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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o Jan 01. 2022

아 찬란했던 그때여

건강의 찬가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아도, 아프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삶의 질을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남의 관심을 끌 수 있을 정도로만 아프고 싶어 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하지만 아무리 사소한 질병이나 통증이라도 몸에 문제가 있으면 삶의 질은 수직으로 낙하한다. 아무리 관심이 고픈 애정 결핍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통증 혹은 장애, 질환과 타인의 한 조각 동정을 기꺼이 맞바꿀 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건강하고 싶어 한다. 심지어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이들도 건강을 해치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다. 최소한 의도적으로는. 자신의 손으로 삶을 끝내는 것과 육신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니까.


난 전반적으로는 건강하게 살아왔다. 잔병치레도 가끔 했고 예전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절을 종종 하기도 했지만 딱히 고질적으로 아프거나 했던 기억은 없다. 독일에 있을 때는 콜린성 두드러기, 캐나다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부 트러블로 스트레스를 좀 받기는 했지만 환경이 급격히 변화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되니 예외로 치고. 

멍청한 짓을 해서 건강을 해치거나 다친 적이 종종 있지만 타고난 회복력과 체력으로 금방 원상 복귀했다. 병원 신세는 종종 졌지만 운이 좋게도 전신마취를 해야 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식욕도 늘 왕성했고 누우면 곧 잠들었다. 심지어는 30대 초반이 될 때까지는 숙취를 경험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무릇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함부로 취급하는 습성이 있는 존재가 아니던가. 나는 그야말로 내 건강을 남용했다. 돌도 씹어 삼키는 치아 건강과 소화 능력을 믿고 폭식을 일삼았으며 현재까지도 불규칙한 식사 습관을 가지고 있다. 최상급의 수준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간의 해독 능력을 믿고 폭음을 일삼았음은 물론이고 남들 흔하게 먹는 영양제 하나 제대로 챙겨 먹은 적이 없다. 체육관에 다닐 때 말고는 건강을 위해 운동한 적은 한 번도 없으며 관절에 좋지 않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 습관이다. 입맛이 짜서 싱거운 음식을 보면 소금부터 뿌리고 단 것에 사죽을 못 써서 사탕이나 젤리, 탄산음료 등을 입에 달고 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탕을 입 안에서 굴리고 있다) 이쯤 되면 당뇨가 없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가족력에 조금은 감사해야겠지.

어느 누구도 젊어지지는 않으니 당연히 나 또한 나이를 먹어가며 신체 능력이 사그라드는 것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다. 그러나 고맙게도, 내 몸은 내가 함부로 취급한 것에 대해 반기를 들거나 음습한 복수심을 품지 않았다. 내가 대접했던 대로 돌려받으려면 무언가 엄청난 질환으로 고생할 법도 하겠다 싶은데, 그냥 남들 나이 먹으면서 실감하는 만큼 똑같이 쇠퇴해 가고 있다. 난 그게 고마워서 내 몸에게 뭔가 해주고 싶은데, 습관이란 것이 쉬이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서 여전히 망나니 같은 생활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죄책감에 영양제 두 종류를 사서 먹기 시작했다는 점이 변화랄까.


하지만 워낙에 건강한 기운온몸으로 뿜어내던 터라, 육체가 쇠퇴하는 현상이 남들보다 파격적으로 와닿는 고충이 있다. 이제 예전에 먹던 만큼의 반도 채 먹지 못하게 된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자꾸 꾸역꾸역 먹다가 결국엔 체해서 고생한다거나, 다음날에 머리와 아픈 속을 부여안고 끙끙댈 것을 대비하지 못하고 신나게 술을 마신 후에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젠 감기도 예전만큼 빨리 낫지 않는데 하던 대로 병원에 안 가고 버티다가 결국엔 부비동염까지 얻고서야 빌빌대고 병원에 가서는 의사 선생님의 핀잔을 듣고야 마는 식이다.

무엇보다도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은 체질의 변화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20대까지만 해도 연장자들이 '나잇살'이라고 부르는 것을 원망하며 다이어트에 대해 고충을 토로해도 속으로 코웃음을 쳤더랬다. 뭐만 하면 다 나이 탓이래. 먹는 거 줄이고 많이 움직여봐라. 왜 안 빠지나 하고 속으로는 핀잔을 날렸다. 누구나 자신의 일이 되기 전에는 남의 고통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즐기며 잔인해질 수 있으니까. 20대의 나는 집 안에 틀어박혀 꼼짝도 않으면서 군것질 거리를 입안에 쓸어 넣으면서 잘도 저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아무리 남의 일이라고 저렇게까지 조금도 공감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때까지만 해도 몸매나 체중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내 기초 대사량이 높았던 게 아닐까 싶은데, 난 흔히 말하는 '살 안 찌는 체질'이었고 늘 평균보다 약간 말라 보이는 체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루 다섯 끼를 남들의 곱절로 먹는 대식가에다 군것질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다이어트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중년으로 들어선 이들의 나잇살 고민이 와닿았을 리가 없다.

그저 남들보다 유리한 체질을 타고났기에 남들이 겪는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됐을 뿐인데 마치 그것이 내 노력의 산물인 양 중년으로 접어들며 무너지는 신체 밸런스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을 마치 자기 관리에 소홀한 것처럼 치부하며 속으로 얕잡아 보았던 것이다. 정작 나 자신은 한 번도 '자기 관리'라는 것을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돌이켜 보니 정말 뻔뻔하기 그지없었네.

이렇게 무신경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일까. 나 또한 나잇살의 습격을 받고 있다. 남들 다 겪는 건데 왜 혼자 벌이라며 호들갑을 떠느냐 하면, 평소 자신의 건강과 체중 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관리를 해 온 이들과 체중계에 올라서는 일 자체로 자기 관리라 믿는 나 같은 사람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다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던 한창때를 지나 먹는 대로 살이 찌는 시기를 금세 지나쳐,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시기에 적응조차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드디어 먹지 않아도 살이 찌는 단계에 이르렀다. 몸은 이다지도 충실히 노화에 순응하는데, 뇌는 20대에 머무르려 발악을 하고 있으니 적응이 힘겨울 수밖에 없다.


2년쯤 전부터 오른쪽 팔에 뭉근한 통증이 있었다. 근육통이려니 하고 파스도 붙이고 호랑이 연고도 바르면서 지냈는데 6개월쯤 전에 통증이 너무 심해져 병원을 찾았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아프면서 병원에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가장 큰 이유는 병원을 좋아하지 않아서이고, (좋아하는 이들은 드물겠지만) 진단이 묘하게 엇갈린 적이 많아서이다.

너무나도 아팠는데 병원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 나아버린 적도 있고 (이 경우는 참 뭐랄까... 뻘쭘했다) 장기간의 치료를 요한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몇 주만에 나아버린 적도 있다. 분명히 뭔가 이상은 있었는데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적도 많고... 에이. 하여간에 짧게 표현하면 병원에 가서 무안했던 경험이 많았기에 팔이 아파도 병원에 가기가 내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큰맘 먹고 갔는데 별 거 아니라고 하거나, 이상이 없다고 한다거나,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할까 봐 병원 방문을 그렇게 차일피일 미뤄온 것이다. 무려 2년 동안.

다행히도(?) 이번에는 확실한 진단명이 있었다. 의사는 경쾌하게도 내 오른팔에 테니스 엘보의 선고를 내렸으며 이러저러한 치료와 약 처방을 해주었다. 테니스 엘보의 치료 방법도 마땅히 없고 예후도 그다지 좋지 않다지만 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난 나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이제까지 항상 그래 왔거든. 잠시 앓았던 아토피도 몇 달만에 나았고 발꿈치 근처에 육안으로 크게 보일 정도로 자라나 수술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던 양성 종양도 풍선에 바람 빠지듯 사라져 버렸다. 테니스 뭐시기라고 다를쏘냐. 내 금방 나아주갔어.


하지만 난 테니스 엘보라는 질환 자체도 우습게 알았고 나의 치유 능력도 과대평가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다. 이 뭔가 저린 듯하면서도 팔 전체를 휘감는 통증은 잠도 제대로 잘 수 없게 만들고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팔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물건을 제대로 들 수도 없다. 얼마 전엔 와인병을 들다가 놓쳤는데 묵직한 와인병은 네 번째 발가락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시커멓게 멍든 채로 퉁퉁 부은 발가락 덕분에 며칠 동안 절뚝거리다가 오른팔 진료를 받을 때 함께 진료를 받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역시나 순식간에 발가락이 나았다는 것 정도일까.

심각한 질환도 아니고 통증 정도라면 뭐 사는데 큰 지장 없겠지 하고 생각했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 염병할 오른팔은 현재 내 삶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오른팔이 너무 아파 왼팔을 주로 사용하게 되다 보니 왼팔마저 근육통에 시달리고 통증 때문에 수면의 질도 급격히 낮아졌다. 책 페이지도 넘기기 힘드니 그나마 있는 취미 생활도 즐기기 힘들다. 어떠한 자세를 취해도 통증이 줄어들지 않으니 짜증만 나고 갈 데 없는 분노만 커진다. 어디가 아픈데 나아질 가망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암울한 거구나.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은 정말 힘들겠다.


새해를 맞아 많은 분들께서 덕담을 해주시는데, 예전에는 흘려 들었던 '건강하라'는 말이 이젠 다르게 와닿는다. 그리고 나의 건강을 빌어 준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고맙게 느껴진다. 내가 아프거나 다쳐서 고생하는 일 없이 최상의 몸 컨디션을 유지하기를 바래 준다는 것이 내게 과분한 호의를 보여주는 것 같아 나도 그들에게 같은 만큼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진다. 왜 예전에는 건강은 기본 아이템이고 나머지를 쟁취해야 할 옵션이라고 생각했을까.

이젠 새해도 되었고 하니, 건강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해 봐야 되겠다. 근데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려니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네... 홍삼 엑기스나 유산균 같은 것을 먹어볼까.


다들 2022년 새해 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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