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 겸손해지려면

by 신 필

지역 언론사인 양산신문사에서 함께 근무하던 후배와 얼큰하게 술을 마셨다. 양곱창 전골 팔팔 끓여 진로소주 각 1병씩 해치웠다. 이 녀석은 부친이 소뇌위축증을 앓고 있다. 집안에서 약품 냄새가 진동하고 하루에 몇번씩 욕창이 없도록 돌려 눕히며 병간호를 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위로인지 푸념인지 모를 말을 내 벹으며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연거푸 들이켜 본다.


나이 40을 넘기니 친구나 선배의 위로 보다 말없이 들어주는 것이 좋음을 알겠다. 우리는 겪어보지 못한 일에 좀처럼 공감하기 힘들다. 10년 넘게 투병하는 아버지를 돌보며 나날이 쇠약해지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후배의 심정을 말이다. 녀석은 요즘 앵무새를 키우며 블로그와 유튜브 영상 올리는 재미로 산다고 한다.


녀석은 10년간 아내 병간호를 하고 사별한 뒤 폐암을 앓는 80대 할아버지 얘기를 했다. 자식들이 돌보지도 않는 노인은 돈은 많지만 쓸쓸해 보였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폐암이 고통스러워 처치실에서 혀를 깨물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돈 많은 할아버지가 아내와 사별한 뒤 자식들이 찾지도 않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니. 얼마나 아팠으면 혀를 깨물고 죽을까. 담배 한 개피 피면서 삶의 의미를 생각해 봤다.


최근에는 몸담고 있는 회사 경남매일 후배 기자의 30대 누나가 별세해 빈소를 찾았다. 고인은 생전에 병원 첫 진단시 직장암 말기 판정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았다고 한다. 후배가 임종을 지켰다니 대견하다. 전현직 직장 동료들의 가족이 투병 또는 죽음을 맞고 있다. 아픈 시간을 보내는 후배들에게 술 한잔 사주고 싶다.


나 또한 3년 전 아버지를 여의었다. 평소 당뇨 외에는 별다른 지병이 없었던 아버님은 홀연히 타계하셨다. 검안의는 심장사라는 견해를 비췄다. 아버지의 그 음성과 정다운 손길이 그립지만 불러도 대답없는 아버님! 보고싶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 3년이 지나도 아버지의 모습이 문득 떠오른다. 부디 세상을 뜬 분들이 편안하시고 투병중인 분들도 봄 눈 녹듯 질병을 떨쳐내시기를 바랄 뿐이다.


죽음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잘 살아야 잘 죽을 수 있다. 죽음은 새로운 문을 여는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자유를 누린다기 보다는 나 답게 사는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리운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 하며 지내는 것,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껏 사랑을 하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도처에 널린 죽음들 앞에서 숙고한다. 죽음 앞에서 초라해지지 않도록 나답게 살아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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