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공부가 뭔지 알게 되었다

열심히 살았던 1년


기간: 2013년 1월 ~2014년 2월


내 삶에서 2013년은 지금의 인생을 결정지을 가장 큰 선택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힘든 상황들이 있었지만 이때만큼은 자신 있게 "노력"이라는 것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시기였다. 2012년 12월에 군대를 전역하고 자유의 몸이 되고서 곧바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했고, 몸이 힘들지만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2013년 초반 두 달은 토익시험을 치렀다. 대학교 졸업요건 채운다는 생각으로 그냥저냥 봤다. 졸업 요건 자체가 까다롭지 않아서 넘기는 건 쉬웠다. 3월이 되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실행했다. 그건 바로 게임 개발. 300만 원짜리 학원에 등록하고(부모님께 등록금을 지원받았다. 감사합니다) 수원에서 서울 동대문으로 출퇴근하다시피 코딩을 배우러 다녔다. 어릴 때부터 게임하라고 하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하는 나였기에 게임을 만드는 일도 재밌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게임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할 때 코딩 자체가 처음은 아니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C언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데 그때 수업 들었던 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 20살 새내기 때는 이게 무슨 외계어냐 하면서 아무것도 몰랐는데 막상 제대로 각 잡고 시작하니까 이해가 되고, 나름 재미가 있었다. 내가 코딩이 적성에 맞는다는 사실을 이때 처음 알았다.


수원에서 동대문으로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노트북을 손에 놓지 않았다. 요즘 나오는 얇고 가벼운 노트북이 아닌 보통 무게 정도의 노트북이었다. 지하철에 앉으면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코딩 과제를 했다. 학원 초반에는 쉬우니까 지하철 타는 2시간 안에 과제가 끝났다. 그 뒤로 점점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대학교 1~3학년 동안 매주 했던 밤샘 과제라는 걸 다시 하게 되었다. (망할 과제 지옥...)




과제 지옥에 빠져서 하루를 밤새고 다음날 학원에 가면 또 과제 지옥에 떨어진다. 이걸 8개월 넘게 하다 보니 밤새는 건 일상이 되어버렸다. 학원 건물 1층에 자습실에 가면 빽빽하게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가끔은 같은 반 사람들이 과제에 대해서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그 모습에 자극을 받고 나도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교 3학년 마칠 때까지 공부라는 것에 담쌓고 살았던 나는 없었다. 내가 원해서 하는 공부는 마지못해서 하는 공부와는 차원이 다르다. 다들 알다시피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 했던 공부는 시험 끝나면 다 날아가버리고 만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지고, 책을 찾아보고, 선생님이나 주변에 물어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진짜 공부가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전까지는 "공부가 재밌어요."라고 말하는 사람보고 "제정신인가?"라고 생각했는데 공부가 재밌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1년의 시간이 다른 걱정 없이 무난하게 흘러가길 바랬으나 인생의 고난은 날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았다. 공부는 아무리 어려워도 시간이 지나면 이해가 되고 해결이 된다. 하지만 사람 문제는 아니다. 가위로 자르듯이 끊어내지 않는 이상 끝없이 지속되는 것이 사람에 대한 문제였다. 수업 중간에 선생님이 교체되고, 반이 통합되고 하는 그런 문제들도 있었지만 학원 막바지에 나는 딱 1명의 사람으로 인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학원 수강 막바지에는 팀 프로젝트를 무조건 해야 했다. 포트폴리오를 잘 만들어서 게임 회사에 제출하기 위함이다.(잘 만든 작품은 학원 홍보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때 만난 팀원은 두 명. 나 포함 3명이서 게임 하나를 만들게 되었다.


문제는 둘 중 한 명이 감정 기복이 심하고 우울 증세도 있는 사람이었다(다른 한 명은 갓 스무 살 동생). 그 사람은 스스로도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기획을 하고 게임의 방향성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나와 그 사람은 끊임없이 다투었고, 나는 어르고 달래기를 수차례 하다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다투게 되는 이유는 이랬다. "네가 내 말을 안 들어줬잖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안 해줬잖아” 이런 말로 생떼를 썼다. 다 큰 어른이 무슨 생떼야.. 애들도 이런 생떼는 쓰지 않는다고. 최대한 자세히 설명하고, 의견을 구하고, 분명 동의를 했음에도 갑자기 자기가 원하는 걸 꼭 넣자고 투정을 부린다.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사람이었지만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 보니 어린애처럼 구는 게 꼭 열 살도 안 된 어린아이였다.


소통이 안 되다 보니 내 안에서 화가 쌓여서 풀리지가 않았다. 사람이 화가 극도로 쌓이면 어떻게 되는지 처음 알았다. 몸에서 진짜 열불이 나고 밤에 잠이 안 온다. 이게 말로만 듣던 화병이구나. 화를 다스리라는 말을 왜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당시 선생님께 팀원의 문제를 이야기했으나 돌아오는 건 이런 말이었다. “네가 그렇게 그만두면 그냥 거기까지인 리더일 뿐이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건 끝까지 해봐라.” 마치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각성을 돕는 스승님의 대사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상 네가 알아서 해라 이런 말이다. 하.. 결국 그냥 참으라는 거잖아. 나는 그렇게 꾸역꾸역 참고, 억지로 팀을 이끈 채 마지못해 프로젝트를 끝냈다. 그러고 그 사람 연락을 차단했다.




막바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수원에서 계속 출퇴근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동대문 근처에서 아는 형들과 자취를 했다. 학원 다니는 동안에 그 마지막 두 달은 그 이상한 사람을 빼면 나름 즐거운 시간이었다. 같이 공부하는 형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정보도 공유하고 술도 마시면서 참 재밌게 보냈다.


수강 생활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프로젝트의 결과는 아쉽게도 미완성이었다. 정해진 기간 내에 완성을 하지 못하고 프로젝트를 종료했다. 공부한 시간에 비해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지금도 매우 안타깝다. 하지만 이상한 그 사람 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내 역량이 딱 거기까지인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다녔던 게임 개발 학원생활은 그렇게 끝나게 되었다.


사실 더 다니면서 게임 개발을 위한 최신 도구들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돌아가야만 했다. 내가 다니던 그 시골에 있던 대학교로. 그렇게 나는 복학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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