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도 말했지만 안방에도 하숙을 놓고 있는데, 우리는 안방에 들어갈 수 없어요. 그것이 나는 참으로 이상스럽지요. 마당에도 하숙을 놓았지만 우리가 마음대로 들락거릴 수 있는데, 왜 안방에는 집주인인 우리가 못 들어가나요?
어머니가 단단히 주의를 주었는데 억지로 밀고 들어가면 호되게 혼이 날 테니 어쩔 수 없이 그러려니 하지만 난 안방에서 살고 있는 이가 못내 괘씸스러워요.
한번 들어간 적이 있는데, 혼자 들어가면 들킬까 봐 곤희 형과 가칠이와 함께 작당을 하고 들어갔지요. 난 조용히 구경만 하고 나올 셈이었는데 형과 가칠이 탓에 들켜버리고 말았어요.
곤희 형은 안방에 사는 이를 무척 좋아하는 까닭에 그이의 옷에 얼굴을 부비고 온몸을 비벼대어 온통 털을 묻혀놓았고, 가칠이는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손에 잡히는 대로 부수고 다녔으니 들통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지요.
그래도 난 입 꾹 다물고 있을 심산이었는데, 거짓말을 못하는 소심이가 냉큼 내가 들어갔다고 고해버렸지 뭐야요. 덕분에 어머니께 꾸중을 실컷 들었지요.
안방에 사는 이는 사람이야요. 이름은... 응, 내 이름이 김점남인데 앞은 성이고 다들 점남아 하고 부르니 그이의 이름은 달남이지요. 누이들과 형들은 그이를 할아버지라고 불러요.
참 바보 같지요. 머리가 하얀 노인이라면 모를까 그리 젊은 이를 할아버지라고 하면 뭐, 그이가 우리 어머니의 아버지게요?
난 그래서 그냥 달남 아저씨 혹은 달남아재라고 부르지요. 형제들에게 그이를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말래도 말을 듣지 않아요. 오히려 나를 백치 보듯이 쳐다보지요. 참 기가 막힐 노릇이야요. 대체 누가 백치인지 원...
아저씨가 안방에 세들어 산지 얼마나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살고 있었으니, 이 집에서 산지 나보다 오래되었지요. 평생을 같은 집에서 살았으니 이제는 익숙할 법도 하건만 난 아직도 달남아재가 이상스러울 때가 많아요.
아저씨는 세들어 사는 값으로 우리 집의 일을 해주어요. 엄마 대신 밥도 차려 주고 간식도 챙겨주고, 스크래처나 숨숨집도 만들어 주고 하지요.
캣타워 같은 것을 뚝딱뚝딱 만드느라 분주한 것은 이해를 하겠는데, 안 보이는 곳에서 무얼 하느라 낮에 그리 보기 힘든지 영문을 모르겠어요.
밤에 잠을 자고 일어나면 우리 아침밥을 차려주고 마당에 세워진 기계에 올라앉는데, 곤희형은 그게 자동차라고 했어요. 아저씨가 들어간 자동차는 스르륵 움직여서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그러고는 저녁이나 되어야 다시 돌아와요.
하루 종일 그 안에서 무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참 실없지 뭐야요. 돌아다닐 거면 직접 걸어 다니면서 바위에 얼굴도 문지르고 나무에 엉덩이도 비비고 하면서 영역이나 넓힐 일이지. 덩치가 그렇게 커다란 사내의 영역이 기껏 자동차 안이 전부라니. 그럴 거면 그냥 집 안에서 우리들 방석이나 하나 더 만들어 주고 하면 좋을 텐데요.
나는 아저씨가 못마땅한 구석이 많지만 식구들은 다들 아저씨를 따른답니다. 과묵한 문희 형도 아저씨에게 슬쩍 엉덩이를 갖다 대거나 하고, 특히나 곤희 형은 달남아재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지요.
곤희 형은 항상 아저씨랑 붙어있고 싶어 하는데 아저씨는 툭하면 청소를 해대니 청소기가 무서웠던 곤희 형은 무척이나 곤란했겠지요. 그러다가 곤희 형은 청소기를 좋아해 보기로 작심을 했다고 해요. 얼마나 노력을 했던지 지금은 아저씨가 청소기를 틀면 흥분해서 달려와 앞에 드러누울 정도가 되었지요.
그러면 아저씨는 곤희 형에게 청소기 마사지를 해주어요. 브러쉬 탈착이 원터치로 가능한 LG 코드 제로 청소기는 가볍고 먼지를 압축해서 버릴 수도 있기에 사용하기도 편리하지마는 흡입력이 너무나 뛰어난 탓에 오히려 청소기 마사지엔 부적합해서 빨간 유선 청소기로 곤희 형과 놀아주지요. 코드 제로 청소기의 흡입력이 어느 정도냐 하면 카펫에 들러붙은 도둑풀도 제거하고 방석을 뒤덮은 털도 말끔히 빨아들인답니다. 백색가전은 역시 LG가 최고이지요.
깍쟁이 달희 누나도 달남아재를 아주 좋아하는데, 할아버지도 아니고 "하야부디~~~"하며 혀짤배기소리를 내면서 어리광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 속으로 몹시 아니꼬워요. 나한테는 살쾡이처럼 굴면서 아저씨한테는 강아지처럼 굴지요.
그런 모습을 보다 보면 공연히 달남 아저씨에게 더 심술이 나지만 행여라도 아저씨에 대해 나쁜 소리를 하면 어머니와 형, 누나들에게 몹시 꾸지람을 듣기 때문에 소심이에게만 속을 털어놓아요. 그런데 소심이도 날 빤히 쳐다보기만 할 뿐 내가 옳다고 맞장구를 쳐주지 않으니 분하지 뭐야요.
아저씨는 가끔 막대기를 하나 가져와서 내 입에 쑤셔 넣고 이리저리 문질러댑니다. 그것만으로도 언짢은데 역한 맛까지 느껴지니 입 근처에서 왔다 갔다 하는 손가락을 확 물어버리고 싶어요. 하지만 아저씨를 물었다가는 눈물이 쏙 빠지게 매를 맞을 줄 알라고 어머니가 엄포를 놓았기에 꾹 참는답니다.
정작 어머니는 아주 예전에 아저씨를 문 적이 있다고 얼핏 들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이었는지를 물어보면 어머니는 "그럴만했다."라고 딱 잘라 말씀하실 뿐 자세히 알려주시질 않아요. 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하시는 일엔 뭐든지 이유가 있으니까, 분명히 아저씨가 무언가 물릴 만한 행동을 했을 거야요.
나는 가끔 아저씨의 슬리퍼를 물어뜯는답니다. 그러면 늘 분주해서 나를 아는 체해주지 않는 아저씨도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달려오거든요. 그것이 참말로 재미가 좋아서 물어뜯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어머니나 형 누나들에게 혼나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러웠어요. 그런데 다들 보고 피식피식 웃기만 할 뿐 딱히 역정을 내지 않으니 다행이다 싶었지요.
하루는 혼신의 힘을 다해 슬리퍼를 뜯고 있는데, 곤희 형이 지나가면서 나를 보고는 "자식아. 좋으면 그냥 좋다고 해."라고 하지 않겠어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지요. 난 그저 슬리퍼를 뜯으면 아저씨가 약이 올라하는 것 같으니 골려주고자 하는 것인데, 내가 달남 아저씨가 좋아서 관심을 끌고자 하는 거라고 식구들이 뒤에서 숭을 보고 있었나 봐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열심히 설명했는데, 조용한 막례 누나까지도 음흉한 표정으로 히죽히죽 웃어대니 어째 꾸중을 듣는 것보다도 더 눈치가 보이게 되었어요.
아저씨는 사냥을 못하는데, 우리가 사냥을 해오면 그것을 몹시 부러워하는 것 같아요. 형제들이 쥐나 비둘기 등을 잡으면 자꾸 기를 쓰고 빼앗으려고 하거든요.
하루는 집에 잠자리가 들어왔는데, 소심이가 보면 무서워할까 봐 내가 얼른 잡았지요. 밖에 나간 식구들이 들어오면 자랑하려고 잘 놓아두었는데, 아저씨가 보더니 자기 주려고 잡아왔냐고 묻지 않겠어요?
그러더니 내가 그러라고 허락하지도 않았는데 잠자리를 집어서 먹어버리지 뭐야요. 저 주려고 잡은 것도 아닌데.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리 좋아하면서 천천히 아껴 먹는 모습을 보니 잠자리를 무척 좋아하는구나 싶었지요.
그 뒤로 잠자리가 보이면 잡으려고 했는데 (아저씨 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고, 식구들한테 자랑하려는 거야요) 잠자리가 집에 들어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니지요.
하루는 밖에 나갔다가 사마귀 알집을 발견했어요. 집에 가지고 오는 길에 가칠이에게 들통나는 바람에 두들겨 맞고 빼앗길 뻔했지만 간신히 도망을 쳤지요.
딱히 아저씨에게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잠자리 한 마리에 그렇게 고마워하니 이렇게 귀한 것을 보고는 얼마나 좋아할까 싶어 궁금증이 약간 들었어요. 사마귀 알집을 집 안에 두면 온 집안이 사마귀 밭이 될 테니까요.
그런데 달남 아저씨는 그렇게 힘들게 가져온 것을 보고 고마워하기는커녕 가지고 밖에 나가라고 나를 내쫓으려 들지 않겠어요? 내가 딱히 생색을 낸 것도 아니고 무심하게 툭 쳐서 주었는데 그걸 집어서 밖으로 던지지 뭐야요.
어이가 없어서 멀거니 있는 사이에 가칠이가 번개같이 가로채는 바람에 가칠이가 밖으로 내쫓겼지요. 아저씨는 잠자리는 맛있게 먹지만 사마귀는 좋아하지 않나 봐요. 딱히 아저씨 주려고 가져왔던 것은 아니지마는, 아저씨의 속은 참으로 알 수가 없어요.
가끔 어머니나 형제들에게 타박을 듣곤 하는데, 달남 아저씨에게 어찌 그리 매정하게 구냐고요. 아저씨는 나에게 고맙게 굴고 친해지고자 하는데 그리 내외를 하면 아저씨가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겠냐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참으로 억울하고 서럽지 뭐야요.
나는 아저씨에게 너그럽게 굴어야지 하고 늘 다짐하는데, 아저씨가 나에게 서운하게 굴기 때문에 내가 토라지는 것을 왜 아무도 몰라주는지. 아저씨가 나에게 서운하게 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야요. 이야기를 하려면 끝도 없지요.
볼기를 두들기는 것만 해도 그렇지요. 문희 형은 가끔 조용히 아저씨 곁으로 가서 아저씨 다리에 머리를 부빕니다. 그러면 아저씨는 문희 형의 볼기를 투덕투덕 두들겨 주어요. 어떤 이유에선지 문희 형은 그것을 몹시 좋아하는데, 나는 그 느낌이 궁금해서 나도 한 번 해주었으면 싶지요.
그런데 아저씨는 내가 옆에 있는데도 내 볼기를 두들기려고 하지 않아요. 누가 물으면 "우리 집에서는 문희만 이것을 좋아한다."라고 하지 않겠어요? 아니, 나나 소심이, 운섭이 형이나 예분이 누나는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도 모르는데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찌 아나요?
사실 아주 예전에 아저씨가 내 볼기를 두들기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는 몹시 수줍은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도망치고 말았지요. 그래서 '다음에 아저씨가 내 볼기를 두들기려고 오면 모른 척하고 가만히 있어야지.'하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는데 아저씨는 내가 큰 맘을 먹고 근처에 가도 "점남이는 만지는 것을 싫어하니까."하고 손을 뻗지 않는 거야요.
아니, 처음에 부끄러워서 도망 좀 쳤기로 어찌 그리 매정하게 마음을 딱 접고 시도도 안 해보나요? 그만해도 퍽 속상한데 그것이 다가 아니랍니다.
가끔 아저씨가 날 슬쩍 만질 때가 있어요. 그럼 나는 모르는 척하고 가만히 있는데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될 것을 꼭 큰소리로 알리지요.
"아니 점남이. 왜 도망 안 가? 신기하다. 어쩐 일이야?"하고 온갖 법석을 하니 미처 모르고 있던 형제들도 다 알고 쳐다보아요. 그럴 때 그네들을 보면 곤희 형과 막례 누나는 히죽히죽 웃으며 저들끼리 속살거리고, 달희 누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지요. 그러면 나는 잘못한 일도 없는데 무안해서 속이 상해요.
또 서운한 일을 얘기하자면, 옳지. 물고기 사건이 있었지요.
아저씨는 식사 때가 되면 우리 밥그릇에 밥을 채워 주는데, 가끔은 반찬으로 참치도 얹어주고, 닭고기도 얹어주지요. 아저씨는 우리랑 다른 것을 먹는데, 무슨 맛인지도 모를 것들을 먹어요. 나는 그것이 늘 신기해서 아저씨가 밥상을 차리면 킁킁 냄새도 맡아보고, 앉아서 아저씨 잡숫는 것도 구경하지요. 아저씨가 희한한 것들을 먹으니 그것이 신기해서 그러는 것이지 아저씨가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야요.
하루는 아저씨가 우리 밥을 차려주고 우리가 다 먹고 나니까 그제야 식사를 하겠지요. 그래 가만히 앉아서 아저씨 잡숫는 걸 구경하고 있노라니까 아저씨가,
"점남이는 어떤 반찬을 제일 좋아하누?"
하고 묻겠지요. 그래 물고기를 좋아한다고 했더니, 마침 상에 놓인 물고기의 살을 발라 내 입에 넣어줍니다. 나는 물고기를 먹으면서
"아저씨는 무슨 반찬이 제일 맛나우?"
하고 궁금하지는 않지만 물으니까, 그는 한참이나 빙그레 웃고 있더니,
"나두 물고기."
하겠지요. 나는 나도 모르게 코를 벌름거리면서
"아, 나와 같네. 그럼 가서 어머니한테 알려야지."
하면서 일어나 거실로 뛰어들어가면서
"엄마, 엄마, 달남 아저씨두 나처럼 물고기를 제일 좋아한대."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엄마는 밖에 나가고 없지 뭐야요. 그런데 마침 집에 있던 큰누나가
"것두 몰랐냐. 흥."
하고 코웃음을 치겠지요. 나는 왠지 무안하기도 하고 멋쩍어져서 멀거니 서있는데, 달희 누나는 나를 신경 쓰지 않고 곱게 접어 놓은 옷을 펼쳐서 정성스럽게 핥으며 주름을 펴기 시작했어요.
나는 시무룩해져서 구석에 앉아 있는데, 식사를 마친 아저씨가 밖으로 나왔어요. 그러더니
"우리 점남이가 좋아하는 물고기를 잡아 와야겠네."
그러면서 긴 막대기를 챙겨 메지 뭐야요. 나는 왠지 으쓱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져서 큰누나를 한 번 흘겨봐주고 소심이를 찾으러 갔어요.
아저씨는 사냥도 못하는데 어떻게 물고기를 잡아 온다는 건지 모르지만, 물고기를 가져와서 나에게 주면 나는 식구들한테 자랑한 다음 혼자 먹지 않고 같이 나누어 먹어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얄밉게 구는 큰누나에게도 조금 생색을 낸 다음에 같이 먹자고 해야지 하고 작정을 하였지요. 달희 누나는 나와 아저씨가 친한 것을 보고는 몹시 새암을 낼 것이라고 생각하니 고소한 기분이 들어서 샐샐 웃음이 새어 나왔어요. 그런 생각을 하니 무척 기대가 되어서 아저씨를 기다렸지요.
집으로 돌아온 아저씨는 '오늘 어복이 없어서 멸치만 몇 마리 건져왔다.'라고 하겠지요. 난 멸치도 몹시 좋아하니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이건 점남이 주려고 잡아온 거'라고 하지도 않고 그릇에 똑같이 나누어 주지 뭐야요.
나 준다고 물고기를 잡아온 거니 모두 날 주어야 맞는 일이지요. 그리고 내가 허락을 하면 모두와 나누어 먹도록 할 일이지. 아저씨가 나와 친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식구들에게 알리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게 뭐야요.
거기에 아저씨는 내가 눈을 홉뜨고 보고 있는데도 어머니 그릇에 멸치를 더 덜어주면서 안 잡숫겠다는 어머니를 어르고 달래겠지요.
속이 상해서 씨근대고 있노라니 문희 형이 "그럴 시간에 한 입이라도 더 먹어라."라고 하겠지요. 그러고는 그릇에 머리를 박더니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고 묵묵히 먹더군요. 큰형 먹는 모양을 보고 있자니 넋 놓고 있다가는 맛도 못 볼 것 같아서 나도 허겁지겁 먹었지마는, 몹시 심술이 나고 아저씨가 나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러고는 계속 속이 상한 채로 며칠째 있는데, 무엇 때문에 심술이 났는지를 말하지 못하니 식구들도 나를 달래주지 않겠지요.
그렇게 뚱한 채로 있다가 어머니께 꾸지람을 들었어요. 네 할아버지는 무척이나 고마운 분이고 잘해주려고 하는데 어찌 그리 심술 사납게 구는 것이냐고 하지 않겠어요.
나도 무척 성이 나서 어머니께 대들었는데, 달남 아저씨는 어머니의 아버지도 아닌데 왜 내 할아버지라고 하는 것이며, 우리 집에 세 들어 살고 있으니 나에게 좋게 보이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왜 내가 고마워해야 하는 것이냐고 따졌지요.
버릇없이 군다고 어머니가 역정을 내실 줄 알았는데 입을 떡 벌리고 날 멍하니 바라만 보고 계시더군요.
내가 너무 바른말을 하였나 하고 생각하는데 옆에서 같이 입을 벌리고 있던 달희 누나가 "엄마. 이 집 막내아들, 천치 아니우?"하고 헛웃음을 짓지 뭐야요. 그리 심한 말을 했다고 어머니께서 달희 누나를 꾸짖으실 줄 알았는데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자리를 뜨셨어요.
나는 참으로 분하고 속이 상해서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가끔 눈치가 없다는 말은 듣지만, 천치라니요? 내가 공연히 심술을 부리는 것도 아니고, 나의 아저씨에 대한 유감이 시작된 것은 아주 오래되었는데. 내가 젖먹이 었을 때부터 그랬다고 기억하지요. 기억을 이렇게 잘하는 천치도 있나요?
나와 가칠이, 소심이는 창고 안에서 태어났어요. 창고 안은 좀 춥고 어두웠지만 우리끼리 꼭 붙어 있으면 따뜻해서 그럭저럭 괜찮았기에 나는 불평이 없었지요.
어머니는 뭐가 그리 바쁜지 우리에게 젖을 주고 돌보아 주다가도 어디론가 가버리곤 했어요. 어머니가 자리를 비우면 가끔 커다란 고양이들이 들락거리며 우리를 몰래 구경하곤 했는데, 그땐 아무것도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네들은 형, 누나들이었던 게지요.
어느 날 우리끼리 꼭 껴안고 자고 있는데 바깥이 무척 시끄러워서 눈을 떴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무서워져서 울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갑자기 커다란 사람이 창고에 들어오지 뭐야요.
우리는 모두 혼비백산했는데 특히 소심이가 경기를 하며 놀라서는 재빠르게 기어서 도망을 가버렸어요. 그 거인은 우리를 보더니 혼자 한숨을 쉬고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우리에게 다가오지 뭐야요.
나와 가칠이는 침도 탁탁 뱉고 카카거리는 소리도 내면서 열심히 싸웠지만 체급의 차이가 너무 커서 상대가 되지 않았어요. 모욕적 이게도 우리는 그의 손에 달랑 들려서 어디론가 옮겨졌지요.
가는 동안 나는 어머니가 이걸 보면 당신을 가만 두지 않을 거라고 위협도 하고 벗어나려 애도 썼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창고에 혼자 남은 소심이가 걱정도 되었지요.
거인은 우리를 집 안에 들여놓고 부스럭거리며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거기에 어머니가 계셨어요. 그때 난 이곳이 어머니 집이고 여태 눈에 뵈지 않을 때에는 여기에 계셨던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지요.
난 잘 되었다 싶어서 이제 어머니가 그를 혼쭐 내주실 거라 기대하며 기세 등등했는데, 세상에 어머니가 우리를 모르는 척하시지 않겠어요.
난 처음에 어머니가 우리와 놀아주려 농을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그동안 거인과 싸우느라 배가 무척 고팠는데 우리에게 젖도 주지 않고 못 본 척 계시지 뭐야요.
난 무척 슬프고 눈앞이 캄캄했는데, 거인이 몹시 난감해하더니 우리를 집어 들고 어머니 얼굴 앞에 들이대며 어머니를 다그치는 듯했어요. 어머니는 뭐가 어떻다 말을 하지도 않고 고개를 외로 꼬고 계셨지요.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던 우리 어머니가 우리를 남의 집 고양이 대하듯 하니까 하늘이 무너진 듯한 기분이 들면서 어머니가 야속했어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지요. 어머니가 우리를 모른 척하는 까닭은 저 거인 때문이라고. 우리를 다정하게 대했다가는 우리를 해칠까 봐 그러는 것이라고 짐작이 되었어요. 그러자 그 사람이 몹시 미워졌습니다.
그땐 나도 어렸기에 그가 어머니 집에 멋대로 들어와 행패를 부린다고 생각했지요. 어머니가 왜 민망해하는 듯 굴었는지는 그때도 몰랐지만 지금도 모르겠어요.
나는 속상한 데다 배도 고프고, 창고에 혼자 있을 소심이가 걱정도 되고 해서 가칠이와 끌어안고 목놓아 울었어요. 거인은 (달남이 아저씨지요) 소심이가 혼자 창고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계속 창고를 들락거리면서 찾는 듯했지만 쉽게 눈에 띌 소심이가 아니기에 그는 계속 허탕만 쳤지요. 나는 소심이가 추운 창고에서 혼자 무서워하고 있느니 차라리 잡혀서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 나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밤은 깊어가고 우리는 배가 고파서, 달남이 아저씨는 지쳐서 기진맥진해 있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어요. 집 안은 춥지 않았지만 나는 몹시 허전하고 무서운 생각이 들어 가칠이를 꼭 끌어안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살금살금 우리 곁으로 다가오지 않겠어요. 그러더니 젖을 주기에 나와 가칠이는 허겁지겁 젖을 빨았지요. 배가 부르니까 좀 안심이 되는데 그제야 어머니가 우리를 꼭 안아주면서 살뜰히 핥아주지 뭐야요. 그러니까 소심이 걱정도 되고, 이 모든 게 달남아저씨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분하기도 해서 왈칵 울음이 터져 우와앙 하고 울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달남아저씨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뭐에 홀린 사람마냥 창고로 향하더군요. 나는 '또 가봤자 소심이는 꽁꽁 숨어서 나오지 않을 텐데.'하고 생각하고 더 크게 울었습니다.
그런데 집 안에 들어온 아저씨 손에 무언가 희끄무레한 것이 보이지 않겠어요. 무서워서 울지도 못하고 있는 소심이를 데려온 거야요. 나와 가칠이는 너무나 기뻐서 몸에 거미줄이 잔뜩 붙은 소심이를 얼싸안고 같이 울었지요.
소심이를 데려온 덕에 달남아재에 대한 유감이 좀 덜해졌지만, 야속했던 마음이 쉽사리 풀리지가 않아서 아저씨가 뭘 하든 난 그에게 친하게 굴지 않겠노라고 마음먹었어요.
어머니는 언제 우리를 못 본 척했냐는 듯이 다시 우리를 애지중지 보살펴 주셨고 가칠이와 소심이와 함께 있으니 마음이 무척 좋았어요마는, 가칠이가 유난스럽게 젖을 빠는 바람에 난 항상 배가 약간씩은 고팠어요. 내가 잘 나오는 젖을 물고 좀 빨라치면 나를 쥐어박거나 밀쳐서 제가 차지했지요. 그렇게 젖이 항상 조금씩은 아쉬웠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내 입에 뭘 물려주었어요.
난 여전히 아저씨가 유감스러운 터라 또다시 침을 뱉으며 저항했는데, 입에 젖이 들어오지 뭐야요. 아저씨가 통에 젖을 담아서 내게 먹여주고 있었던 것이지요.
난 아저씨에 대한 원한도 잊고 정신없이 젖을 빨았는데, 배가 부르고 나니 그제서야 아저씨가 이 집에 침입한 무뢰한이 아니고 여기서 살면서 어머니 일을 도와주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 고양이들은 공동으로 육아를 하니까 어머니 산후조리도 도와주고 우리를 같이 키워주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것을 알고 나니까 우리 어머니가 새삼 더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저렇게 커단 사람에게 이러저러한 것을 하도록 시키기도 하고, 우리도 돌보아 주도록 만드니 어찌 대단하지 않겠어요? 다 어머니가 지시한 것이니 우리 방도 만들어 주고 화장실도 치워주고 젖도 주고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아저씨도 나처럼 사내인데 저 병에 든 젖은 어디서 났겠어요?
그래서 나는 가칠이가 아무리 법석을 하고 날 쥐어뜯어도 젖이 부족하지 않게 배불리 먹을 수 있었어요. 처음에 무척 나쁜 무뢰배라고 생각했던 오해는 금세 풀리었지만 어째 좀 열없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아저씨에게 데면데면하게 구는 것이 버릇이 되었지요.
내가 이리 예전 일까지 모조리 기억하는데, 내가 이래도 천치인가요? 큰누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공연히 얄궂게 구는 게지요 무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