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그 사람으로 시작해 나로 끝나는 경험이다.
완전한 완결을 내리는 건 그 사람이 아닌 나 스스로다.
나는 내가 이 모든 것들을 다 잊고, 드디어 떠날 용기를 가지게 되더라도, 나의 일부분은 그 기억과 함께 잠들어 있기를 바란다.
그 사람과 나눠 가진 짧은 추억보다도, 그저 그를 만났다는 경험 자체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건 아직 쌀쌀하던 날씨에 손바닥만한 화면을 붙잡은 채로 그의 말 한 마디에 혼자 울고 웃고 하던 날부터,
그 사람 덕분에 사랑을 논하는 세상의 수많은 글과 하나 되어 느끼고 깊어져가던 기억으로 완성되는 경험이다.
세상에 아무리 좋고 부처같은 사람이 많다고 하더라도, 나의 세계를 그 정도의 폭으로 확장시켜주는 사람은 앞으로도 없겠지.
그만큼 그 사람이 내게 주었던 감정이 너무 거대해서 무서울 정도였다.
헤어진 후에는, 그렇게 슬퍼하는 나 스스로가 신기했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독감에 걸렸을 때에도 수저는 못 들어도 컴싸는 잡았던 나였다. 그런데 헤어지고 일주일을 굶었다. 침대에 앉아 울기만 했던 것 같다. 이후로도 과장 없이 반 년간은 매일의 일상에 슬픔이 있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그 사람 이름 석자에 눈물이 고였다. 매체로만 보았던 뼈에 사무치는 아픔이라던가, 가슴이 찢어진다는 그런 표현들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는데,
그 사람을 만나며 느꼈던 행복과 충만감도 인생 처음 가져본 감정이었기에.
그래서 신기했다. 너무 짧은 시간이었는데. 같이 한 것도 많이 없는데 말이다. 정말 신기했다. 이럴 수가 있구나 싶었다.
그와 쫄쫄 굶는 것이 다른 이와 배부른 것보다 훨씬 행복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한 편으로는 그냥 웃는 모습이 많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한데. 또 복잡하게 들여다보면 나는 그에게 내 쓸모를 증명하고 싶었고,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하나를 위해 지금까지 이 악물고 살아왔다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세상에는 시간이 지나도 길들여지지 않는 슬픔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에 나오는 대사다. 나의 세상에는 시간이 지나도 지울 수 없는 그림이 몇 폭 있다. 가령 그의 웃음이나 아침에 신문을 펼치던 모습, 혹은 소주를 따르며 하루를 얘기하던 목소리. 이제는 떠올리려고 해봐도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래도 지울 수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 그렇게 바랜 채 오랫동안 내 안에 앉아 있을 그림들이다.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내 영혼의 일부는 언제나 23년 늦가을에, 그리고 부암동으로 향하는 그 길목에, 또 그가 살던 동네의 어느 한 구석에 잠들어 있을 것이다.
나쁘지 않다. 더 이상 슬프지도, 아쉽지도 않다. 이렇게 작별의 마음을 가지기까지 너무 많은 슬픔이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괜찮다. 그가 정말 다른 사람과 행복하길 진심으로 빌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약속했던 졸업식이나 도강에 그가 오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정말. 나의 첫사랑은 이렇게 완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