이 우리 것이 아니라고 하니 또다시 골이 나지 뭐야요. 그럼 내가 남의 집에 있다는 말인데, 여기 우리 말고 다른 이가 있나요?

힘들게 집을 지키고 있는 나에게 공치사는 하지 못할 망정 철부지 어린애 대하듯이 하니 나는 몹시 언짢아져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달남 아저씨는 내가 문을 열 줄은 몰랐던지 몹시 놀라는 듯했지요. 난 성이 나서 집 뒤편에 혼자 앉아 있었는데 곱씹을수록 분하지 뭐야요. 여태 슬펐던 일 무서웠던 일이 다 아저씨 탓으로 생각되었어요.

그래서 아저씨가 와서 날 타이르는데도 모르는 척했지요. 조금만 더 내 성을 풀어주면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가려 했는데 갑자기 주변이 소란해지고 아저씨가 그리로 뛰어갔어요.

살금살금 다가가 어찌 된 영문인지를 살피니, 글쎄 낯선 사람들이 와서 집안 살림살이들을 죄다 내가지 않겠어요. 또다시 온갖 법석인 와중에 아저씨는 그 사람들과 뒤엉키어 살림살이들을 내가고 무언가 이야기도 하고 그러더니 어어 하는 사이에 또다시 사라져 버렸어요.

날은 어둑어둑 해지는데, 내가 심보를 고약하게 쓰다가 아저씨가 또다시 가버렸지요. 어처구니가 없어서 눈물도 안 나왔어요.

이제는 살림살이마저 없이 텅 빈 집에 혼자 웅크리고 앉아서 "김점남 요 아둔한 것. 참말로 천치이지 뭐야." 하고 중얼거리다 참으로 속이 답답하여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마당을 하릴없이 쏘다니는데 어디선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겠지요. 나는 호기심이 생기어서 예분이 누나와 운섭이 형이 하는 말에 귀를 세우고 들었어요.

"그래, 할아버지가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지 않았니. 언제까지 미련하게 이러구 있을 텐가. 응?"

"우리 할아버지인가. 가려거든 누님이나 가시구려."

"그리 말하문, 내가 좋다구나 하고 가겠니? 너 없이 내가 혼자 가련? 참 모질기두 하다. 어찌 그리 말한다니?"

"그러게 나는 어머니하고 고명이를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수. 내 핏줄 두고 어찌 남을 따라가겠소?"

"참말로 그리 백치처럼 굴 테냐? 어머니가 올 모양이면 벌써 오셨지. 그리고 그들이 어찌 남이니? 우리가 비록 밖에서 살고 있지만 쭉 밥도 대 먹고살았고, 게다가 새 집으로 가면 우리도 안에 들이신다지 않니.

누리 아주머니만 해도 처음에는 좀 매섭게 구셨다만 곧 우리를 제 식구처럼 대해 주시고, 또 하숙비도 제해 주셨지 않아? 네 동무들은 또 어떻고. 곤희하고 그리 어울려 다니더니. 평생 달희를 보지 못하게 되어도 좋단 말이냐? 응?"

"그야 누님은 누르니까 그리 말할 수 있지요. 소심이 가칠이랑 꼭 닮지 않았소. 난 뭐 노랗지도 않고 닮은 곳도 없으니 누가 날더러 가족이라 할 거요? 금희까지 해서 전부가 누런데 내가 끼어들어가 가족입네 하고 있으면 속으로 비웃을 테지.

누님은 가서 사랑받고 잘 사시오. 난 여기서 어머니하고 고명일 기다릴 테니. 내 핏줄이야 내가 어찌 생겼건 내칠 일이 있겠소."

예분이 누나가 울음보를 터뜨리며 운섭이 형을 쥐어박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자리를 떴습니다. 운섭이 형의 속마음이 저러하였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요.

셋방 아주머니는 얼룩 고양이고 막내딸인 고명이 누나는 검은 줄무늬 고양이입니다. 운섭이 형이 전부 노랗기만 한 우리 가족들 틈에서 혼자 다르다고 생각해 제 식구들이 더 그리웠나 봅니다.

난 그동안 재미 삼아 운섭이 형을 놀려주곤 했는데, 퍽 후회스러워요. 형의 마음을 헤아렸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정말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 뭐야요.


오늘 한 밤만 더 자고 나면 달남 아저씨가 다시 나를 데리러 오실 테니 예분이 누나와 운섭이 형에게 그리 일러두려고 하였는데, 그네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나니 아저씨를 따라가겠다고 하기가 면구스럽게 느껴졌어요. 온갖 모양새는 다 내놓고는 며칠도 지내지 못하고 수그러드는 모양새가 영 철부지 같지 뭐야요.

그래서 예분이 누나를 불러 놓고도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내 하얀 손 끝만 쳐다보았습니다. 예분이 누나는 영문을 몰라 나를 이상스럽게 보다가 저를 빠끔히 올려다보는 내 눈을 보고는 어림을 한 듯하였어요.

"어디 보자. 너 할아버지를 따라 새 집에 가고 싶은 게로구나?"

나는 비실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 하고 손톱을 내어 땅을 그어대기만 했어요. 예분이 누나가 코웃음을 치지 않을까 염려를 했건만 예분이 누나는 다정하게 내 어깨를 감싸주며 정수리를 핥아주지 뭐야요.

"그리하여야지. 잘 생각하였어. 새 영역 찾아 독립을 한 것도 아닌데 가족이 떨어지다니. 그런 경우는 없는 법이지 뭐냐.

아주머니하고 형제들이 너로 인해 근심을 하게 만들었으니 만나서 아주머니가 꾸중을 하시거든 달게 받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드려야 한다. 혹시라도 누가 묻거들랑 예분이와 운섭이는 잘 지내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응."

나긋나긋한 예분이 누나의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뭐가 그리 슬픈지도 모르겠건만 눈물이 주책없이 새어 나오지요. 끽끽거리며 울고 있는 나를 예분이 누나가 달래어 주고 있는데 어디선가 운섭이 형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황망히 달려갔더니 글쎄 동리의 불량배들이 운섭이 형을 둘러싸고 있겠지요.

커단 장정들 셋이 겁먹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는 운섭이 형을 에워싸고 불량스럽게 농지거리를 하는 모습을 보니 이가 갈리지 뭐야요. 우리 형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집을 지킬 때에는 근처에도 오지 못하던 작자들인데 우리 가족이 떠난 것을 귀신같이 알고 어줍지 않은 수작을 하는 모양새라니요. 식구들이 있을 때는 그네들이 형들은 고사하고 달희 누나의 눈도 못 마주쳤지요.

난 앞으로 나서서 부끄러운 줄 알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오금이 저려 꼼짝도 못 하겠기에 예분이 누나 뒤에 숨어만 있었어요.

건달들이 가만히 보니 머릿수는 똑같이 셋인데 운섭이 형은 둘도 없는 겁보이고 예분이 누나는 여자인 데다 나는 아기이니 참 가소롭다 싶었겠지요. 그래서 더 배짱이 나는지 건달 중 하나가 운섭이 형의 뒤통수를 쥐어박으려고 하는데 글쎄 예분이 누나가 소리를 지르면서 덤벼들더니 건달의 귓방망이를 매섭게 올려붙이지 뭐야요.

다들 놀라서 멀거니 서 있는데, 예분이 누나가 암팡지게 덤벼들어 닥치는 대로 때리겠지요. 그동안 나붓하고 다정한 모습만 보았는데 이제 보니 예분이 누나는 앙칼지기가 달희 누나 못지않았습니다. 쌈을 그렇게 잘하는지는 꿈에도 몰랐지요.

예분이 누나가 미친 고양이처럼 날뛰기 시작하니 운섭이 형도 용기가 났는지 어설프게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운섭이 형은 덩치가 거의 문희 형만 하니 겁을 먹고 있지만 않으면 애초에 우습게 볼 이는 아니지요.

불량배들은 결국 혼비백산을 하여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운섭이 형은 자신이 퍽 대견스러웠는지 예분이 누나를 돌아보며 헤벌쭉 웃지 않겠어요. 그런데 예분이 누나는 운섭이 형을 있는 힘껏 쥐어박으며 이를 악물고 내뱉었습니다.

"철딱서니 없는 것 같으니라구. 앞으로 저런 것들이 계속해서 올 텐데. 쭉 이렇게 얻어맞고 허투루 쌈질이나 하며 지낼 테냐? 네 혼자 그리 지내볼 테야?"


새 집에 가기로 작정을 하고 나니 어제만큼 밤이 무섭지는 않았지마는 그래도 여전히 자기에 편치 않지요. 몸을 잔뜩 오그리고 누워서 어머니를 생각하는데, 갑자기 집 안에 누가 벌컥 들어오지 않겠어요.

처음에는 형 또는 누나인가 했는데, 웬 주정뱅이가 캣닢에 거나하게 취한 채로 멋대로 들어와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녔어요. 어찌나 부아가 치밀던지...

문희 형이 없다는 말이 동리에 돌자마자 저런 건달 나부랭이들이 우리 영역을 넘보는 것이 너무도 분하였어요. 우리 문희 형이나 곤희 형 발끝도 못 따라올 주제에 감히 어디에 욕심을 내는지. 무척 성이 났지만 무섭기도 하였기에 난 살금살금 집을 빠져나와 예분이 누나를 찾았지요.

그런데 예분이 누나와 운섭이 형도 퍽 곤란하게 되었지 뭐야요. 동리에서 지나치며 몇 번 보았지만 그 인상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던 어떤 무지렁이가 제 동무들을 두엇 데리고 와 긴치않은 수작을 벌이고 있겠지요. 예분이 누나를 희롱하려던 놈과 한바탕 싸움을 벌였던 것인지 운섭이 형의 얼굴에 생채기도 나 있었습니다.

나서서 형과 누나를 도와주고 싶었는데 창피하게도 다리가 후들거리지 뭐야요. 문희 형이 너무나 보고 싶어서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습니다. 문희 형이 있었다면 저런 시정잡배들은 집 근처에도 못 왔을 텐데.

지금 내가 이리 무서운데 품성도 온후하고 너그러운 문희 형이 그동안 억지로 싸우면서 심정이 어땠을지는 어림하기도 힘들지요. 싸우다가 몇 번씩이나 크게 다치면서 얼마나 아프고 겁이 났을까요.

그렇게 문희 형을 생각하면서 억지로 용기를 내어 덤벼들려고 할 때 난데없이 뒤에서 목소리가 들리겠지요.

"여보게. 누리네 있는가?"

굵직하고 멋들어진 목소리가 들린 곳을 보니 집에 종종 놀러 오던 어머니의 동무인 순돌이 아저씨가 계시지 뭐야요. 아저씨는 무척이나 점잖고 친절해서 어머니와 썩 잘 지내었는데 우리에게도 종종 선물을 주곤 하시었지요. 체격이 무척 크고 거칠게 보이지마는 마음은 몹시 좋은 분이야요.

다들 어리둥절해 있는데 아저씨는 이쪽은 본체만체하고 누가 보아도 텅 빈 집을 향해 다시 말하지 않겠어요.

"여보게. 누리네."

계속 허공에 대고 말하는 모양새이니 불량배들이 비웃으며 아저씨에게 쌈을 걸려는데, 아저씨가 휙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저씨는 무척 다정한 분이시지마는 퍽 험상궂은 생김새를 하고 있지요. 그 모습을 보고는 그네들이 하나둘씩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어요.

순돌이 아저씨는 그동안 계속 우리 집 마당을 드나들었으니 어머니가 새 집으로 떠난 것을 모를 리가 없는데 그리 능청스럽게 구는 모습을 보니 아, 지나가다가 우리를 도와주러 온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지요. 불청객들이 떠나자 아저씨는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물었어요.

"그래, 막내 아드님은 왜 여직 여기에 계신가?"

내가 부끄러워져 딴청을 피우니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차겠지요.

"허우대가 멀쩡한 청년이 어머님께 효도는 못할망정 천둥벌거숭이처럼 굴어서야 안 될 말이지..."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순돌이 아저씨는 몸을 돌려 예분이 누나와 운섭이 형을 번갈아 보았어요. 그때까지 놀란 게 가시지 않아 굳어 있던 운섭이 형에게 아저씨는 딱하다는 듯이

"이놈아. 네 어미는 오지 않는다."

라고 말하지 않겠어요. 그러자 운섭이 형은 속상한 마음이 북받치는지 눈을 닦으며 자리를 떴어요. 아저씨는 운섭이 형을 쫓아가려는 예분이 누나를 붙들더니 이리 말하지 않겠어요.

"저 녀석으루 말하면 제 어미를 닮아서 고집이 쇠심줄이라 이대로는 절대 제 뜻을 꺾지 않을 거거든. 저것을 끌고 가나 업고 가나 싶겠지만 제 누나 믿고 저리 버티는 것을 모르는게지. 꼭 같이 데리고 가겠다 생각을 버리고 네가 먼저 가거라. 그러면 저 놈이 따라갈 밖에 별 수가 있을 겐가.

애면글면 해보았자 쇠 귀에 경 읽기이니 눈 딱 감고 내가 말한 대로 해. 응?"

예분이 누나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생각을 해 보겠다고 답하는 사이에 나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순돌이 아저씨가 어머니의 동무인 줄로만 알았지 셋방 아주머니와도 알고 지낸 사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지요. 아저씨는 셋방 아주머니와도 동무였을까요?


이렇게 밤이 하루 더 지나가고, 나는 또 한 잠도 못 잤지 뭐야요. 눈만 붙이려고 들면 누군가 집에 들어오니 어떻게 잠을 자나요.

온 동리의 고양이들이 한 번씩은 집에 왔다 가는 것 같았어요. 단순히 궁금증이 일어 집 구경을 온 고양이들부터 아예 작정하고 들어와 자기 영역으로 눈독을 들이고 저들끼리 싸움을 벌이는 고양이들까지 아주 가지가지였습니다. 처음에야 예분이 누나와 운섭이 형이 쫓아냈지만 나중에는 그네들도 지쳐서 올 테면 와라 하고 포기하고 드러누웠지요. 아마 누나와 형도 한숨도 못 잤을 거야요.

날이 밝아오자 몸단장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집에 가는 날이니 깨끗하게 해야지요. 그동안 잘 자지도 먹지도 못했더니 털도 푸석푸석하고 얼굴도 부어 보여 심란했어요. 이렇게 부숭한 꼴로 식구들을 만나면 그 곱던 점남이는 어디 갔느냐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속상해지려던 참에 운섭이 형을 보고는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내 몰골도 말이 아니지마는 운섭이 형은 하루가 지날수록 그야말로 모양새가 추레해져 가고 있지요. 배꽃처럼 하얗던 털은 땟국물이 줄줄 흐르고 낯에는 생채기가 곳곳에 나 있었어요. 내가 안 보는 사이에도 이곳저곳에서 많이 얻어맞았나 봅니다.

시일이 며칠이나 흐른 것 같은데 단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단 이틀 만에 고양이가 저런 몰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어요. 운섭이 형의 풍채가 참 좋았는데, 마치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스르륵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이 생각될 정도이지요.

내 기분 탓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 식구들이 오랜만에 운섭이 형을 보게 된다면 확실히 알 수 있으려나요. 보는 이가 다 고되게 느껴질 정도인데 운섭이 형은 제 고집을 꺾을 생각이 없어 보이지요. 나 같은 아기도 그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아는데, 저렇게 고집 센 고양이는 처음 보았어요.

예분이 누나도 볼이 퀭하게 들어가고 생기가 없어 보이지마는 운섭이 형처럼 초췌해 보이지는 않는데, 무어 몸단장할 여유가 없었던 것은 우리들 다 마찬가지이지요.

그렇지만 운섭이 형이 유독 저리 빠르게 용모를 잃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요. 내색하진 않으나 요 며칠이 그에게 가장 고되게 여겨지고 있어서일까요.

혹은 형이 노란 고양이가 아니기에 추레함이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것일까요. 나는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았으나 속으로는 노란 고양이들이 우수한 이유 중에 한 가지 까닭이 더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노란 고양이들은 황금색으로 고급스럽게 보이니 몸단장을 좀 게을리해도 쉽사리 초라해지지 않으니까요.  

길에 사는 고양이들한테야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생기겠지만 난 길에서 살아 본 적이 없으니 그들의 어려움에 대해 실감해 본 적이 없지요. 그들이 가끔 용모를 단정치 않게 하고 쏘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거북스럽게 여기며 눈 아래로 굽어보았는데 요번 일을 겪고 나니 그네들이 참말로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이틀이 억겁으로 느껴졌는데 어찌 평생을 그리 사는지, 난 절대 길고양이로는 살지 못할 거야요.

새삼 길고양이였던 팔자를 청산하고 집을 마련해 자식들을 뒷바라지한 어머니가 참으로 존경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자식들이 더 좋은 곳에서 살게 해 주기 위해 그런 고생으로 새로운 집을 또다시 마련하였는데 난 투정이나 부리면서 어머니의 노고를 가볍게 여기고, 쓸데없는 고생을 사서 했으니 참으로 어리석고 철이 없었지요.  

내가 철부지처럼 굴었음에도 어머니는 날 밉다 하지 않고 데리고 가기 위해 아저씨를 보냈는데 난 또 심술이나 부리다가 달남 아저씨를 헛걸음하게 하였지요.

어머니가 역정이 많이 나셔서 날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하셔도 할 말이 없지마는, 나는 어머니가 나를 데려오라고 다시 달남 아저씨를 보낼 것을 알아요. 어머니가 앵돌아져서 그리 하지 않으신대도 달남 아저씨는 날 아끼니 어머니 몰래 날 데리러 오겠지요. 새 집에 가게 되면 아저씨와 좀 더 친하게 굴고 식구들에게도 살뜰하게 대해야 하겠다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멍하니 마당을 내다보았는데, 운섭이 형이 땟국이 줄줄 흐르는 궁상맞은 모양새를 한 채로 집에 찾아온 순돌이 아저씨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겠지요. 순돌이 아저씨는 운섭이 형이 어렸을 때부터 잘 보살펴 주었다고 하는데, 운섭이 형은 저리 커단 장정이 되어서도 아저씨를 잘 따른답니다.

저리 둘이 다정하게 붙어 있으니 하얗고 검은 생김새가 얼핏 닮아 보이기도 하고. 운섭이 형이 그 큰 덩치로 어리광을 부리며 아저씨 품으로 파고드는 모양이 누가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하겠지요.

피곤해서 멍한 머리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마당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난 달남 아저씨의 자동차 소리를 듣고 얼른 가둠방으로 들어갔어요. 괜히 서성대다가 못 이기는 척하고 아저씨 눈앞에서 들어가기가 열없어서 차라리 미리 들어가 있자 싶어 그랬던 것인데 문이 철컹하고 닫히니까 내가 옳게 결정을 한 건가 싶어 갑자기 덜컥 겁이 났습니다.

아저씨가 날 부르면서 집으로 들어서는데, 내가 가둠방에 들어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무척 기뻐하지 뭐야요. 난 가까이 다가오는 아저씨의 얼굴을 오랜만에 자세히 살펴보았어요.

세상에 어찌 저리 눈 밑이 거뭇, 아니 꺼멓게 되었나요. 예전에 우리 집에 가끔 밥을 먹으러 오던 너구리가 있었는데, 그 너구리 얼굴이 딱 저랬지요. 둘이 나란히 세워 놓고 보면 누가 누구인지 분간도 못 하겠어요. 아저씨는 뭐가 그리 고생스러워서 얼굴이 저리 상했을까요.

아저씨를 다시 보니 안심도 되고, 또 아저씨 얼굴 상한 모양이 낯설어서 난 큰 소리로 울었어요. 여태까지는 배고픈 것도 못 느꼈는데 아저씨 얼굴을 보니 허기도 밀려오겠지요.

아저씨는 나에게 잔소리를 하다가 내가 울기 시작하니 당황해서 나를 달래기 시작했어요. 아저씨한테 칭얼댈 생각은 아니었는데 아저씨가 오냐오냐 해주니까 그동안 속상했던 일과 무서웠던 일 등이 한꺼번에 북받치지 뭐야요. 그래서 혀짤배기소리도 좀 내고 콧소리도 좀 내면서 울다가 시험 삼아 아저씨에게 말해보았어요.

"아저씨. 나 간식 좀 주시우."

"간식? 그래 주지. 주고말고.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그만 울거라. 날이 이리 더운데 그리 울다가는 기력이 상한다."

아저씨는 내 비위를 맞추어 주며 내게 간식을 주었어요. 식구들과 있으면 서로 먹겠다고 덤벼드는 통에 간식 하나를 온전히 먹어본 적이 없는데 아저씨와 단둘이 앉아 간식 하나를 전부 먹고 나니 기분이 무척 좋아졌어요. 그동안 내가 없어서 아저씨는 무척이나 아쉬웠던 게지요. 이리 나에게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자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새침한 표정을 짓고는 말했어요.

"아저씨 나 새 집 가면 내 방 따로 만들어주나?"   

"만들어주지. 아주 좋은 놈으로 만들어 주께."

"아저씨 나 새 집에 가면 내가 간식 달랄 때마다 주나?"

"주지. 줘."

나는 아주 흡족해져서 간식을 다 먹고 아저씨가 하라는 대로 이동방으로 얌전히 옮겨갔어요. 아저씨는 나더러 자동차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고는 운섭이 형과 예분이 누나를 쫓아다니면서 달래고 어르기 시작했습니다.

난 그동안 마지막으로 집의 모습과 동리의 풍경을 눈에 담아 두었지요. 요 며칠 고생하면서 집에 정이 떨어졌는지 애틋한 마음이 덜해진 모양입니다. 이제 우리 집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다지 아쉽지 않고 오히려 새 집에 기대가 되기 시작했어요.

단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예분이 누나와 운섭이 형이지요. 이틀 동안 날 보살펴 주어 의지가 많이 되었는데, 그네들을 두고 먼저 가기가 영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그네들이야 내가 아기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날 보살펴준 것일지도 모르지만 난 이제 예분이 누나와 운섭이 형이 피붙이처럼 여겨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네들이 빨리 새 집으로 와얄 텐데요. 걱정이 되어서 마음이 무겁지 뭐야요.

아저씨는 끈질기게 둘을 설득하다 날이 어두워져서야 포기하고 터덜터덜 자동차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난 저만치서 슬픈 눈으로 아저씨의 자동차를 바라보고 있는 누나와 형이 너무나 마음에 걸리어 그네들을 꼭 데려와 달라고 아저씨에게 부탁했어요.

아저씨는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 가야 한다고, 내일 다시 형과 누나를 데리러 올 것이라고 약속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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