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 여전히 인생 초보
기간: 2015년 ~2018년 2월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했다. 취준생을 거치지 않고 바로 취업했다는 사실을 누가 보면 대단하다고 하겠지만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다. 그냥 얼떨결에 얻어걸렸다는 말이 맞는 거 같다. 주변에 대놓고 그렇게 얘기하기도 했다. 4학년 방학 때 했던 인턴생활이 곧바로 취업으로 이어졌고, 그때 봤던 선배님, 사장님과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회사 사무실은 교내 창업보육관 건물 2층이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 깊숙한 곳에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취업을 했음에도 학교를 다니는 학생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졸업을 했는데도 여전히 학생처럼 학교를 다녔다. 자취방도 그대로, 생활패턴도 그대로, 다만 바뀐 것은 출퇴근 시간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처음 몇 달간은 일을 한다는 생각에 나름 열심히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건가?" 취준생 시기를 거치지 않고 바로 취업을 해서 당시 취준생들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리겠지만 나는 그 회사가 점점 답답해졌다. 시골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같은 곳에 머물러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있는 것이 너무 싫어졌다. 고작 몇 개월 회사를 다닌 사회초년생이 벌써부터 맥이 빠져가지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질책을 받아 마땅했지만 "우물 안 개구리"의 삶이 얼마나 답답한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쳇바퀴 굴러가듯이 똑같은 하루.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쉬다 자고... 이때 나는 자기 계발이라는 개념조차 몰랐고, 재테크에 대한 지식이 1도 없었다. 관심조차 없으니 누군가 이야기를 해줘도 그냥 흘려버렸다. 내가 통장에 월급을 안 쓰고 2천만 원까지 쌓아둔 적이 있었는데 은행에서 전화가 와서 적금이나 예금을 만들면 어떠냐고 추천해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돈에 무지하고 세상에 무지했다.
정말로 우물 속에 개구리가 되어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회초년생일 뿐이었다.
한 가지 좋은 점은 교내에 있다 보니 동아리 생활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다. 취미생활로 검도 동아리에서 후배들 검도를 지도해주었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진짜 열심히 했다. 정말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돈이 없어도 가능했던 것 같다. 오히려 돈을 썼지. 후배들 맛난 거 사주느라. 이런 취미생활마저 없었으면 나는 정신병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자취방에 있으면 하는 일은 시간 때우기였다.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정말 가끔 소설책을 읽거나. 밖에 나가는 것이 귀찮아졌다. 시골 구석에 있는 학교는 나가봤자 거기서 거기고, 시내로 나가려면 버스를 타고 가야 하고, 나가면 돈을 쓰게 되고 하니 그냥 방에만 틀어박혀서 나가지 않았다.
가끔 후배들을 내 방에 초대해서 같이 놀곤 했다. 동아리방에서는 술을 못 마시니 내 방을 내주고 아지트로 삼았다. 하루는 너무 시끄럽게 떠들어서 옆방에서 쌍욕을 하면서 문을 두들겼다. 한두 번이 아니었을 텐데 지금 생각해보니 새삼 미안해진다.
나는 게임에 미친 사람처럼 게임을 열심히 했다. 심지어 온라인 모임에 들어가서 사람들하고 게임을 즐겼다. 오버워치라는 게임이 처음 나왔을 2016년 무렵 카톡 오픈 채팅방에 들어가서 몇 날 며칠 늦은 밤까지 게임을 했다. 게임 내에서 음성 대화를 할 수 있기에 사람들하고 대화도 많이 했고, 카톡에서도 폭풍 수다를 떨면서 재밌게 놀았다. 그 모임 안에서 뜻밖의 인연을 만났다.
하루는 내가 지내고 있던 지역에서 오프라인 모임을 한다는 소식에 가벼운 마음으로 놀러 나갔다. 5~6명 정도 모였던가. 같이 밥도 먹고, 술도 먹고, 피시방 가서 게임도 하고 재밌게 놀다 보니 가까워지게 되었고 그중에서 나와 나이가 같은 여자애 한 명과 개인적으로 연락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무려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라왔다고 했다. 와우... 제주도라니... 며칠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하루는 연애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한방을 날렸다. "나랑 사귈래?" "응???????" 나는 아무 생각 없다가 너무 놀라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다행히 이후에 또 그 친구가 올라온다고 해서 그때 제대로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다시 그 친구가 올라왔을 때 오프라인 모임이 있어서 같이 참여했고, 모임이 파하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나자 나와 그 친구는 방을 하나 잡고 같이 들어갔다(상상하지 말자. 전혀 아무 일 없었다. 내가 연애에 숙맥이라서...). 그날부터 우리는 1일이 되었다.
그 뒤로 서로 비행기를 타고 오고 가면서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제주도로 내려갔고, 1박 2일, 가끔은 2박 3일로 같이 놀러 다녔다. 서로 떨어져 있을 때는 영상통화를 매일 하면서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 게임 모임을 같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나와 그 친구가 사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아마 알고 있지 않았을까?
서로 애틋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 남는 것이 없으면 그 관계는 끝나는 걸까?
그 친구와 서로 크게 싸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이 멀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장거리 연애를 하면 이렇게 되는 건가 생각도 해봤다. 영상 통화는커녕 음성통화조차 뜸해지고, 카톡을 남겨도 답장이 안 오고, 연락이 다시 되면 뭔가 미지근하고... 나만 안달이 나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뒤에 나는 이별을 당했다. 잠수 이별.
무엇이 문제였을까? 아마 내가 문제였겠지. 남 탓할 일이 아니었다. 한동안 시련의 아픔에 빠져서 몇 달 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시련의 아픔이 점점 잊힐 때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만나러 밖으로 나갔다. 이번에는 본가에서 가까운 모임을 찾았다. 모임 목적은 그냥 친목. 자주 술자리를 가졌고, 가끔 다른 활동도 했다. 볼링을 치거나, 등산을 하거나, 보드게임을 하거나. 말 그대로 친목을 위한 모임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본가에 가기까지 시간은 약 2시간 반이 걸린다. 당시 나는 차가 없었기에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했다. 나는 그 모임에 빠져서 평일에도 2시간 반을 달려서 놀다가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서 출근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친 거지. 어떻게 평일에도 그렇게 노냐? 건설적인 일도 아니고 그냥 술 모임인데.
그 모임 안에서 나름 배운 것이 있다면 인간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온라인에서 가볍게 만난 사람들과는 깊은 대화를 하는 게 불가능했다. 놀자고 만난 모임에서 진지한 이야기가 통할 리가 있을까? 그런 모임이 길어봐야 얼마나 갈까? 또 그 안에서 서로 안 맞는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기도 한다. 그렇게 싸우다가 먼저 한 명이 나가면 덩달아 다른 한 명도 나간다. 그렇게 몇 달간 즐겁게 놀고 지내던 모임 사람들이 점점 흩어지더니 결국 모임 자체가 사라져 버렸다. 참 허망한 일이다.
내가 회사에 들어가서 약 3년이 지나고 나는 지긋지긋한 시골 촌동네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게 2018년 초였다. 회사 사무실 계약이 끝나서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겨야 한다는 말에 부랴부랴 이사할 곳 근처에 방을 얻었다.
내 모교에서 무려 10년 가까이 지내고 나니 더는 미련이 없었다. 동아리 활동도 후배에게 물려주고 이제 진짜 졸업생 선배가 되었다. 회사가 옮겨간 곳은 나름대로 도시 한복판이었다.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있을 건 다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다시 2년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