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대 앞에서 먹은 라면

by 신 필

어린이날 연휴에 9살 아이와 아내와 함께 용인 에버랜드로 떠났다. 오전 10시 30분 개장인데 8시부터 오픈런이 있었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주문한 접이식 휴대용 플라스틱 의자를 펼치고 앉아 비를 맞으며 개장을 기다렸다.

입장 뒤 휴대폰을 확인하며 스마트 줄서기로 평균 20분을 대기하며 놀이기구를 탔다. 사람에 치일 정도로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팬더곰을 여유롭게 봤다. 나뭇가지에 아무렇게나 늘어져서 잠을 자는 모습이 세상 편안해 보였다. 저 팬더곰의 팔자가 나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이는 푸바오가 프린팅 된 검은색 티셔츠를 사 입었다.

롤링엑스트레인이라는 360도로 회전하는 열차식 놀이기구를 탔다. 아이와 나는 유튜브에서 유행하는 단어인 '드가자'를 외치면서 두 눈을 감고 손을 잡고 고개를 푹 숙였다. 몇 분 그렇게 있으니까 놀이기구가 끝이 났다. 아이는 입이 귀에 걸렸고 두 눈을 반짝이며 나를 쳐다봤다. 탑승 전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을 하니 아이가 "아빠 하남자냐"며 비아냥 거렸다. 그러나 함께 놀이기구를 타 주니 좋은 추억이 됐다.

이튿날에는 경기도 고양에 위치한 처외삼촌댁에 놀러 갔다. 처외삼촌은 매주 어선을 타고 전국 유명 해변으로 낚시를 떠난다. 그는 인천 앞바다에서 직접 잡은 돔을 식탁에 내놓았다. 정성스럽게 구워 노릇노릇한 생선구이였는데 고소한 냄새가 솔솔 났다. 삼촌은 서울 은평경찰서 지구대에서 경감으로 근무한다. 울진 처외할머니집에 가면 늘 고기를 구워주고 화내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분이다. 삼촌은 실실 웃으며 과거 일본도로 아파트 입주민을 살해한 범인을 검거한 얘기를 해줬다.

처외숙모가 차려놓은 밥상에서 나는 지방에 사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창원 세코는 몇 년간 예산을 안 주는데 오던 길에 보니 일산 킨텍스는 제3전시장을 새로 짓고 있더군요"라고 했다. 처외숙모는 군인의 딸로 태어나 은행원으로 근무하고 퇴직한 50대 여성인데 "고양 킨텍스에서는 여러 공연을 정말 많이 한다"라고 말했다.

유명 건설사브랜드인 삼촌의 아파트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에 50층짜리 아파트 36층이다. 고양의 넓은 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뷰를 지닌 공동주택이었다. 처사촌동생은 해병대에 입대했다. 군대생활에 적응을 못해 여러 곳을 옮겨 다닌다고 하는데 처외삼촌 내외는 짬밥이 차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푸념했다.

셋째날 군복무를 했던 애기봉 생태평화공원에 관광을 갔다. 애기봉은 조선시대 기생의 이름으로 '조강' 나루터에서 임과 헤어진 뒤 이별하고 만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남북이산가족의 슬픔이 애기의 사연과 다를 것이 없다고 하면서 애기봉으로 명명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강을 사이로 남과 북은 불과 1.4km 이격 된 거리에 있다. 서부전선 최전방에 민간인통제구역이라 내부에 들어갈 때 해병대 군인이 신분증을 확인했다. 비 오는 날 우리는 전망대에 망원경으로 이북 땅을 관찰했다. 해물선전마을에 붉은 깃발과 북한식 문화주택이 보이고 북한의 초소, 논과 밭이 보였다. 나는 아이에게 과거 군생활을 하며 북한 마을을 TOD(적외선관측장비)로 관측하며 공회당에 깃발 내용이 변경된 것을 보고해 4박 5일 포상휴가를 갔던 얘기를 해줬다. 아이는 망원경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며 자꾸 군생활 시절 얘기를 해달라고 졸라댔다.

애기봉을 나와서 GS편의점에 들렀다. 점심을 채 먹지 못해서 군부대 바로 앞에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 울참이었다. 나는 라뽂이, 아이는 신라면 컵라면을 시켜서 아내가 싸 온 삶은 달걀과 함께 먹었다. 김포, 강화도, 해병대는 내 20대 초반 군복무를 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한 가정의 가장이 돼 군부대를 바라보며 뽀글이가 아닌 여유 있게 컵라면을 먹는 내 모습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묘한 감정이 들었다.

양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강 강변도로를 타고 가는데 조명을 밝힌 국회 의사당이 보였다. 의사당 지붕에 파란색 뚜껑이 열리면 마징가 Z가 나온다고 아이에게 얘기를 해줬다. 나라가 국난에 처했을 때 마징가 Z가 정말로 나온다고 진지하게 얘기하니까 아이는 정말 속는 눈치였다. 아이가 자꾸 상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자동차 자동 음악재생으로 마징가 Z노래를 재생했다. 그렇게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며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한 냄새가 나는 용인의 산밑 1층 호텔 숙소, 피씨방처럼 성능 좋은 컴퓨터가 2대 있어 잠자기 전에 게임을 한 일, 에버랜드에 푸바오를 본 일, 애기봉을 나와 군부대가 보이는 편의점에서 인스턴트 라면을 함께 먹었던 기억 이런 것들은 죽을 때까지 기억의 저장고에서 살아서 죽기 직전까지 행복한 기억으로 내 머리를 지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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