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오케스트라

by 카북이

박지성이 일본 상대로 보여준 투지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하프라인 너머에서 넘어지면서 공을 뺏겼지만 우리 팀 페널티 박스 근처까지 뛰어가서 슬라이딩 태클로 공을 다시 뺏어낸다. 그 경기 결과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박지성의 투지, 경기 안에서 보여주는 노력은 가슴속에 새겨진다.


2019년 롤드컵에서 G2 상대로 페이커가 보여준 슈퍼플레이들도 기억에 남는다. 팀은 결국 패배했지만 경기 중간에 사일러스로 만들어낸 슈퍼플레이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선수한테는 크게 와닿지 않을 수 있어도, 팬들한테는 졌잘싸라는 개념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경기였다.


아웃시키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파울볼을 쫓는 포수, 5점 차이로 지고 있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 물론 결과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과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것은 이런 스토리가 있는 장면들이다. 선수의 스토리와 함께 경기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으며, 결과를 함께 기다릴 수 있다는 점이 내가 스포츠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오늘은 그저 그런 오케스트라 공연을 하나 봤다. 비엔나에 와서 최고의 공연들을 보다가 꽤 괜찮은 공연을 보니, 조금 지루했다. 실망에 찬 눈으로 공연을 보다가 문득, 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최선을 다해서 연습하고, 지금도 최선을 다하는 중일 텐데,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잘하고 말고의 결과만 드러날 뿐이다. 내가 공연하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조금 억울했을 것 같다. 사람들의 눈 밖에서 최선을 다해서 연습하고, 공연 중에도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을 테지만, 관객들의 귀는 이 모든 사연, 이야기, 그리고 노력을 무시하고 듣기 좋은지 안 좋은지만 판단한다. 그래서 나 자신이 너무하게 느껴지는 동시에, 오케스트라 공연이 참 잔인하게 느껴졌다.


물론 스포츠도 결과가 중요하다. 실력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하지만 스포츠는 경기를 뛰는 선수가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혹은 집중하고 있는지가 보인다. 오케스트라는 오직 결과로만 증명해야 한다. 내가 본 음악의 세계에서는 졌잘싸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알 수 있다. 한 연주자를 계속 따라다니면, 그 연주자의 성장 스토리를 함께할 수 있다.


음악의 의미, 예술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끄적임이었다. 이 글을 쓰는 나, 읽는 당신은 그래도 더 관대한 마음으로 오케스트라를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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