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덜 자란 아이.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기간: 대학교 1학년 ~ 3학년
20살이 되었다고 짠~! 하고서 "나 이제 어른이다!"라고 외칠 수 있을까? 절대 아니다. 20살이라고 해봤자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또다시 학교에 들어온 고등학교 4학년일 뿐이다. 나는 너무나도 착하게(?) 살아서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술을 마시지 않았다. 대학교 들어가서 처음 마셔본 술은 글쎄... 맛이 있다기보다는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게 재밌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아주 시골 동네 한복판에 있었다. 나름 4년제 공대였고, 그 지역에서는 그래도 이름이 알려져 있는 그런 학교였다. 거의 고립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지방이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사람들이 똘똘 뭉쳐서 잘 놀 수 있었던 것 같다.
캠퍼스 로망 같은 건 사실 딱히 없었다. 공부라는 것을 억지로 했던 나였기에 대학교도 거의 강제로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님은 이 사실을 아실까?(돈이 얼마나 들어갔는데 이런 말을 하냐 하겠지만 그때는 요즘처럼 대학교 안 가도 기술이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내성적이고 숫기 없는 어린아이가 20살이 되었다고 갑자기 성격이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위축되어 있었고, 말이 없고, 적응도 잘 못했다. 역시나 공부는 흉내를 낼 뿐이었다. 하... 공부가 왜 그렇게 싫었는지... 그렇다고 나가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도 아니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룸메이트들은 밖으로 나가는데 나는 안에만 있었다. 영화 보고, 게임하고, 과제하고, 먹고, 자고.
딱 한 가지 내가 정말 열심히 했던 건 바로 동아리였다. 대학교 들어오기 전까지 해동검도 도장을 다녔는데 마침 그 학교에 검도 동아리가 있었다.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민할 거 없이 바로 연락해서 가입했다. 그때부터 나의 대학생활은 동아리로 시작해서 동아리로 끝나게 된다.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본다는 캠퍼스 커플. 나도 시도는 했지만 말짱 꽝이었다. 어리숙하고 히키코모리에 사람 다룰 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을 누가 좋아하냐 이런 질 낮은 생각도 들었다. 여자들이 자존감이 낮은 남자를 안 좋아한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너무 늦게 알았다. 대학생활 중에 연애에 있어서 내 자존감은 바닥을 향했다.
정말 좋아하던 친구에게 고백을 했지만 당연히 거절당했다. 그 뒤로 더는 고백을 못하겠더라.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고, 혼자가 좋다고 자기 위안을 해댔다. 누구는 연애 잘만 하는데 나는 왜 이 모양이냐 자책도 많이 했다. 거의 자기혐오에 가까운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거 같다.
연애에 대한 욕구는 분명 있는데 나 자신을 가꾸려 하지 않았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야 되는데 그러지도 않았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던 거지?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누가 나보고 연애 얘기를 하면 있어 보이는 척을 했었다. 연애 한번 안 해본 모쏠남이 쥐뿔도 모르면서 어디서 본건 있어가지고 허세 부리 기는...
소개팅도 몇 번 했지만 전부 실패였다. 당연하지 뭐. 낮은 자존감에 자존심만 강하면 대체 어떻게 사람들이 다가오겠어. 누가 나한테 "정신 똑바로 차리고 너 자신을 좀 돌보고 가꿔봐"라든지 "야 잔말 말고 내 말대로 해"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나는 좀 달라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제길... 그런 사람마저 하나도 없었다니... 인생 제대로 산 게 맞나?
내 전공이 전자공학이었다. 중학교 때 가볍고 성능 좋은 휴대폰이 나오면서 "이런 걸 만들려면 어디로 가야 되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부터 약간의 로망(?) 같은 뭔가가 있었던 거 같다. 그 이후로 전자기기에 관심을 가졌고, 컴퓨터와 친했기 때문에 대학교 전공이 전자공학이 되었다.
그런데 너무 막연한 꿈이었던 걸까? 전공 수업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아니 그냥 내가 아무 생각이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수학 과목은 그냥저냥 따라갔는데 프로그래밍(코딩) 수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어려워졌다. 생전 처음 만져보는 전기회로 실습장비에 정신이 나갔고,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밤마다 실습을 하느라 하루 시간을 다 써버렸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이런 거 대체 얼마나 해보겠어. 그냥 맨날 책 보고 시험 보고 하지. 나는 빵판(브레드보드, 소자를 끼워서 회로를 구성하는 기판)을 거기서 처음 봤다. 그런데 다른 동기들은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전기회로를 미리 배워와서 그냥 익숙하게 한다. 아니 이럴 거면 차라리 실업계 고등학교 가야 했을까? 나 어릴 때 실업계 고등학교는 "공부 못하는 애들이 간다"는 통념이 있었는데 어른들 말씀이 틀린 거 아냐?
그렇게 나는 익숙하지 않은 학과 생활과 과제의 늪에서 하루하루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다.
먼 미래의 일이지만 이때 전공 공부를 좀 잘해둘걸 하는 약간의 후회가 오게 된다.
답답하고 낯선 학교 생활에서 정말 나에게 활력이 되었던 건 동아리 생활이었다. 해동검도 동아리, 그리고 클래식 기타 동아리(좋아하는 여자애 따라갔다 눌러앉았다) 두 개를 병행했다. 매주 2~3회씩 수업이 끝나면 동아리방을 간다. 하루는 검도, 하루는 기타. 동아리방에 가면 선배들이 있었고, 검도동아리는 운동, 기타 동아리는 합주와 레슨 시간을 가지면서 친해졌다. 운동이나 합주가 끝나면 당연히 이어지는 뒤풀이. 내가 학교 다니던 시기에는 법이 강화되기 전이라 교내에서 술 마시는 게 가능했다. 주변에 술집이 있긴 했지만 멀리 갈 필요 없이 동아리방에서 배달음식 시켜다가 편의점 가서 술 사 와서 실컷 마시고 놀았다. 그게 내 대학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또 다른 즐거움은 '무대'였다. 검도 동아리는 1년에 한두 번씩 시범공연을 펼친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행사나 지방 행사에 참여해서 검도 시범공연을 한다. 각목도 베고, 종이도 베고, 짚단도 베고, 대나무도 벤다(내가 다 하는 건 아님). 검도에 생소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신기한 광경이었을 거다. 음악을 틀고 거기에 맞춰서 검법을 하기도 한다. 마치 춤을 추듯이.
기타 동아리는 마찬가지로 학교 행사에 참여하거나 1년에 두 번 정기연주회를 연다. 검도와는 정말 색다른 매력이다. 클래식 기타라서 노래는 하지 않고 기타 연주만 한다. 잘하는 사람은 혼자서 현란한 연주로 사람들의 귀를 호강시키기도 하는데, 나는 그렇게까진 아니었고 듀엣, 트리오 정도로 팀을 이뤄서 공연을 했다.
학과 생활보다 동아리 생활을 더 열심히, 더 오래, 더 꾸준하게 했다. 하도 과에 안 나가다가 가끔 나가면 과 선배들이 나를 보고 다크템플러(스타크래프트 캐릭터 중에 투명해서 안 보이는 캐릭터)라고 놀리곤 했었다. 그 정도로 동아리에 심취해 있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마음속에 가장 크고 무거운 짐이 하나 있었다. 그건 '군대'였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다녀와야 하는 의무라고 하지만 난 그 의무가 너무 싫었다. 구속되고, 사회와 단절되고, 가면 선임들에 치이고 나중에는 후임들에 치이고, 훈련하느라 몸이 힘들고 등등 내가 싫어하는 것들만 죄다 모여있는 곳이 군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군대를 안 가보겠다고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렇게 버티다가 대학교 3학년이 되니까 친구들은 이미 전역해서 자유의 몸이 되었더라. 하...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그러면서 그해 10월. 나는 나 스스로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이 결정은 내 삶을 바꾸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 나는 학교를 그만둘 생각까지 하면서 내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배워보고 싶다. 지금 다니는 학교는 나와 맞지 않다. 이 이야기를 부모님께 전달했고, 부모님은 나를 응원해주시면서 "그래 그럼 군대부터 다녀와라"라며 결국 나는 그렇게 피하고 다니던 군대와 마주하게 되었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당시 군생활 1년 9개월.
결국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입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