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버스

다른 세계관의 나

by 카북이

카이스트 학우들끼리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다른 세계관의 나는 성비가 좋은 환경에서 재밌는 축제를 즐기면서 살고 있겠지? 물리를 엄청 잘하는 세계관도 있겠지? 우리가 원하는 특정 조건에 부합하는 여러 세계관들을 떠올려본다.


내가 만약 공대를 가지 않고 의대를 갔으면 어떻게 됐을까? 어릴 때 축구선수라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내가 한국이 아니라 유럽에서 태어났다면 나는 어떤 장점을 갖고 있을까? 내가 여자로 태어났으면 어떻게 됐을까? 다양한 '만약'들이 뇌리에 스친다.


크고 작은 조건들이 내가 살고 있는 세계관을 결정한다. 2003년에 남자로 태어났으며, 해외에 산 경험이 있고 축구를 좋아하며, 적당한 공부 재능을 갖고 있으며... 현재의 나는 이 세계관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수많은 세계관의 나는 다른 특징들은 거의 비슷하지만 여자로 태어났을 수도 있고, 이 세계관의 나와 매우 비슷하지만 한국인이 아닐 수도 있다.


뚱딴지같은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문득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저 다른 세계관의 '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다른 조건에서 태어났고, 살아왔다. 결국 다양한 '만약'을 거치고 나면, 다른 사람의 세계관이 된다. 매우 잘생기고, 키도 크고, 끼가 있는 세계관의 나는 실존하는 특정 아이돌이나 배우와 같을 수도 있다. 반대로 외적으로는 많이 부족하고 끼도 없지만, 다른 재능이 있는 세계관의 차은우는 나와 비슷할 수도 있다.


결국, 증명 가능한 영역은 아니지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나'의 다른 세계관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봤을 때도, 나는 그들의 세계관 중 하나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은 더 관대해지는 것 같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나의 차이는 운 적으로 결정되는 조그마한 조건뿐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 누구도 함부로 미워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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