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후반부

에릭 와이너의 책 리뷰

by 카북이


8장 간디처럼 싸우는 법


부드럽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라. 간디가 말했듯, 당신의 목표는 비난이 아니라 변화이므로

가끔, 어쩌면 자주 우리는 본질을 잊는다. 망각이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일을 한다. 공부의 단편적인 목적과 본질은 지식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분명 즐거워야 한다. 하지만 나는 학기 중에 공부를 하는 것인지, 시험을 위한 대비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서 지루한 교과서를 읽고 고통스러운 문제를 푼다. 어쩌면 이 지루함과 고통은 본질을 잊은 대가가 아닐까? 나는 간디가 부드럽게 의견을 주장하라는 말도 본질을 잊지 말라는 소리로 들린다. 그래서 나는 이 챕터의 제목을 간디처럼 주장하는 법으로 바꾸고 싶다. 간디가 한 노력의 본질은 주장이지 싸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배우는 것은 책에 쓰여있지 않다. 책에 써져 있는 것을 의심할 때, 아니면 그냥 책에서 던지는 주제에 대해 다른 잡생각이 떠오를 때, 나는 책으로부터 배운다.


9장 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

친절

친절한 것이 좋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철학은 "어떻게"의 학문이다.

어떻게 하면 친절할 수 있을까?

나는 친절이 좋은 습관에서 나오는 것 같다. 친절의 원인이 좋은 습관이라는 말보다는 좋은 습관이 있을 때 친절한 행동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일단 요즘 좋은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하면 친절할 수 있을까?


10장 셰이 쇼나곤처럼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

책의 후반부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챕터다.

편리세

새로운 기술은 우리를 편리하게 만들어준다. 비행기, 기차, 자동차는 우리를 빨리 이동할 수 있게 해주고, 핸드폰은 멀리 있는 사람들도 연결시켜준다. 나는 요즘 특히 ChatGPT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편리한 삶을 살고 있다.

셰이 쇼나곤은 편리함에는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 즉 '편리세'가 있으며, 잃어버린 친밀함과 박탈당한 아름다움이 바로 그 비용이다.

우리는 이 편리세를 무시하며 살아왔다.

나는 요즘 거의 모든 영상을 배속해서 본다. 정말 편리하다. 하지만 나는 이런 습관이 나를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제는 현존하는 최고의 지휘자인 주빈 메타가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러 갔다. 정말 좋은 음악이었고,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되지만, 음악 자체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천천히 오래 진행되는 공연이 지루했고, 차라리 배속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편리세로 즐거움을 제출했던 것이다. 느림의 미학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졌다.

우리는 핸드폰을 보면서 주변 풍경의 아름다움에 더 무감각하게 됐고, 교통수단이 발전하면서 걸음의 즐거움을 잊게 됐다. 기술의 발전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이 편리세 때문이다.

행복을 위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아니다. 철학의 발전이다.


사소한 것들의 중요성

셰이 쇼나곤은 긍정의 철학자다. 사소한 것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철학자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으로부터 행복을 얻는다. 셰이 쇼나곤과 사소한 것, 두 물체 사이의 상호작용으로부터 갑자기 아름다움과 행복이 생겨난다. 물리적으로 봤을 때, 닫힌계의 에너지는 보존된다. 고전적으로는 질량도 보존된다. 셰이 쇼나곤과 사소한 것 사이의 상호작용은 닫힌계 내부에서만 일어날 뿐이지, 닫힌계 자체를 바꾸지 못한다. 우리가 우리 머리카락을 아무리 강하게 잡아당겨도 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셰이 쇼나곤의 닫힌계에서는 행복과 아름다움이라는 에너지가 생겨났다. 물리학이 틀리지 않았다는 가정을 했을 때, 행복과 아름다움은 그 닫힌계 안에 원래부터 존재했다는 결론이 난다. 셰이 쇼나곤이 한 것은 우리가 보지 못한 아름다움과 행복을 찾아낸 것뿐이다.


나도 사소한 것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도 긍정의 철학자가 되고 싶다.


11장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영원회귀

만약 우리가 똑같은 삶을 무한하게 반복하면서 사는 것이라면, 나는 이 삶을 만족하면서 살 수 있을까?

니체는 영원회귀라는 개념을 통해 우리에게 이 질문을 남겼다. 똑같은 고통, 똑같은 불행을 계속해서 견디더라도 이 삶을 계속 살고 싶은지를 묻는 예리한 질문이다. 나는 아직 큰 고통을 느끼지 못해서 그런지, 이 삶을 계속 살고 싶다. 무한하게 똑같이 반복된다고 하더라도 살만할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영원회귀 개념 자체에 오류가 있는 것 같다. 죽고 나서 모든 것을 잊고 다시 똑같은 삶을 사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이다. 어떤 위대한 지적 존재가 세상을 만들고 설계했다면, 굳이 무한히 똑같이 반복하는 세상을 만들 이유가 있을까? 약간의 변수를 넣어서 매번 약간씩 다르게 만들지 않았을까? 나는 인간이 이야기를 쓰기 위해서 만들어진 존재라고 믿는다. 그래서 영원회귀 개념은 지금 이 삶을 평가하는 좋은 잣대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현실을 설명하는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2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는 법


베를린 지혜 프로젝트: 지혜의 다섯 가지 기준

1. 사실적 지식

2. 절차적 지식

3. 인생 전체에 걸친 맥락주의

4. 가치 상대주의

5. 불확실성 관리 능력


운명이 허락한다면..

스토아철학은 모든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전달한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스토아철학의 이런 마인드셋이 좋다. 세상에는 분명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참 많다. 나한테 허락되어 있는 것 자체가 제한적이다. 날씨 때문에 비행기가 결항되어도, 친한 사람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나는 행복할 것이다, 운명이 허락한다면...


13장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멋있게 늙어가는 것

나는 죽는 것보다 늙는 게 더 무섭다. 늙어가면서 나 자신을 잃게 될까 봐 무섭다. 그럼에도 한석규 배우 같은 분들을 보면, 나도 저렇게 늙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멋있게 늙어갈 수 있을까? 이 책의 내용이랑은 크게 상관이 없지만, 궁금해졌다.

일단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좋겠다. 물론 이런 특징들은 지금도 가능하지만, 연륜이라는 게 저 특징들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내가 잘하는 게 있으면 좋겠다. 누가 봐도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기 몇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은데, 지금은 생각이 안 난다. 나중에 추가해야겠다.


14장 몽테뉴처럼 죽는 법

죽음을 연습하는 법

죽음을 연습할 수 있을까? 사고를 당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빠진 경험은 죽음을 연습해 본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몽테뉴와 다르게 죽음은 연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시뮬레이션이 가치가 있는 건, 현실과 비교했을 때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현실 비교는 가능하지 않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잘 설계해서 돌려도, 진짜 이럴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건 의미가 있다.


죽음의 이유: 더 재밌는 이야기를 위해

나는 질량이 같다고 가정했을 때, 부피와 밀도는 반비례한다. 나는 시간이 무한해지면, 즉 인간이 죽지 않는다면, 인간이 사는 시간의 밀도 또한 0으로 수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간의 밀도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밀도다. 사건의 밀도가 0에 수렴하면, 재밌는 이야기는 탄생할 수 없다. 어디 가서 사고도 치고, 악당과 만나서 싸우기도 해야 이야기의 소재거리가 생긴다. 맨날 침대에 누워있는 삶으로부터 재밌는 이야기는 탄생하지 않는다. 우리가 무한하게 산다면, 매일을 침대에서 낭비하면서 살 것이다. 고통을 피하면서, 편한 길로만 갈 것이다. 길지 않은 끝이 있기에 우리는 더 노력하고, 더 재밌는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이야기의 측면에서 죽음은 필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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