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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ico Dec 05. 2022

안방 할아버지와 어머니 (2)

<안방 손님과 어머니> 외전

달희 언니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어요. 여전히 암팡지고 새침하지요.

처음에는 밖에 무척 나가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할아버지가 볼 때마다 이쁘다 이쁘다 하여주니 그대로 흐뭇한 모양이야요. 내가 막례 언니만 있으면 뭐든 괜찮은 것처럼, 달희 언니는 할아버지만 있으면 암것두 필요 없다고 생각하나 봐요.

예전에 신경질을 내다가 제 성을 못 이기고 장판을 죄다 뜯어 놓았는데 할아버지는 혼도 내시지 않고 예쁘게 뜯었다고 칭찬을 해주시지 뭐야요. 그랬더니 언니는 성이 풀리는지 "하야부디~~"하며 혀짜래기소리를 내면서 할아버지한테 어리광을 부리겠지요. 참 눈 뜨고 보아주기 힘들지만 난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아요. 큰언니는 쌈도 잘하고 우리한테 엄격해서 무섭거든요.

얼마 전에 어떤 고양이 가족이 우리 집 마당에 들어왔어요. 우린 밖에 나가지 않지만 마당은 우리 영역이니 다들 신경을 곤두세웠지요. 달희 언니는 사냥개마냥 으르렁거리면서 문희 오빠, 곤희 오빠, 어머니와 함께 집을 지켰답니다.

결국 그들이 물러갈 때까지 난 점남이와 함께 숨어 있었는데 달희 언니가 참말 대단해 보였어요. 언니는 몸집도 참 아담한데 어찌 저리 용감한지요. 겁도 내지 않고 싸우고 절대 물러서는 법도 없으니 참으로 배짱이 대단하지요.

점남이나 가칠이보다 한참이나 작은데도 성격이 저리 대단하니 업수이 여길 수가 없어요. 난 달희 언니가 참말 무서워요.


이사를 오기 전, 그러니까 예전 살던 곳 동리의 아주머니들이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달희 언니는 어머니의 처녀 적 모습과 꼭 같대요. 어머니는 지금도 성정이 매섭지만 처녀 적엔 동리에 당할 이가 없었다지요.

자그마한 어머니가 길에서 생활할 적엔 잘 잡숫지를 못해 지금보다 훨씬 야위었었다고 하는데, 그리해두 큰언니처럼 매초롬하니 참 고왔다고 해요. 길 생활은 험하고 고달프니 작은 처녀 고양이는 업수이 여겨져 해코지를 당하기 십상인데, 훨씬 커다란 고양이들도 어머니를 이기지 못했대요.

그런데 어머니는 수시로 혀를 끌끌 차며 달희 언니를 보고 그러지요.

"계집애가 뉘를 닮아 저리 사납담?"

나와 점남이는 무어라 대꾸하지 못하고 우물거리고 있는데, 속에 있는 말은 기어이 내뱉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가칠이가 그러겠지요.

"글쎄 누구긴. 어머니를 닮아 그러잖겠수?"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가칠이를 윽박하시겠지요. 당신 성정이 온후하고 음전하여 다툼을 질색하는 것을 모르는 이가 없는데 그 무슨 해괴한 소리냐고요. 우리는 듣기가 영 거북살스러워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였는데, 점남이만이

"응! 응! 어머니 말씀이 다 옳지 무어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발을 구르겠지요. 어머니는 그만 누그러져 점남이를 끌어안고 얼굴을 핥아주고 볼을 부비고 하시는데 나는 영 보기가 거북하여 작은언니에게로 가버렸어요.


할아버지가 참으로 멋진 문간채를 지어 주셨는데, 나가서 바람 냄새도 맡고 바깥 구경도 하고 하면 참말 좋답니다. 그런데 가끔 커다란 고양이들이 와서 수작질을 하니 참으로 난처한 노릇이야요.

그중에 가장 크고 험상궂게 생긴 '성갈이'라는 고양이가 있는데, 아마 근처를 지나가다가 언니들을 보고 농이라도 붙이고 싶었던 모양이지요. 그런데 늘 겁보처럼 움츠러들어만 있던 예분 언니와 운섭 오빠가 도망도 가지 않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맞서 싸웠어요.

만날 우리에게 기를 못 펴고 우리가 골려주어도 무어라 대거리 한 번 못하던 언니와 오빠가 그렇게 용감하게 싸우니 어찌나 대단해 보이던지요. 그때 언니 오빠에게 함부로 굴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돌이켜보면 예전부터 예분 언니는 매사에 야무지고, 운섭 오빠는 어수룩해 보이지만서두 사냥을 훌륭하게 잘했지요. 예분 언니는 훨훨 나는 새도 낚아채 잡았었고, 운섭 오빠는 무시무시한 독사도 잡아서 하숙비로 냈었어요.

 뱀 잡겠다고 온 동리에 떠들고 다니다가 뱀한테 입을 물린 가칠이와는 참말 다르지요.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할아버지와 곤희 오빠가 쫓아다니면서 말리는데도 부득부득 뱀을 건드리더니 입이 퉁퉁 부어서 들어온 가칠이를 보았을 때는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그때 할아버지가 혼비백산하여 가칠이를 들쳐업고 의원에게 다녀왔는데, 별 탈이 없다고 했어요. 그런데 가칠이는 어렸을 때 지네한테 물려서 호되게 고생한 적도 있거든요.

내가 짐작하기에 가칠이는 이미 몸에 이런저런 독이 많아서 뱀에 물려도 멀쩡했던 것 같아요. 들으면 우습다고 할지 모르지만, 분명 가칠이는  있는 고양이일 거야요. 그래서 난 가칠이에게 물리면 안 되겠다 하고 다짐하지요.    


우리 영역에 침입자가 오면 큰오빠와 작은오빠가 가장 앞에 나서고, 어머니와 큰언니가 함께 싸우러 나간답니다. 어머니와 달희 언니는 체구도 작으면서 어찌 그렇게 용감한지. 그저 나서기만 하는게 아니라 형세가 재미롭잖다 싶으면 가장 먼저 달려들어 싸우려 들지요.

그래서 큰오빠와 작은오빠가 걱정이 많아요. 아무리 자기들에게 맡기고 뒤로 물러나라고 해도 듣지를 않으니 그럴 만도 하지요.

막례 언니는 성정도 온화하고 또 체구도 작으니 한 발 뒤에서 우리들을 지켜주지요. 작은언니도 참으로 야무지고 겁이 없지만 오빠들이 걱정하기도 하고, 또 나와 점남이, 금희가 울면서 매어달리니 상황을 지켜보며 우리를 다독여주고 안심시켜 주지요.

저번에는 성갈이가 또 찾아와서 행패를 부렸는데, 언제나처럼 나와 가칠이, 점남이는 듬직한 막례 언니 뒤에 숨어 있었지요. 그런데 싸우러 갔다 와서 흥분이 채 식지 않은 달희 언니가 씨근덕거리며 왔다가 우리 모습을 보고는 화증이 더럭 치미는지 열불을 내며 소리를 지르지 않겠어요.

"저 덩치만 커다란 천치들을 어째! 그래 삼시로 밥이나 때려 누이고 살 텐가!"

막례 언니가 겨우겨우 달래서 큰언니를 진정시켰지만, 참말로 너무하지 뭐야요. 어떻게 가칠이하고 점남이에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가 있나요?

가칠이야 흥하고 코웃음을 치고는 손으로 코를 쓱쓱 문지르더니 점남이 등에 닦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가버렸지만 난 점남이가 애가 쓰이지요. 점남이는 허우대가 큼지막하고 기운도 세지만 마음이 여리고 소심해서 남이 무어라 하면 의기소침해 있거든요.

그런데 점남이는 도리어 내가 걱정된다는 듯이 나를 물끄러미 보면서

"괜찮아? 큰누나는 본디 성을 잘 내니 마음에 두지 말어."

하며 나를 위로하려 들지 뭐야요. 나를 탓한 것도 아닌데 도리어 나를 걱정하니 참으로 엉뚱하면서도 다정하지요.


곤희 오빠는 어째 나이를 먹을수록 더 농판스러워지는지, 갈수록 장난이 심해진답니다. 놀고 싶어 몸을 들썩거리고 좀이 쑤시는 얼굴을 하면 우리는 모두 슬슬 피하면서 금희를 앞에 내세우지요. 금희야 좋다구나 하고 엎치락뒤치락하며 함께 놀려고 들지만 곤희 오빠는 놀다가 지치는 법이 없고 장난을 많이 쳐서 우리는 같이 어울려 놀기 벅차거든요.

작은오빠는 우리가 짜증을 내고 도망을 치면 더 재미있어하는데, 그래서 가칠이나 문희 오빠에게는 딱히 장난을 걸지 않아요. 큰오빠는 점잖게 타이를 뿐이고, 가칠이는 재미있어하며 한술 보태 더 괴상한 짓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나와 큰언니, 작은언니에게만 장난을 거는데 아주 골치가 아프지 뭐야요.

나와 막례 언니는 곤희 오빠가 장난을 걸면 하지 말라고 골을 내거나 도망을 치거나, 아니면 할아버지께 가서 이르지요. 그런데 달희 언니에게 가서 장난을 걸면 보는 우리는 조마조마한데, 큰언니는 참아 넘기지 않으니까 말이야요. 달희 언니가 매섭게 욕을 하기 시작하면 곤희 오빠가 좀 물러나면 좋을텐데, 오빠는 계속 야금야금 약을 올리지요.

저번에는 달희 언니가 경고를 했는데도 계속 놀리다가 언니에게 얼굴을 걷어채였어요. 그렇게 달희 언니에게 두들겨 맞고 욕을 들어먹어도 개의치 않으니 참 수가 없지요.

저번에는 오빠가 나에게 놀자고 하며 귀찮게 굴기에 내가 골을 내었는데 그것이 지나치다 싶었는지 곤희 오빠가 얼굴을 바로 하고 툴툴대지 뭐야요. 난 더럭 겁이 났는데, 할아버지가 와서 소심이를 내버려두라 하시며 곤희 오빠를 타이르셨지요.

오빠가 말을 안 듣고 나랑 달희 언니랑, 또 막례 언니랑 점남이를 귀찮게 하니까 곤희 오빠를 번쩍 들어서 다른 데로 데리고 갔어요. 할아버지는 참말 기운도 세지요. 그만치 커단 장정을 힘도 들이지 않고 들어 올리니 말이야요.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제일로 큰 문희 오빠도 번쩍 들 수 있어요. 그뿐인가요. 내가 어렸을 때에는 나와 점남이, 가칠이를 한 손으로 한꺼번에 들었지요.     


당연히 할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마는 곤희 오빠도 참으로 힘이 세어요. 훨씬 커다란 큰오빠보다도 셀 정도이니 말해 무엇하나요.

예전 집에서는 작은오빠는 그저 다정다감하고 재미있기만 하였는데 이사를 오고 나서는 철이 나서 그런지 조금은 의젓해졌지요. 예전에는 동생들이 때려도 너그러이 맞아주며 허허 웃고 말더니 이제는 제법 엄격하게 굴어요. 특히나 점남이가 철없이 구는 행동을 더 이상 보아 넘기지 않지요.

솔직히 말해 점남이는 참말로 철이 없어요. 저가 아직 아기라고 여기니 오죽하겠냐마는... 그래두 예전에는 지나치다 싶을 때에만 작은 오빠가 주의를 주는 정도였는데 이젠 매섭게 몰아세우며 혼을 내어요.

내가 짐작하기로는, 우리가 이사를 올 적에 점남이가 오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다가 혼자 옛 집에 남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적잖이 고생을 하셨기에 곤희 오빠가 아, 이리 두면 안 되겠구나 하고 생각한 것 같아요.

어머니께 점남이를 엄격히 대하시라 말씀도 드린 모양인데, 도리어 꾸지람을 들었지 뭐야요. 어머니는 점남이를 특히 더 귀애하고 잘 꾸짖지 않긴 하시지마는...

여하튼 그래서 곤희 오빠는 점남이에게 엄격하게 대하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야요. 점남이는 형님이 무섭다고 야단이지요. 큰오빠도 가끔씩 점남이를 나무라긴 하지만 작은오빠는 특히 더 매섭게 점남이를 닦아세우거든요.

오빠들에게 꾸중을 듣고 나면 점남이는 울면서 어머니께 달려가는데, 어머니는 못마땅해하시면서도 오빠들이 점남이를 훈계하는 것에 대해 딱히 무어라 하시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역시 속이 상하기는 하시는지 공연히 역정을 내시면서 오빠들을 쥐어박을 때가 많지요.

그러면 점남이는 어머니 뒤에서 히히 웃는데, 작은오빠는 눈여겨보아 두었다가 뒤에 모아서 또 혼을 내지요. 그냥 숨죽이고 모른 척했으면 될걸. 점남이는 참 눈치가 없어서 야단이야요.       


곤희 오빠는 우리에게는 툭하면 장난을 걸고 점남이에게는 엄격하게 굴면서 예분 언니에게는 영문을 모를 점잖은 척을 하지요. 예분 언니와 운섭 오빠는 어릴 때부터 언니 오빠들과 함께 자랐고 한 식구나 마찬가지인데 언제부터인가 예분 언니에게 격을 차리면서 이상한 말투를 쓰지 뭐야요.

예분 언니는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곤희 오빠에게 허물없고 친하게 구는데 오빠는 언니에게 '예분씨' 그러면서 건실한 청년인척 구니 다들 이상하게 여긴답니다.

예분 언니는 "아이구, 네 오빠가 상한 참치를 먹고 탈이 단단히 났나보다. 이를 어쩌면 좋으니." 하면서 안타까워하는데, 곤희 오빠는 아랑곳 않고 근엄한 얼굴만 하고 있어요. 점남이가 골탕을 먹이려고 오지 않는지 감시해야 한다며 예분 언니 방에서 버티지요.

달희 언니가 낄낄 웃으면서 오빠 옆구리를 걷어차는데도 오빠는 맞받지 않고 애써 몸을 곧추세우고 늠름한 척하는데, 그 모양새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경박하게 같이 장난을 치려 들어야 본디의 곤희 오빠일 텐데 말이야요.

그리 뻣뻣한 말투를 쓰는 것이 편치 않을 터인데도 작은오빠는 여태 해오던 그대로 예분 언니를 살뜰하게 살펴주어요. 점남이가 언니에게 물색없이 굴면 꾸짖고, 문간채를 처음 열었을 때에는 선뜻 나서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언니에게 함께 구경하자고 청하기도 했지요. 예전 하던 모양 그대로 남매와 같은데 무슨 연유로 그리 고리타분한 말투를 쓰는지 알 수가 없어요.     

곤희 오빠는 늘 금희를 보살펴주고 이쁘다 이쁘다 그러지요. 아마도 금희가 곤희 오빠를 쏙 빼닮아서 그러는 것 같아요. 생긴 모양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성격도 곤희 오빠를 꼭 같이 뺐어요. 금희가 오기 전엔 내가 막내딸 대접을 받으면서 호강했는데 이젠 금희가 막내 공주님이지요. 사실 좀 새암이 나지만 금희가 있어서 곤희 오빠 장난도 받아주고 집안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재롱을 부리고 하며 기분들을 풀어주니 참 좋아요.

금희는 자라면서 점점 더 작은오빠를 닮아가는데, 이제는 덩치 차이만 빼면 다른 점을 찾기가 힘들 정도이지요. 한 번은 곤희 오빠가 금희를 품에 끼고 얼굴을 닦아주고 있는데 둘이 어찌나 똑같이 생겼는지, 그리고 친 혈육도 아닌데 어찌도 그리 애틋한지 다들 신기해하면서 보고 있었지요. 그런데 점남이가

"형님. 실은 금희는 형님이 숨겨둔 여식이 아니우?"

하고 농을 했지요. 다들 실없다 여기고 그저 웃어넘기는데 작은오빠가 펄쩍 뛰더니

"예분씨. 오해입니다그려. 내 진작에 돈가스를 먹은 것을 알지 않소? 의심이 나거든 할아버지께 확인해 보시구려. 나 김곤희, 몰래 감춰둔 안해 같은 것은 없다오!"

그러면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맹세를 하지 뭐야요.

나와 점남이, 가칠이는 영문을 몰라 서로 마주 보기만 하는데 어머니는 곁눈으로 큰오빠와 작은오빠를 자꾸 번갈아 보시겠지요. 큰언니와 작은언니는 샐샐 웃으면서 저들끼리 소곤거리고, 예분 언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 그래. 누가 무어라고 했다니?" 그러지요.

곤희 오빠는 머쓱하게 서있다가 점남이를 구석으로 데려가 공연히 트집을 잡으면서 쥐어박지 뭐야요. 점남이는 또다시 울면서 어머니께 달려가 형을 혼내어 달라고 조르는데 어머니는 골이 아픈 얼굴을 하시고는 한숨을 쉬셨지요.

내가 보기에 점남이는 그저 뼈 없는 농을 했을 뿐 골탕을 먹이려 한 것이 아닌데 곤희 오빠는 공연히 심각하게 구는 거야요. 누구보다도 장난치는 것을 좋아하면서 난데없이 진지하게 구니 보아갈수록 나는 이해를 할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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