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활의 끝자락, 이제 사회로


기간: 2014년 2월 ~ 2015년 2월


1년간 게임 개발을 공부하면서 학교에 돌아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한참 했었다. 결국 주변에서 "대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는 말에 결국 취업이 아닌 복학을 선택했다. 훗날 이 선택이 또 내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군대 2년 + 1년 휴학, 총 3년의 긴 휴학 생활을 마치고 학교에 돌아가니 꽤나 많은 것들이 바뀌어있었다. 자주 가던 술집들은 사라지고 아예 음식점이 들어서기도 했다. 학교에는 새로운 건물이 크게 들어섰고, 동산을 깎아서 주차장을 만드는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이제는 3년이면 동산 하나를 깎아버리다니...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걸까




복학을 하고서 보니 나랑 똑같은 기간에 휴학을 하고 같이 복학한 동기들이 있었다. 물론 나는 학과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들과 친하지 않았다. 3학년 마치고 쥐도 새도 모르게 군대에 들어가 버려서 그전에 연락하며 지내던 사람들과 아예 인연이 끊어졌다. 대학교 생활을 나 혼자서 해야 할 판이었다.


혼자일 거 같은 학교 안에서 다행히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했던 동아리. 내 학교생활의 거의 모든 것. 복학하자마자 동아리방을 찾았다. 그러나 그토록 그리워했던 동아리인데 왠지 이질적이었다. 동아리방 건물 자체가 리모델링되어있었고, 예전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치 사무실처럼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었고, 안에서 먹고 놀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내가 없는 2013년 동안 건물 리모델링 공사를 하면서 터전을 잠시 잃어버린 동아리는 회원수 부족으로 경영난에 시달렸고, 활동 자체를 하지 못해서 휴식기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리모델링이 끝나고 나서도 법에 의해서 교내에서 술을 못 먹게 되면서 동아리방에서 먹고 마시며 노는 분위기는 이제 사라졌다. 예전 같은 추억이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학교 주변 술집이 장사가 잘되는 이유가 이것 때문일지도.




학교생활은 수업, 과제, 동아리 3가지가 쳇바퀴 굴러가듯이 굴러갔다. 4학년 전공과목에서 코딩 관련 과목들이 많았는데 1년간 악착같이 공부를 했기에 수월하게 좋은 학점을 받았다. 교양과목은 그럭저럭 보통이었다. 거의 이수라도 하자는 그런 생각이었다.


나는 이때까지도 남들은 기를 쓰고 하는 취업준비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할 거 하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어떻게든 되겠지 뭐"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생각 없이 안일하게 지냈다. 어머니가 아셨으면 굉장히 답답해하셨겠네. 멀리서 자취해서 다행이었다.


그 해 동아리는 갑자기 많이 들어온 신입회원들 덕분에 잘 굴러가고 있었고, 학과 생활은 그냥저냥 잘 버텨내는 중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문제가 찾아온다. 그건 바로 졸업작품을 만드는 일이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졸업작품전시회가 1년 중 아주 큰 행사다. 신기하고 기발하고 멋진 작품들이 많이 나온다. 그렇기에 나는 취업보다도 그 문제가 나는 더 심각했다. 그걸 못하면 졸업을 못 한다는 생각에 부담감이 밀려왔다. 일찍 시작한 사람들은 3학년 2학기 말부터 슬슬 기획을 하고 작업을 한다는데 나는 4학년 1학기를 거의 마칠 무렵에 팀이 이루어졌다. 나랑 같은 처지(?)의 2명의 후배들과 팀을 이뤘고, 마치 2013년의 데자뷔를 보는 것과 같은 고통스러운 팀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졸업작품을 만드는 건 분명 3명이서 머리를 맞대고 할 일인데 거의 나 혼자서 하는 느낌이었다. 그냥 나 혼자서 다 했다고 말해도 괜찮을 거 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기획하고, 설계하고, 코딩하고, 자르고, 이어 붙이고, 내 손이 안 닿은 곳이 없었다. 그 두 명은 그저 거들뿐... 짜증 나고 화가 났지만 어쩌겠나. 코딩을 해야 하는데 코딩을 할 줄 모른다고 손을 못 대는걸. 결국 내가 해야지. 한숨을 팍팍 쉬면서 꾸역꾸역 작품을 만들어나갔다.


4학년 여름방학. 또 문제가 생겼다. 졸업하기 전에 인턴, 현장실습을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이 졸업요건이었다. 그런 걸 꼭 해야 하는 줄도 몰랐던 나는 대책도 없이 졸업작품을 만들고 있었는데 같은 팀 후배가 힌트를 주었다. "기술연구원님께 가시면 인턴 금방 끝나요.",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곧바로 연구원님을 찾아갔다. 그것이 또 내 미래를 결정짓는 한 방이었다.




인턴, 현장실습을 위해서 연구원님을 찾아간 나는 연구원님이 운영하시는 업체에서 프로그램 개발일을 보조했다. 1년간 내가 헛짓거리를 한 게 아니었구나.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신기하기도 하고, 인턴으로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큰돈은 아니지만 적어도 생활비는 할 수 있었으니 그만하면 아주 땡큐였다.


여름방학 때 인턴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작품도 어찌어찌 만들어서 10월에 무사히 전시회를 마쳤다. 같이 팀했던 후배들과도 작별했다(잘 살아라 인간들아). 이제 졸업만 하면 끝이었다. 아니 끝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도 취준생이 되는 걸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또 영어공부를 하고, 스펙을 쌓아야 하나... 그건 싫은데... 이런저런 생각하던 차에 인턴을 했던 회사에서 나를 불렀다.


인턴으로 일했던 곳에서 사장님(연구원님)이 정말 감사하게도 같이 일을 하자며 나를 정식 직원으로 채용을 해주셨다. 프로그램 개발을 전문적으로 하는 일을 맡겨주셨고, 거기서 선배님 두 분과 함께 4명이서 팀이 되어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정말 운 좋게도 취준생이라는 경험을 하지 않고 첫 직장을 얻었다. 얼떨떨하면서도 취업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어머니는 그렇게 작은 회사에 다니는 나를 매우 걱정하셨다. 부모의 마음이 원래 그런 거겠지. 더 좋은 직장, 더 인지도 있는 직장, 더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길 원하시니까. 그래서 첫 직장에서 열심히 하기로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훗날 그러게 얻은 직장에서 무려 5년 반을 일하게 될 줄은 상상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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