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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nette May 02. 2024

사고처럼 떠오르는 사람

하고 싶었던 말들이 끈덕지게 곪아가던 메모장도 삼월이 가고 사월이 가고 오월이 오면서 눈이 녹고 봄바람이 불듯이, 벚꽃이 피고 지듯이 한결 가벼워졌다

모든 객체가 그 사람이던, 마침표마다 눈물이 묻어있던 글들도 영원할 줄 알았으나

어느새 장보기 리스트와 투두 리스트에 묻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길을 걷다가 난데없이 울음이 터져 한참을 쪼그려 앉지 않게 되었다

길거리에 넘쳐나는 이별 노래와 발라드도 이젠 날 울게 만들기엔 부족해졌다


친구들은 더 이상 날 걱정하지 않는다

나 역시 더 이상 힘들다고, 술을 마시자고 그들에게 울면서 전화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포차에서 소맥을 말지 않는다.

우리는 와인바에 간다.

나는 웃으며 새로 만나보기 시작한 남자를 설명한다

좋다고

좋은 사람 같다고

다시는 사랑 못할 줄 알았는데 역시나 착각이었다고

세상에 남자는 많다는게 정말이라고


그렇지만 그들은

길을 지나가다 그 사람의 향수 냄새가 나면 내가 괜히 뒤돌아본다는 걸 모르지

꿈에 그 사람이 나오면 깼다가도 이어서 꿈을 꾸고 싶어서 다시 억지로 잠에 든다는 걸 모르지

누군가 사랑을 말하면 그 이름 석자를 떠올리는 걸 모르지

소맥이 아닌 와인으로 취해도 그 사람의 얼굴은 어김없이 떠오른다는 걸 모르지.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

다시 또 처음처럼.

내 안의 둑이 무너진다고.

눈물이 난다고.

엉엉 울어버리고 만다고.

조금만 방심하면 내 이름을 불렀던 목소리. 손가락. 향수. 비누 냄새가.

그리고 어떤 얼굴로 날 봤었는지. 날 어떻게 사랑하게 만들었는지. 그래서 섭섭하게 만들었는지.

서운하게 만들었는지. 그런 사람은 영영 처음이었다는 것과. 괜히 돌아보게 만들었다는 것과.

걸음마다 아쉽게 했다는 것과. 그 사람을 모르고 살아온 지금까지의 날들을 후회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부표처럼

떠오르는지...


그래. 그같은 사람이 있었지. 세상에 단 하나뿐이지.


숨을 크게 쉬는 당신.

흔들리는 나뭇가지 아래 당신.

여름을 만끽하는 당신.

책을 읽는 당신.

사랑하는 연인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당신.

당신의 첫사랑. 당신의 첫경험. 당신의 첫 성공. 첫 패배. 당신이 겪었을 첫 역경.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친구.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가장 좋아하는 장소. 가장 큰 슬픔. 가장 깊은 아쉬움. 가장 큰 후회. 당신이 맞았을 비. 맞았을 눈.


그런 것들이 ........

지금까지도 .......

책을 펼치듯 내게 쏟아진다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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