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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석 May 12. 2022

“선거는 민주적인가” - 버나드 마넹

       1장 : 직접 민주주의와 대표성

          

「 “오늘날 우리가 ‘대의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정부 형태는 애초에는 민주주의의 한 형태 혹은 인민에 의한 정부로 간주되지 않았던 제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 - (서론 첫 문장)  

   

영화 '아고라'의 한장면


현대 ‘대의민주주의’는 아테네 ‘직접민주주의’를 기원으로 하지 않는다.    

  

서론의 첫 문장부터 흥미를 자극한다. 마넹은 세계 많은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대의 민주주의제도는 아테네 직접민주주의와는 다른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대의민주주의를 과다한 인구, 사회의 복잡함, 전문성의 필요 등으로 직접민주주의가 불가능하게 되자 대안으로 선택한 제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는 기원이 다르며 대의제의 핵심인 선거는 민주주의 본질을 보증할 수 없는 제도라고 주장한다.      


아테네 정치제도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추첨을 통해 집정관을 지명하는 것은 민주주의적인 것이고, 선거에 의한 것은 과두적이라는 것이다. 재산 자격에 기초하지 않는 것은 민주적인 것이고, 그에 대한 제한이 있는 것은 과두적인 것이다”라고 평가했다고 하니 아테네인들이 생각한 민주주의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선거제도와 추첨제를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테네의 정치는 민회에 의해서 운영된 것이 아니다.      


아테네 민주주의 꽃은 시민들이 직접 중요한 안건을 토론하며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민회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아테네의 정치 시스템을 모르는 상황에서 나온 잘못된 이해이다. 아테네는 민회 이외에 시민대표 평의회, 행정관, 시민 법정 등 여러 정치기관이 존재했으며, 이 기관들은 단순히 민회가 결정한 안건을 집행하는 기관이 아니었다.      


시민대표 평의회는 민회가 토론하는 안건을 미리 정하는 권한이 있었다. 시민대표 평의회는 군사, 재정, 외국사절 접견에 대한 기능도 수행하였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평의회가 가장 결정적인 통치체이다. 왜냐하면 평의회가 민회에서 토론할 의제를 준비하고, 결정된 사항을 실행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행정관, 법원도 중요한 정치적 역할을 하였는데 이 기관들도 평의회만큼이나 국가 운영에 독자성을 가지고 있었다.   

   

 선거는 민주적인가, 버나드 마넹 지음 


아테네 민주주의 전통은 민회가 아니라 추첨에 있다.    

  

평의회, 행정관, 시민 법정의 재판관들은 선거가 아니라 주로 추첨에 의하여 선출되었다. 평의회 위원은 30세 이상의 시민이 추첨으로 선출되었으며 누구도 두 번 이상의 평의회 위원이 될 수는 없었다. 아테네 행정부를 구성하는 행정관들은 700명인데 이 중 600명은 추첨으로 충원하였다. 이들도 임기는 1년이고 일생 동안 동일한 직책을 재임할 수는 없었다. 시민법정도 마찬가지다. 30세 이상의 지원자 중 6000명을 추첨으로 뽑는다. 그중에서 재판관을 다시 뽑는 형식이다. 즉 아테네 정부는 추첨으로 뽑힌 사람들로 운영되었고, 임기도 한정되었으며, 같은 직책은 두 번 할 수 없었다.      


아테네인이 선택한 추첨제 방식에서 그들이 생각한 좋은 통치란 무엇인가를 읽어볼 수 있다. 아테네 인들은 좋은 시민을 만드는 것을 교육의 최고 목적으로 하였는데, 좋은 시민이란 피통치자일 때 시민의 의무를 다하고, 통치자가 되었을 때는 훌륭하게 통치하는 시민을 말한다. 그들은 “정치적 활동과 공직 참여를 인간이 가진 탁월성의 최고 형태로 간주”하였지만 누구든 통치에 관여하면 지속적으로 지배하려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테네 “민주주의자들은 관직 교체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이를 하나의 법률적 요건으로 만들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아테네 민주주의는 이론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교체의 원칙을 중심으로 조직”되게 하였다. 선거제도는 통치자를 교체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당선된 사람은 기득권을 이용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이를 강제적으로 교체하기 위해서는 추첨제가 가장 효율적이다.           


추첨제는 평등의 원칙에 가장 충실하다.      


추첨은 평등의 원칙과도 연관되어 있다. 근대인인 우리는 평등이란 누구나 동일한 몫을 가지는 것을 평등이라고 생각하거나 개개인에게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을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여기 있는 사람 모두 똑같이 나눠야 평등이지, 누구나 기회는 주어져야 평등이지) 이와는 다르게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는 평등은 “추첨을 통해 동일하게 배분되었던 것은 권력이 아니라 바로 권력을 가질 수 있는 (수학적)확률이었다.” 이는 “어떤 것을 가질 수 있는 균등한 가능성을 상정”한다.    

  

행정관이나, 평의회 위원이 되고 싶으면 부지런히 준비하여 추첨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집어넣고 기다리면 된다. 이는 민회에서 자신이 의견을 내놓기 위해 손을 들거나 잘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려는 부지런함을 부리는 것과 동일하다. 따라서 추첨은 권력을 동일하게 배분하는 과정은 아니지만, 권력을 균등하게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은 가지는 방식이다. (이는 자본주의사회에서 말하는 기회의 평등과는 다르다. 경쟁 프로그램에서 추첨으로 당선자를 뽑지 않는다)      


추첨된 사람들은 제도적으로 타인의 지속적인 평가를 받아야만 했다.      


추첨으로 당선된 사람들은 임기가 자연스럽게 보장되지 않는다. 행정관은 언제나 민회와 시민 법정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임기 중에 시민들의 평가를 받아 직무가 정지될 수도 있었다. 시민이면 누구나 행정관을 불신임 투표를 제안할 수 있었고, 행정관의 유무죄 판결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행정관만이 아니라 추첨에 당선된 공직자는 불신임을 받으면 커다란 경제적 불이익과 명예를 손상할 것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특수하게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한 직책의 경우라고 판단되는 '군사업무'나' 재정업'무는 지속적으로 선출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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