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의 그 이야기
기간: 2011년 3월 ~ 2012년 12월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공감할 것이다. 가끔 꿈에 군대가 나온다는 것을. 나는 군대라는 사회가 너무 싫어서 어떻게든 도망가려고 대학교 3학년까지 마쳤으나 결국 끌려가게 되었다. 전역하고 들은 이야기지만 내가 입대할 때 배웅해주시고 그날 밤에 우셨다고...
군대는 100억을 준다고 해도 다시 가기 싫을 정도로 그 세계를 싫어한다.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자니 좋은 기억은 없고 마냥 힘든 기억만 떠오르네. 하긴 그 자체가 싫은데 뭘 해도 싫었겠지. 1년 9개월을 버틴 내가 조금은 자랑스럽다.
나는 최대한 빨리 입대하기 위해 운전병을 지원했다. 장롱면허인 내가 운전병으로 들어가면 나중에 운전 좀 해서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따위 없었고 그냥 빨리 들어가고 싶어서 그랬다. 그런데 웬걸? 이후 밝히겠지만 나는 군생활 동안 운전대를 거의 잡아보지 못했다.
운전병으로 지원을 했지만 그 안에서도 여러 갈래로 나뉜다. 간략하게 소형, 중형, 대형. 나는 무심코 소형 운전을 지원했고, 뭐든 되겠지 하면서 경력을 조금 부풀려서 썼다. 거기서 운전을 잘하면 높으신 분을 모시는 운전병이 될 수가 있었다. 물론 그걸 노리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작은 차가 몸이 편하다고 얼핏 들어서 그랬을 뿐이었다.
운 좋게 중형으로 차출되지 않고 소형으로 지원하게 되었다. 맙소사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실제 주행시험을 봐야 했다. 안타깝게도 시험을 보는데 나는 3번이나 연속으로 시동을 꺼먹고 1미터도 앞으로 못 가고 주행 시험을 망쳤다. 장롱면허인데 어쩌겠어... 교관은 짜증을 내며 교대하라고 했다. 순간 온갖 생각에 잠겼다. 1미터도 앞으로 못 갔는데 자대 배치를 소형으로 받을 수가 있을까? 그냥 맘 편하게 중형으로 가는 게 맞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 놀랍게도 나는 소형으로 최종 배치를 받았다. 응? 이게 맞는 거냐??
자대 배치를 받고서 간 곳은 경기도 포천이었다. 전차대대 소속 수송부대. 그 부대에 처음 갔을 때 나는 너무 무서웠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 속에서 나는 또다시 그 어려운 적응을 해야만 했다. 나보다 먼저 온 선임들이라는 사람들도 역시나 군대를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닌 만큼 표정들이 다 굳어있었다. "아 ㅅㅂ 또 언제 끝나...ㅈ 같네" 딱 이 표현이 적절할 거 같다.
신병(이등병) 생활은 어리숙함의 연속이었다. 선임들이 몇 번이나 "얼타지 마라", "한 번 말할 때 알아들어라"라고 했지만 이 망할 몸뚱이는 그걸 알아듣는 데에 몇 날 며칠 걸렸다. 나 자신을 탓하며 또다시 자존감이 쪼그라들었다.
선임들 중에는 나와 동갑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군대에 가면 나이 따위 개나 준다. 그냥 입대일이 깡패일 뿐이다. 나는 나이 어린 선임들의 갈굼과 장난과 놀림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 군대에 적응했다.
군대에서 맞선임(바로 윗선임)은 잘 만난 것 같다. 엄청 빡빡하거나 성질 더러운 선임은 아니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허허실실 웃음이 많고 말장난도 잘 쳤다. 그래도 군대는 군대인 만큼 선임들에게는 칼같이 했고, 후임들이 잘못하면 가끔 화도 냈다. 맞선 임의 바로 윗선 임도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군대에 좋은 사람만 있진 않지. 오히려 좋은 사람보다 악질이 더 많은 게 군대가 아닌가? 분대장이라는 사람들은 참 별로였다. 분명 일은 잘하는데 싸가지는 없달까. 간부들이 보면 좋아할 상이다. 지금 보면 꼰대들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다행히 그 사람들에게서는 일 잘하는 법만 배우고 인간성은 배우지 않았다.
나는 분명 운전병으로 지원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운전대를 잡지 못했다. 내가 있던 수송부에서는 운전병과 정비병, 행정 계원 3 부류로 나뉜다. 나는 분명 운전병으로 지원해서 왔지만 내 운전 실력을 본 간부는 매몰차게 "너는 안 된다"라며 지금 당장 후임이 필요한 행정 계원 일을 맡겨버렸다. 1호차(대대장 차량) 운전병 후임도 공석이었지만 둘 중에 더 필요로 하는 업무에 나를 넣겠다는 이유로 등 떠밀리듯이 수송 행정 계원이 되었다. 이게 훗날 부모님의 놀림거리가 되고 말았다. "우리 아들은 운전병으로 갔는데 운전을 못 하고 나왔어요."
운전을 못 하는 나를 자책하지는 않았다. 운전 안 하면 몸이 편하겠지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한 가지 더 다행인 건 사수가 된 선임은 부대 내에서 브레인이라 불리며 일 잘하고 싹싹한 사람이었다. 큰 갈등 없이 사수가 전역할 때까지 잘 지냈다.
군대에서 제일 많이 생각했던 말은 "이 또한 지나가리니"였다. 밖에서나 안에서나 시간은 잘만 가는데 왜 그 안에서는 1분이 10시간 같은지...
시간은 계속 흘러서 나도 후임이 많아지게 되었다. 위에 있던 선임들이 다 사회로 나가고 내가 선임이 되었을 때 이제는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막돼먹은 후임들에게 시달리게 되었다. 나는 거기서도 사람 다루는 법을 잘 몰랐기에 양아치 같은 후임들에게 짜증만 내고 잘해주지 못했다. 그 애들하고 살았던 세계가 너무 달라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말 더럽게 안 듣는 애들이 꼴 보기 싫어서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나도 딱히 해준 게 없어서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2012년 12월 초
그렇게 싫어하던 군대를 떠나 전역을 했다. 이게 끝이 나긴 나네?
일병 중간에 부대가 포천에서 양주로 이전해서 집 가는 길이 편해졌다. 이 망할 군복에서 빠르게 벗어나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니 내 안에 있던 응어리가 씻어 내려간 기분이었다. 나도 이제 군필자구나!
군대에서 배운 게 있다면 글쎄... 누구는 군대에서 몸을 만들어오고, 책을 많이 읽고, 아니면 자격증을 따서 나온다는데 나는 남는 게 없었다. 흠... 그냥 무사히 건강하게 다녀온 것만으로 어디냐. 나에게는 그저 군생활이 끝이 난 게 제일 중요하다.
전역하고서 나는 학교에 다시 1년간 휴학을 신청했다. 학교 전공이 아닌 다른 것을 배우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겠다 다짐했고, 2013년 딱 1년이라는 시간을 과감히 쏟아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