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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석 May 13. 2022

"까판의 문법"

살아남은 증언자를 매장하는 탈진실의 권력 기술 - 조정환 


언어와 공동체       


언어는 대상을 거울처럼 보여주거나 세계의 운동을 설명하는 기능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사건을 해석하여 세계의 운동 방향에 영향을 주기도 합니다. 언어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공동체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공동체의 언어는 대부분 상대를 긁어대며 내편과 상대편이라는 경계를 더욱 높게 만드는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타아(他我)의 진영에 담을 높이는 언어가 아니라, 세상을 단순한 이미지로 조작하는 언어가 아니라, 목적성이 뻔히 보이는 언어가 아니라,  혼란스럽게 얽혀있는 담론을 한 올 한 올 풀어주는 언어가 무척 소중할 때입니다. 혼란스럽게 얽혀있는 논거들의 매듭을 풀어주고, 놓친 사유의 연결고리를 엮어주는 책을 만날 때면 헤매던 길 위에서 이정표를 발견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조정환의 “까판의 문법”을 읽으며 무척 반가웠습니다. “까판의 문법”은 이리저리 뒤섞인 주장의 근거들, 사실과 거짓의 경계를 흐리는 가짜 뉴스, 의도적으로 각색한 수많은 자료들을 정제시켜 어떻게 장자연의 죽음이 대중의 관심에서 사라지고 사건의 증인인 윤지오만이 보이게 되었는지 잘 설명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까판의 문법”에서 까판이란 좁은 의미로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까는 판을 지칭하며 주로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형성된 언어입니다. 가판은 가짜 뉴스의 진원지이고 여기서 생성된 가짜 뉴스는 공동체 내의 불신을 키우고 상대를 증오하고 없애야 할 대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까판의 문법


2017년 12월 정부는 과거 인권침해나 검찰권 남용 등을 재소 하기 위해 '검찰과거사위원회'를 발족하였습니다. '검찰과거사위원회'는 장자연 사건을 사전조사대상에 포함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실체의 규명보다 윤지오라는 증인만 부각됩니다.     

 

조정환은 “까판의 문법”에서 대중의 관심이 ‘고 장자연 성폭행과 리스트’에서 멀어지고 오히려 윤지오라는 증인을 둘러싼 이야기만 무성하게 된 상황을 파헤칩니다. 나아가 까판의 문법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유튜브, 공중파 방송, 고발조치 등을 통하여 여론을 주도해가는 과정이 사회에 어떤 해악을 끼쳤는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까판의 문법”은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만큼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조정환은 책에서 ‘약촌 오거리 살인사건’ 재심 변호사로 유명한 박준영 변호사, 영화 ‘부러진 화살’의 실제 변호인 박훈 변호사, ‘가로세로연구소’의 전 김용호 기자, 서민 교수 등의 논리와 그들의 권력 의지의 실타래를 정연하게 풀어줍니다. 그리고 장자연 사건의 가해자들이 무죄로 판결 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정리해줍니다.      


저자는 윤지오의 증언을 무력화시키고 윤지오를 공공의 적으로 만드는데 기본 틀을 제공한 사람이 박준영 변호사라고 말합니다. 많은 분이 알다시피 박준영 변호사는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 삼례 나라 슈퍼 강도사건, 8차 화성 연쇄살인사건, 약촌오거리 사건의 변호사로 재심 전문 변호사입니다. 때문에 그가 만든 틀이 이후 상식을 가진 시민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박준영 변호사는  장자연 사건 가해자들이 장자연 사건 증언자를 매도하려는 목적과 윤지오가 증언을 하려는 목적을 서로 간에 자신의 이해를 위하여 싸우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장자연이 죽기 전에 작성한 문건과 리스트를 성폭력 체제에 대항하는 절규로서 이해할 때, 가해자와 피해자, 가해의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그것을 은폐하려는 자 사이의 투쟁"으로 바라봐야지 결코 자기들의 이해를 위하여 싸우고 있다고 바라봐서는 옳지 못합니다.   


또한 박준영 변호사의 글은 “윤지오의 증언 일관성에 대한 의심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의 초점을 가해 권력의 성폭력에 대한 검증에서 증언자의 인격에 대한 검증으로 돌리는”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그것의 실제 효과는 증언의 표적이 된 가해 권력"을 대중들의 시야에서 은폐시키고 증언자의 언행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후 장자연 사건은  가해자를 밝히려기 보다는 사건의 증언자를 검증하는 것을 이슈로 삼게 됩니다.        



후원금 반환 소송


증언의 “위험을 우려한 가족들과 본인이 2018년에 증언 청탁을 거절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여러 차례 설득하여 증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 거듭된 요청을 받아들여 윤지오는 증언을 결심하고 한국으로” 오게 됩니다. “2018년 말 증언을 위한 첫 번째 한국 방문 시에 윤지오는 위험을 우려하여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고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경호조치를 받기도 합니다. 


”2019년 초 두 번째 한국 방문은 첫 번째 방문 때보다 더 많은 증언 요청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조사 시한이 연장된 검찰 과거사위원회로부터도 추가로 증언 요구가 있었지만 어떠한 신변보호 조치도 약속되지 않았 “습니다. 이에 윤지오는 자신의 이름인 땅지, 밝은 오를 따와 ’ 지상의 빛‘이라는 이름의 비영리단체를 설립합니다. 이는 본인의 신변을 보호하고 증언자 보호를 위한 비영리 단체를 설립하여 후원금을 모으기 위해서였습니다. 후원금으로 1억 원이 조금 넘는 돈이 모였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제공한 경호조치에 대한 비용과 비영리단체 ‘지상의 빛’에서 모여진 모금으로 사용된 경호 비용으로 인해 고발을 당하게 됩니다. 자유 한국당 소속 박민식 변호사는 “범죄 피해자로 볼 수 없는 윤 씨가 피해자인 것처럼 국가와 국민을 속여 범죄 피해자에게 사용돼야 할 기금을 부당 지원받았으며 국가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취지로 윤지오를 상대로 후원금 반환 소송을 합니다. 

   

후원금 반환 소송은 장자연 사건을 폭로하려는 윤지오의 증언을 묻어버리는 효과를 발휘합니다. 이후 대중들은 장자연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증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가짜 뉴스, 의도가 있는 고발장, 잘못된 논리 전개 등이 만든 사건은 공동체의 상식적 판단을 오염시켰습니다. 실체를 가리는 언어가  넘쳐나는 시대에 “까판의 문법”은 진실에 다가가려는 사람들이 공들여 읽어봐야 할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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