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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o Dec 23. 2021

독서는 위험해

진정하고 젤리나 씹으라고.

전반적으로 나는, 산만한 사람이다. 진지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내 머릿속에는 총천연색의 무지개가 펼쳐져 있고 나는 온갖 동물 친구들과 함께 뛰논다. 밥을 먹는다거나 길을 걷는다거나 하는 행위를 할 때에도 집중하지 않으면 무심코 혼잣말을 하거나 히죽히죽 웃기 십상이다.

그런 내가 딱히 애쓰지 않아도 집중할 수 있는 몇 가지 일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독서이다. 난 책을 읽는 시간엔 딱히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다. 책의 내용만이 오롯이 머릿속을 채우니 몰입할 수 있고, 나를 잊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독서를 좋아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어떤 책은 읽기가 힘들다. 물론, 기운차게 읽기 시작했는데 책이 거지 같다거나 너무 지루하면 집중하기 힘들지만 지금 말하는 것은 그런 종류의 고난이 아니다.

내가 좋아할 요소들을 갖춘 내 취향의 책인데, 어쩐지 술술 읽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몇 문장을 읽고는 멍해지고, 두어 페이지를 읽고는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러니 속도가 나지 않고 책을 다 읽고 나면 전력질주라도 한 것 마냥 탈진해버린다. 그리고 며칠이나 축 늘어진 채로 기운 없이 유령처럼 빌빌대게 된다. 독서란, 참 무서운 행위이다.


책을 읽는다는 건, 내게는 자신을 잊는 의식 같은 것이다. '나'는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리고 이야기에 몰입할 때 나는 누구 말마따나 유성이 되고, 중력을 거스르는 호랑이가 되며, 레이싱카처럼 질주하고, 하늘을 불태우며, 초음속의 인간이 되어 "날 멈추려고 하지 마!"라고 소리친다. (프레디 머큐리가 독서에 대해 노래했던 건 아닌 것 같지만, 넘어가자.) 요컨대 진도가 쭉쭉 나간다는 소리다. (이렇게 설명하니 정말 볼품없는걸)

그런데 책을 읽으며 자꾸 '내'가 끼어들게 되면 유성은 흐물흐물 거리며 떨어지고 초음속의 인간은 초라하게 발을 끌며 자리를 맴돈다.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는 것은 별 일 아니지만 그것이 고통스러우니 문제이다.

그렇다. 몇몇 책들은 자꾸 내 의식에서 나를 불러내 그곳에 대입시키고, 나는 그것이 괴롭다.


그럼 스트레스를 사서 받지 말고 책을 덮어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말이 쉽지. 내 자존심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심리 치료를 받다가 상대의 도발에 넘어가 울음을 터뜨리고는 뛰쳐나가 다시는 가지 않겠다며 전화를 피하고, 다시는 언급조차 않는 것과 비슷하다. 난 울면서 뛰쳐나오지 않을 것이고, 혹여 그랬다고 하더라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는 다시 나가 날 울린 그 인간을 마주할 거다. 또다시 징징 울며 뛰쳐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식으로 상처 받은 티를 내다니. 어림없지. 흥.

그러니 지금 이런 걸 쓰고 있을게 아니라 읽던 책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거다. 그래 봤자 책이잖아. 그냥 쭉 읽어버려.


그리고 언젠가는 내 이야기를 써야 하겠지. 지금은 그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지만, 할 수 있는 날이  거다. 

그때까지는 나무 주위를 돌면서 곁가지에 핀 예쁜 꽃이나 보면서 즐기고, 나무 위에 올라가 맛있는 술이나 마실 것이다. 그렇게 즐기면 되지 꼭 나무를 잘라서 조각조각 내어 들여다봐야 하나?

나무 밑둥이 시커멓게 썩어 있거나 속이 텅 비어 있을지 모르지만, 그거야 나중에 걱정할 일이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현명한 거지. 뭐하러 사서 마음고생을 해. 안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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