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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석 May 31. 2022

"연금술사" (3). 에코, 나르키소스,호수, 산티아고

 


                                      에코와 나르키소스  -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작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숲의 요정 에코는 미소년 나르키소스를 너무도 사랑합니다. 하지만 나르키소스는 에코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자기애로 가득한 나르키소스 가슴에 에코의 사랑을 받아들일 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르키소스에 대한 에코의 사랑은 자신의 몸을 녹여 나오는 사랑이었습니다. 외면되는 사랑에 요정 에코는 나날이 여위어 결국 몸은 남김없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목소리의 울림뿐이었습니다.  


숲의 요정들은 에코의 애틋한 사랑을 받아주지 않은 나르키소스에게 분노합니다. 요정들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에게 찾아갔습니다.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여!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간 에코의 복수를 부탁합니다". 여신은 숲의 요정들의 기원을 들어줍니다. 이제 나르키소스는 자신만을 사랑해야 하는 저주에 걸리게 됩니다. 나르키소스는 호수 물결에 비추어진 자기 모습과 사랑에 빠져 매일 호숫가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결국,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물결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다 죽어 수선화로 남게 됩니다


그리스 신화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 매일 호숫가를 찾았다는 나르키소스.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결국 호수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자리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났고,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따서 수선화(나르키소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오스카 와일드의 나르키소스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와 다릅니다. 그리스 신화가 자기애에 빠진 나르키소스와 그를 사랑한 에코의 비극적 이야기라면, 오스카 와일드의 이야기는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살아가는 나르키소스와 호수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르키소스가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숲의 요정들은 한때는 모두의 연인이었던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기 위해 호숫가에 모여듭니다. 그들이 왔을 때 호수가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요정들은 호수가 이제 더 이상 아름다운 나르키소스를 볼 수 없어 슬피 울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호수가 요정들에게 의문의 눈길로 물어봅니다. “나르키소스가 그렇게 아름다웠나요?” 나르키소스를 매일 보았을 호수가 이런 물음을 하니 요정들은 당황하며 반문합니다. “그대만큼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움을 잘 아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르키소스는 날마다 그대의 물결 위로 몸을 구부리고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았잖아요!”


호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저는 지금 나르키소스를 애도하고 있지만, 그가 그토록 아름답다는 건 전혀 몰랐어요. 저는 그가 제 물결 위로 얼굴을 구부릴 때마다 그의 눈 속 깊은 곳에 비친 나 자신의 아름다운 영상을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가 죽었으니 아! 이젠 그럴 수 없잖아요.”


호수는 에코처럼 타자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자신마저 사라져가는 존재가 아었습니다. 호수는 물결 넘어 나르키소스의 눈동자에 비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습니다.  나르키소스의 눈동자에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냈는데 이제 그렇지 못하게 되자 호수는 슬픔에 빠진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를 새롭게 해석한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스카 와일드의 이야기를 '산티아고'의 자아 여행에 비추어 비판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나르키소스와 호수는 둘 다 시야가 자아의 내면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비추어주는 타자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일란성쌍둥이입니다. 나르키소스와 에코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게 한 소중한 타자를 소외시켰습니다. "연금술사"의 주인공 산티아고를 보겠습니다.


산티아고는 꿈에서 본 보물을 찾기 위해 여행의 첫 도착지 아프리카에 도착하지만 도둑을 만나 모든 돈을 잃어버립니다. 그는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주 허름한 크리스털 가게에서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산티아고는 점원으로 머무는 동안 지나가는 행인들과 긍정적 관계를 만들고 크리스털 가게 주인과도 서로가 도움이 되는 관계 맺습니다. 허름했던 크리스털 가게는 날로 번성해지고 산티아고도 여행 경비를 충분히 마련하게 됩니다.


산티아고는 꿈에서 본 장소로 떠나기 전 가게 주인과 대화를 합니다. “오늘 떠나겠습니다. 이젠 양을 살 돈이 충분합니다. 아저씨도 메카에 갈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갖고 계시고요. 신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아저씨는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난 자네가 자랑스럽네, 자네는 크리스털 가게에 생기를 가져다주었어.” 산티아고는 함께 하는 모든 존재와 풍성한  사건을 만드는 여행자입니다. 그들은 함께하는 동안 서로가 자아를 찾아가는 관계가 되어갔습니다.  


에코, 나르키소스, 호수, 산티아고 그들은 자아와 타자가 관계 맺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요정 에코는 타자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자아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반복된 소리만 남기고 사라집니다. 자기애로 꽉 찬 나르키소스는 자신이 만든 울타리 밖으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호숫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였고, 호수는 늘 옆에 있던 나르키소스의 죽음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산티아고처럼 나와 세계는 서로가 자아를 찾아주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아를 찾는 여행자는 내면을 바라보는 지향성을 간직하며, 함께 하는 소중한 타자와 관계를 맺으며 길을 걷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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