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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o Dec 22. 2021

안방 손님과 어머니 (4)

<내맘대로 매탈문학관> 세 번째 이야기

전에 얘기했듯이 우리는 주인집 식구인데도 안방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어요. 그런데 금희는 안방에서 아저씨와 함께 잠도 자고 밥도 먹고 하며 같이 지냅니다.

이건 엄연히 차별대우이고 불공평한 처사이지만 어린애를 두고 새암을 낼 수는 없지요. 금희만 싸고도는 모습이 아니꼽기 그지없지만, 금희는 젖배도 곯은 데다 엄마와도 떨어져서 혼자이니 오라비인 내가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어야겠다 마음을 먹었답니다.

게다가 거실에서 우리와 함께 있으면 가칠이가 체력 단련을 시켜준답시고 그 작은 애를 자꾸 엎어치고 메치고 하니, 금희의 안전을 생각해서라도 따로 지내는 것이 옳은 것 같아요.

나는 이리 사내답게 배포가 크건만, 큰누나와 작은누나는 그렇지 못하지요. 금희만 예뻐한다고 강새암을 부려서 달남 아저씨가 쩔쩔맨답니다. 심지어는 큰형까지도 서운해하는 눈치야요. 누나들처럼 대놓고 드러내진 않지만 입을 세모 모양으로 시무룩하니 해서 금희 노는 모양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지요.

큰누나는 아저씨가 말을 걸어도 쌀쌀맞게 무시하면서 가버리고, 작은누나는 아예 집을 나가 며칠씩이고 외박을 하지 뭐야요. 원체 북적대는 것을 싫어하는 어머니도 심기가 편치 않으시고, 소심이는 뭐 말할 것도 없지요. 가칠이는 오히려 놀이 상대가 생겼다고 좋아하는데, 워낙에 과격하게 놀아주니 차라리 다른 식구들처럼 금희를 못 본 척하는 게 낫겠다 싶지 않겠어요.  

이렇게 다들 아기처럼 구는 모습들을 보니 이 집에서 의젓하고 점잖은 건 나 하나뿐인 것 같지요. 경망스럽게 구는 것은 내 성품에는 맞지 않지만 집안 분위기가 이리 어두우니 막내아들인 내가 무언가를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와 누나들, 형들에게 혀를 까불거려 가며 어리광도 좀 부리고, 성미에 맞지 않게 실없는 농도 해가며 식구들의 기분을 풀어 주었지요.   

그러다 보니 달남이 아저씨도 좀 안되었다 싶었지요. 식구들 기분 풀어주자고 금희를 내칠 수도 없고, 하다못해 누나들 보는 데에서라도 금희를 좀 떼어두려고 하는데 금희가 자꾸 엄마라고 부르며 매달리니 (금희는 아저씨를 아빠도 아니고 엄마라고 부른답니다. 아직 아기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참말로 우습지 뭐야요) 아저씨도 참으로 난처하겠지요.

막례누나를 간신히 구슬려서 안으로 데리고 들어오면 달희누나가 토라져서 나가버리고, 달희누나를 어르고 달래는 사이에 어머니가 신경이 곤두서서 우리들에게 역정을 내시니... 아저씨도 참으로 곤란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아저씨의 기분을 낫게 할 무언가가 없나 하고 생각하다가 무언가를 잡아다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밖에 나가 둘러보고 다녔지요. 난 밖을 돌아다니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 이것저것 잡으려고 쫓아다니다 보니까 어느덧 해가 지지 뭐야요. 날이 어두워졌는데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혼자 있으니 무서워져서 눈물이 나려 했는데, 다행히 어머니를 만나서 집에 들어왔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여태 날 찾았는데 대체 어디 있었던 거냐면서 역정을 내지 뭐야요. 이리 배은망덕할 수가 있나요. 난 저에게 선물할 것을 구하려고 밖을 이리 헤매고 다녔는데... 몹시 괘씸했지만 요즘은 다들 예민하니 아량이 넓은 내가 참아주자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에, 아침 마실을 나갔던 가칠이가 무언가를 가져와 의기양양하게 나에게 보여주겠지요. 어떻게 잡았는지 두더지를 물고 와 자랑하기에 '옳지, 저것을 아저씨에게 주면 좋아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 날 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당연히 가칠이는 싫다고 하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참을성 있게 가칠이에게 매어 달렸어요. 저렇게 큰 두더지를 주면 아저씨가 얼마나 기뻐할까 하는 생각을 하니 포기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 와중에 곤희형은 두더지를 놓아주라고 가칠이를 타이르니 가칠이가 귀찮았는지 두더지를 가지고 집으로 가버렸어요.

황급히 집으로 따라 들어갔지만 가칠이는 두더지를 잠시 내려두었다가 놓쳐버린 후였지요. 이럴 때는 찾는 이가 임자이니 나와 가칠이는 방석을 들춰가며 열심히 찾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놓쳐버린 두더지를 생각하며 우울하게 앉아있는데 아저씨가 내게 오더니 두더지 잡으려 애쓴 거 안다고, 피곤하지 않느냐며 걱정을 해주지 않겠어요.

아저씨는 가끔 남의 속도 모르고 괘씸하게 굴고는 하지만 영 매정한 이는 아닌 게지요. 이번엔 오히려 아저씨 덕에 내 기분이 풀렸으니 다음에 진짜 좋은 것을 잡아다 주어야겠어요.


요즘 들어 깨달은 사실인데, 달남이 아저씨는 우리들 각자에게 다르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어요. 문희형에게는 볼기를 두들겨 주고, 곤희형에게는 청소기로 빗질을 해주지요. 달희누나와 막례누나에게는 입을 맞추어 주어요. 그리고 금희는 앞서 얘기했듯이 안방서 지내고요.

어머니는 항상 특별대접이지요. 식사 때에도 독상을 따로 받고, 간식도 더 많이 챙겨주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우리 집의 가장인 데다 이 집의 주인이니 나는 불평이 없어요. 어머니는 누구에게든 특별하지요.

소심이는 겁이 많으니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고, 가칠이는 워낙에 신출귀몰하니 붙들고 뭘 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나에게만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것인데 은근히 노염이 나지 뭐야요.

물론 아저씨가 내게 다가오거나 하면 열적어져서 도망을 치긴 하지만 그건 버릇이 되어 그런 것이고, 내가 종종 근처에서 아저씨를 빤히 쳐다보고 있거나 하는데, 그럴 때 모른 척하고 만지려고 해 보면 안 되나요?

만날 "점남이는 나만 보면 도망간다."며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내 입에 기분 나쁜 막대기를 쑤셔 넣을 때는 주저 않고 다가옵디다. 아. 형제들한테 그런 걸 해주는 게 부러워서 그러는 건 아니야요. 그냥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지요.

음... 문희형처럼 볼기를 맞으려면 곁에 오래 서 있어야 하니 그건 수줍고 (나에겐 해준 적도 없지만), 난 청소기 소리를 그리 좋아하지 않으니 청소기 마사지도 달갑지 않아요. 입을 맞추는 정도라면 재빨리 하고 곁을 뜰 수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아저씨가 좋아서 이리 생각하는 것은 아니야요. 그저 아저씨에게 내가 다른 식구들보다 뒷전인 것 같아 그것이 분해 그러는 것이지.

하루는 이런 생각을 소심이에게 말했는데, 소심이는 어찌 생각하는지를 물으니까 소심이는 역시 아저씨는 너무 커서 다가오면 무섭다고 하겠지요. 소심이와 붙어 앉아 이런저런 푸념을 하고 있는데, 밖에 나갔던 가칠이가 우당탕거리며 들어와서 무슨 이야기들을 그리 재미나게 하느냐고 물으며 나를 마구 밀쳐서 눕히지 않겠어요.

그래 아저씨가 왜 우리에게는 입을 맞추어 주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가칠이가 글쎄

"응? 나한테는 해주는데?"

라고 하지 않겠어요. 나는 멀거니 누워 가칠이에게 젖을 빨리는 와중에 심술이 나기 시작하더군요. 아니, 가칠이는 이것저것 부수어 대고 밖에 나가면 아무리 불러도 재깍 들어오지도 않는 데다가 가끔 어머니나 형들에게 대들기도 하는데, 내가 가칠이만 못하나요? 저런 도깨비 같은 애는 잘도 붙들고 입을 맞추어 주면서, 내가 도망을 가봤자 밖으로 나가는 것도 아닌데 뭐 그리 붙잡기 힘들다고...

나는 아저씨에게 너그럽게 굴려고 늘 애쓰는데, 아저씨는 날 천덕꾸러기 취급하는 거지 뭐야요. 안 그런가요?


요 근래 몇 달 동안 집안 분위기가 부쩍 어수선했어요. 집에 새 식구를 들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아저씨가 자꾸 수선스럽게 굴었지요. 멀쩡히 잘 있는 집기들을 옮기기도 하고, 자꾸만 집을 비웠어요.

예전에도 밖에 나갔다가 다음 날에 들어오는 일은 왕왕 있었지만 그런 날은 늘 밥상에 물고기 반찬이 올라오곤 했는데, 요즘은 밤을 새우고 오면서 물고기도 안 가지고 오지 뭐야요. 대체 어디서 뭘 하고 다니는지, 참 쓰잘데가 없지요.

아저씨가 자꾸 그리 정신 사납게 구니 집안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겠어요. 얼마 전엔 마당에 있는 커다란 캣타워가 와르르 무너졌어요. 다 아저씨가 부산스럽게 구니 게도 영향을 받아 그런 게지요.

그 캣타워는 아주 예전에 아저씨가 어머니에게 만들어 준 것이라고 하는데, 마당에서 예분이 누나와 운섭이 형이 쓰고 있었어요. 운섭이 형은 캣타워가 무너졌으니 좋은 놈으로 새로 만들어 달라고 아저씨에게 징징댔지만 어쩐 일인지 아저씨가 못 들은 척하지 뭐야요. 원래 뭐 해달라면 거절하는 법이 없는 아저씨인데, 예분이 누나까지 와서 아저씨를 졸라도 묵묵부답이었어요.

마당 캣타워가 무너지니까 어머니가 좀 서글퍼 보였는데, 우리가 쓰던 캣타워도 아닌 데에다 우린 더 좋은 걸로 거실에 가지고 있는데 왜 그러는지를 물으니 그 캣타워는 특별한 것이라고 하시겠지요. 나는 아저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그리 울적해하시니 어쩔 수 없이 아저씨에게 가서 새로 캣타워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어요.

내가 가서 부탁하면 그러마고 할 줄 알았는데, 아저씨는 곤란해하는 표정을 짓더니 나중에 만들어 준다고 하겠지요. 그래서 언제 만들어 줄 것인지를 캐물으니 두고 보아야 안다면서 입을 닫지 뭐야요.

나는 그런 아저씨에게 성이 나서 마당에 혼자 앉아 있는데, 운섭이 형이 몹시 서러운 얼굴을 하고 와서 옆에 앉겠지요. 둘이 같이 텅 빈 캣타워 자리를 보고 있는데, 별안간 운섭이 형이 영문 모를 말을 하는 거야요. 캣타워가 무너진 것을 발견한 아저씨 표정이 무척 후련해 보였다나요. 그 말을 들으니 아저씨가 무척 괘씸해서 나는 더욱 노여워졌어요.


우리는 이렇게 속이 상하건만 아저씨는 자꾸 집을 비우니 우리 성이 풀어질 리가 있나요. 운섭이 형과 예분이 누나가 원망스러워하거나 말거나, 어머니가 서글퍼하거나 말거나 아저씨는 또 영문 모를 일로 혼자 분주해하지요.

얼마 전엔 자동차에 무언가 잔뜩 싣고 어디로 가려다 말고 곤란한 얼굴로 금희를 쳐다보면서 무언가 고민하지 않겠어요. 그러더니 "넌 할아버지한테 가자."라고 하면서 금희를 데리고 가버렸어요.

아니, 그 어린애를 데리고 어디를 간다고, 할아버지라니요? 아저씨의 할아버지요? 아저씨도 할아버지가 있나요? 아니면... 설마 망태 할아버지?

밤이 되어도 금희가 돌아오지 않으니 나는 그 어린것이 염려스러워 죽겠는데 다들 태평하지 않겠어요. 그래도 한 집에서 한솥밥을 먹고 같이 살았는데 어찌 그리 다들 무정한 것인지...

사실 그 전에도 금희만 데리고 어디론가 가서 다음날에 들어온 적이 몇 번 있긴 했지만 누구 다른 이에게 데려다준다는 말은 없었는데, 아저씨도 이제 골치가 아파진 게지요.

가칠이와 곤희형 말고는 금희에게 살갑게 굴어주질 않으니 어린애 나름대로 마음고생을 했으려나요. 아저씨도 누나들 달래랴, 이불 빨래하랴 (금희는 아직까지 잠자리에 오줌을 싸나 봐요. 애들이 다 그렇지요 무얼.) 지쳐서 금희를 망태 할아버지한테 주어버리려는 게지요.

금희에게 좀 더 잘해줄걸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잠을 설치는 와중에 아저씨가 금희를 데리고 들어왔어요. 다행이다 싶었지만 망태 할아버지한테 갖다 주어 버린다더니 어찌 된 일일까 싶어 몹시 어리둥절했지요. 금희에게 물어보아도 '할아버지랑 테레비 보면서 놀았다.'라며 영문 모를 말만 하고.

테레비가 뭐냐고 물으니 춤과 노래가 나오는 커다란 기계래요. 거기서 봤다면서 금희가 춤을 추고 재롱을 보여주니까 다들 하나둘씩 모여들어 구경하겠지요. 흐뭇하게 웃으면서 금희를 보는 모습이 다들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금희를 걱정한 것 같아요.  

어찌 되었든 간에 금희가 돌아왔으니 결심했던 대로 앞으로는 금희하고 잘 놀아주고 해야겠어요. 내가 잘 돌보아주고 하면 식구들도 금희한테 좀 더 살갑게 굴 것이고, 그러면 달남이 아저씨도 더 이상 금희를 망태 할아버지한테 갖다 주려는 생각은 하지 않겠지요.


금희를 데리고 나갔다 온 뒤로도 아저씨는 수상쩍기 짝이 없는 행동들을 하며 혼자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집안의 집기들을 자동차에 싣고 어디론가 갔다 오기만 하면 지쳐서 드러눕고 집기들은 그대로 없어지고요. 집의 살림살이들을 대체 어디로 빼돌리는지 참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요.

그리고 물고기 반찬도 해주지 않아요. 캔에 든 참치나 닭고기 반찬은 종종 주지만, 예전처럼 물고기를 가져와서 손질하고 요리하는 일이 없지요.

물고기가 먹고 싶어서 달남 아저씨에게 물어보았더니

"난 요즘 분주해서 낚시를 갈 수가 없단다. 물고기는 다음에 가지고 오께"

"무엇 때문에 그리 분주하우?"

"집을 비워주어야 하는 날이 멀지 않았으니 준비를 해야지."

라고 하겠지요. 난 참말로 놀라고 말았어요.

집을 비우다니, 우리 어머니가 아저씨를 쫓아낸 걸까요? 아니면 아저씨가 더 이상 우리와 살고 싶지 않아 떠나려는 것일까요? 아저씨는 갈 곳도 없을 텐데 대체 어디로 가려고...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아 떠나려는 건지 묻고 싶었지만 나 때문이라고 할까 봐 겁이 나서 묻지 못했어요.

지난날을 떠올려 보니 내가 아저씨에게 좀 모질게 굴었지요. 간식 먹을 때 손 쓰지 말라고 했는데 내 입으로 간식을 가져오고 싶어서 붙잡다가 아저씨 손에 상처를 낸 일도 왕왕 있고요, 예전에 달희누나가 다쳐서 집에 있을 때 누나 기분을 낫게 해 준다고 아저씨가 장난감으로 놀아주었는데, 나도 놀고 싶어서 장난감을 물고 놔주지 않은 적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건 아저씨가 달희누나와 소심이하고만 놀아주려고 하니 내가 심술이 나서 그런 것이지요. 다들 밖에 나가 놀라고 하면서 난 집에서 소심이랑 놀아주라고 집에 있으라지 뭐야요. 뭐 물론 원래도 밖에 나가려는 생각은 없었지만 소심이와 큰누나만 위하는 듯이 말하니 내가 골을 내어도 나한테 나쁘다 할 수는 없지요. 안 그런가요?

내가 슬리퍼를 물어뜯어서 아저씨가 성이 난 걸까요? 그렇지만 나도 여가나 취미가 필요한데 그 정도는 아저씨가 이해해 주어야지요. 아니면, 아주 예전에 아저씨가 잿구덩이 근처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아저씨를 골려 주려고 재를 밟고 다녀서 아저씨의 성이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것일까요? 하지만 그건 아주 오래전 일인데. 거기에 아직까지 성을 내고 있는 거라면 아저씨는 참말로 사내답지 못하게 옹졸한 것이지요.

쳇. 떠나고 싶으면 떠나라지요. 누가 신경이나 쓰나요? 만날 우리들 중 눈에 띄는 하나를 붙들고 '네가 제일로 좋다.'라고 하면서, (내가 제일 좋다고 해준 적은 없어요) 다 거짓부리인 게지요. 우리랑 천년만년 같이 살 것처럼 굴었으면서, 무엇에 배알이 났는지 우리 보기 싫다고 가버리려 들다니. 갈 곳도 없으면서.

나는 아쉬운 것이 없으니 달남 아저씨가 떠난다고 해서 무어 그리 서러울 것도 없지요. 집에 일해줄 사람이 없으니 그건 어쩌나 싶지만 어머니가 우리 걱정스럽지 않게 다 알아서 하실 거야요. 우리 어머니는 참말로 수완이 좋으니까요. 그러니 나는 울적해하거나 아저씨 분주한 모양을 멀거니 보고 있거나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아저씨 없으면 죽고 못 살 것 같이 굴던 누나들과 형들은 어찌 저리도 태평한가요. 여태 하던 그대로 아저씨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세상에서 제일로다 좋다고 그러고. 그네들은 아직 아저씨가 떠날 것을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알고 있으면서도 뭐 다를 것이 있느냐 하고 생각하는 걸까요?

만약에 그런 거라면 다들 참말로 정이 없는 게지요. 평생 같이 살면서 우리를 돌보아 주었는데 어찌 저럴 수가 있나요? 다들 야속하고 참으로 매정하다 싶지만, 무어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지요. 나는 아저씨 하는 일에 상관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아저씨가 점점 더 자주 집을 비우면서 집안 분위기는 더 어수선해졌어요. 달남아저씨의 자동차가 마당에 서 있는 날이 드물 정도였지요. 아저씨도 그리 분주한 것이 무척 고된지 살이 많이 빠지고 눈 아래가 어둑어둑해졌어요.

아저씨가 간만에 집에 있으면 곤희형과 누나들이 무척 들떴는데, 우리들과 어울려 놀아주거나 도란도란 이야기라도 나누면 좋을 것을 아저씨는 마당을 내다보며 앉아 한숨만 쉬지 뭐야요. 누나들은 그런 아저씨에게 무척 심술이 나는 모양이었지만 무언가 근심이 있어 보이는 모습에 차마 골을 내지 못하고 입만 삐죽여 대었지요.

그렇게 달남아저씨가 기운 없이 까라져 있을 때에는 어머니 역시 서글픈 얼굴로 아저씨와 나란히 앉아 마당을 바라보곤 했어요. 무어 딱히 볼 것도 없는 마당을 그렇게 한참 동안 보면서 아저씨와 어머니는 가끔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보고 있자면 이상스럽게도 나까지 슬퍼졌어요. 나만 그리 느끼는 것은 아닌지 소심이는 눈물을 글썽대었고 형 누나들, 심지어는 가칠이조차 시무룩하니 앉아 분위기를 살피었답니다. 오직 금희만 천진스럽게 같이 놀자고 칭얼대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아저씨가 우리들 전부를 불러 모으지 않겠어요. 나는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려나 싶어 가슴이 무척이나 콩닥거렸어요.

달남아저씨는 한참이나 뜸을 들이더니 글쎄 며칠 뒤면 우리 모두가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병원을 가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것이 아니라 새 집으로 옮겨가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난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몇 번이고 다시 물어보았어요. 아니, 여기가 우리 집인데 다른 곳으로 가다니요? 난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고 너무 놀라 진정이 되지 않는데 나만 빼고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인지 다들 슬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지 뭐야요.

그럼 이 집은 누가 지키는 것인지를 물어보았더니 이제 이곳은 더 이상 우리 집이 아니랍니다. 그 말을 듣자 소심이가 왈칵 울음을 터뜨렸고 누나들과 곤희형도 눈물을 글썽였어요.

다들 제정신이 아닌 게지요.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순순히 듣고 그러마고 하다니. 내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어떻게 이곳이 남의 집이 되나요?

어머니와 형들, 누나들이 여기 영역을 지키려고 얼마나 많이 싸우고 또 다치고 그리 하였는데. 그리고 이 동리에서 우리 어머니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고, 또 고양이들 뿐만 아니라 사람들까지도 '노란 고양이들이 사는 집'이라고 하면 어디인지 다 알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곳이 우리 집이 아니게 되나요?

아저씨는 짐짓 밝은 목소리로 새 집은 여기보다 훨씬 좋다며 수선을 떨었지만 난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아저씨가 혼자서 어디로 떠나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어서 조금은 좋았지만, 이 집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가서 다 함께 사는 거라니요. 그게 무슨 고양이 풀죽 쑤어 먹는 소리인가요.

난 절대로, 절대로 이 집을 떠나지 않을 거야요. 어디 두고 보라지요. 내가 이 집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는지.


집을 떠나는 날이 가까워져 오면서 나도 아저씨와 같이 무척 분주해졌습니다. 난 이곳에서 버티며 집을 지켜야 하는데 혼자서는 무섭고 힘들 테니까요. 그러니 가족들을 설득해 보아야겠다 하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머니가 집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새 집을 마련한 당사자일 테니 어머니를 설득하는 것은 소용이 없을 것이고, 문희형은 언제나 어머니 뜻에 순종하니 내가 하자는 대로 할 리가 없지요. 곤희형은 무조건 아저씨를 따를 것이고, 누나들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그래서 나는 소심이와 가칠이를 꼬여내기로 작정하였는데, 참 실망스럽게 되었어요.

가칠이는 본디 순순히 말을 듣는 법이 없으니 당연히 가지 않겠다고 뻗댈 줄 알았는데, 아저씨가 새 집에 가면 가지고 놀 것도 더 많고 신기한 것들도 많다고 한 말에 단단히 홀려서 얼른 새 집으로 갔으면 하고 바라고 있지 뭐야요.

그리고 겁 많은 소심이는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이 무서울 테니 조금만 구슬리면 될 줄 알았는데, 어머니 말씀을 거역하고 할아버지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으면 두 분이 얼마나 실망하겠느냐며 되려 나를 설득하려 들겠지요. 참 이런 낭패가 있나요.

기운이 빠져서 햇빛이나 쪼이려고 마당으로 나갔는데, 운섭이 형이 슬픈 얼굴로 한숨을 쉬며 앉아 있겠지요. 그래서 나는 별 뜻 없이 형 곁으로 가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어요.

운섭이 형은 당연히 달희누나와 곤희형이 하자는 대로 할 거라 생각하고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운섭이 형이 글쎄

"아니. 난 가지 않을 거야."

라고 하지 뭐야요.

나는 귀가 번쩍 뜨여서 어찌 그러려는 것인지를 물었지요. 그랬더니 운섭이 형은, 만약 자신과 예분이 누나가 여기를 떠났는데 집을 떠난 어머니와 여동생이 찾아오면 어찌하느냐고 하지 않겠어요. 그 말을 들으니 나는 운섭이 형이 참으로 애처롭게 느껴졌어요.

아주머니와 막내딸이 이 동리를 떠난 것을 모르는 이가 아무도 없는데, 운섭이 형 혼자만 아직도 그네들이 근처에 있으며 언젠간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지요. 저만치서 우리 얘기를 듣고 있던 예분이 누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양을 보니 누나가 입이 닳도록 설명하고 타이른 모양인데 운섭이 형이 보통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닌 게지요. 저리 고집이 세니 똑같이 고집불통인 달희누나와 동무 지간이겠지 싶어요.

운섭이 형은 허우대가 거의 문희 형만 한 데다 같은 또래의 동무이지요. 그런데 큰형은 그리도 어른스러운데 운섭이 형은 어찌 저리 물정 모르는 어린 고양이마냥 오지도 않는 엄마를 기다리면서 고집을 부리는지, 마음 한구석이 짠해오지 않겠어요.

나는 어머니와 떨어져 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운섭이 형이 떠난 아주머니가 얼마나 보고 싶으면 자기가 그리도 좋아하는 달희누나와 떨어져 살게 되는 것도 감수하려는 것일까 하고 어렴풋이 짐작이 되지요.

운섭이 형이 딱하긴 하지마는, 어쨌거나 나에게는 잘 되었지요. 운섭이 형이 여기에서 버틴다면 예분이 누나도 있을 것이고, 나는 그네들과 함께 이 집을 지키면 될 테니까요. 남의 집을 뺏으러 오는 다른 이들을 혼자서 쫓아내려면 겁이 날 테지만 셋이 함께 있으면 그래도 의지가 되지 않겠어요?

저쪽에서 예분이 누나가 속 터지는 얼굴을 하고 발을 탕탕 구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지마는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어요.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집을 지켜내려면 앞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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