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의자를 닮은 밤하늘' 보고 불멍

의령 시골집 살이

by 신 필

의령 시골집 마당에서 '불멍'하며 진지한 시인의 시집을 읽는다. 화덕은 적벽돌을 얼기설기 어긋나게 쌓아서 만들어 어설프지만 운치있다. 허락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집에 세들어 사는 고양이가 울고 있고 나는 화덕에 나무토막을 집어 넣는다. 타닥타닥 나무가 타오르고 나무마다 제각각 다른 냄새가 난다. 화덕 밖으로 떨어진 타다만 나무토막에서 연기가 피어 오른다.


나무는 내가 직접 자른다. 전기톱날로 직접 자르면 나무마다 그 결이 느껴지며 향기도 다르다. 박혀 있는 못을 빼고 천천히 토막 난 나무를 만져보기도 하고 냄새를 맡아본다. 그리고 나무를 정성스레 종이상자에 담아 불멍장에 제공한다.


화덕 옆에 앉아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이장욱 시인의 시집 <영윈이 아니라서 가능한>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사려 깊은 여성들>, <조용한 의자를 닮은 밤하늘>이라는 시를 읽었다.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좀 거슬리기는 하는데 불소리와 화염이 타들어 가는 데서 시를 읽으면서 휴식을 했다.


나무가 전부 다 타고 재가 수북이 쌓여 있다. 흰 재를 보는 것도 불멍만큼 좋아하는 일이다. 가루처럼 흩날릴듯 남겨진 재는 참 곱다. 시골집 마당에서 자굴산 자락 밤하늘에 피어나는 별을 바라보면서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옆지기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고 김이 펄펄 나는 커피를 호호 불어가며 한 모금 들이켜 보자. 그 순간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좋다.


자갈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은 현무암 판석을 낑낑거리며 옮겨다가 정자 아래 댓돌로 쌓아 올렸다. "엄마 댓돌 아나 댓돌, 밟고 올라서는 돌멩이 말이야" 하고 말하니 엄마는 "와 몰라, 알지, 가만히 놔두라는 거 만다고 하노" 라고 지청구를 하셨다.


부정형 돌이라서 크기도 모양도 제멋대로지만 내 멋대로 쌓아서 댓돌을 만들어 본다. 실패해도 좋다. 내가 만든 댓돌에 올라서서 뛰어도 보고 모서리를 밟아보고 흔들리지만 그럴싸해서 만족한다. 그게 시골집을 꾸미는 재미다.


우리집 논은 시골집이랑 길섶을 사이로 붙어 있는데 논 입구에 붉은 백일홍이 한 무더기 피어 있었다. 누가 심지도 않았고 가꾸지도 않았는데 자연 그대로 논 입구 두름에 피어서 가을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자연상태에서 그냥 그대로 피고 지고 하는 것, 그것은 즐거운 것이다.


정자 위에 앉아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사마귀가 우리 집 장독대 위에 두 팔을 도사리고 전쟁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귀뚜라미 소리가 시골집 방 안에서 잠을 청하는 나에게 복잡한 심사를 달래준다.


느리게 살면서 파란 하늘 위에 깔린 양떼구름 밑에 고개를 숙이는 벼들이 샤라락 소슬바람에 흩날리며 수확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화덕에 장작이 타오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연처럼 느슨하지도 팽팽하지도 않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