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정론을 믿는다. 세상 모든 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김영하 작가님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모두 운명으로부터 발버둥 치지만, 결국 운명을 향해 다가가는 존재인 것이다. 나의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고, 다른 사람의 미래도 다르지 않다. 사주나 점은 내 미래를 알려주는 것이 아닌, 그저 현재에 영향을 끼치는 비과학적인 말이다. 하지만 그 현재가 쌓여서 미래가 된다.
양자역학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결정론에 큰 난제를 던진다. 전자는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정론은 성립될 수 없다. "우리의 미래 또한 확률적으로 존재할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나는 양자역학을 반박할 생각은 없다. 아직은 반박할 능력이 갖춰지지도 않았다. 양자역학이 결정론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나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확률이 인생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확률이라는 것은 여러 번 이루어질 때 의미가 생긴다. 관측을 두 번 했을 때, 한 번은 +z 방향 스핀, 한 번은 -z 방향 스핀이 나오면, 각각 50% 확률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 번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2번의 기회는 없다. 이런 세상에서 미래에 대해 얘기할 때 확률을 얘기하는 것은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빅뱅의 초기조건이 혹은 빅뱅 이전의 초기조건으로부터 지금까지의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필연이다. 결정론이 옳다고 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카오스 법칙을 따르고 있고, 우리는 우주의 초기조건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우주의 기본 법칙에 대해서도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문득 자기 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래 예측이 불가능한 결정론은 위상적으로 비결정론과 같은 게 아닐까? 세상 모든 것이 짜인 각본이라고 해도, 각본의 엔딩도 모르고, 내가 각본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냥 나는 비결정적인 세상에 사는 거랑 똑같이 살 수밖에 없다. 결국 다르게 얘기하지만, 미래 예측을 할 수 없는 세상의 결정론은 위상적으로 비결정론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