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영어 제목은 “Cow. Pigs. Wars and Witches : The Riddles of Culture (암소, 돼지, 전쟁 그리고 마녀 : 문화의 수수께끼)”이다. 저자인 마빈 해리슨은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힌두교인들이 암소를 숭배하고, 유태인이나 무슬림이 돼지를 먹지 않으며, 원시인들이 비합리적인 이유로 전쟁을 일으켜 살생을 일삼는 현상의 원인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마빈 해리슨이 위와 같은 문화적 현상을 해석하는 기본 관점은 유물론적이다. 여기서 유물론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신비적이고 비합리적인 현상의 사회경제적 근거를 찾아서 설명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비문명적 행동으로 보이거나 신비적으로 보이는 수많은 문화현상의 물적 토대를 분석할 수 있는 시각을 주고 있다. 사람들이 굶주려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암소를 숭배하고, 원시인들이 비상식적인 이유로 야만적인 전쟁을 일으키는 행위를 합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진다는 것은, 스탈리니즘, 파시즘, 자유민주주의 대의를 내건 잔혹한 전쟁, 민족주의적 이상을 품은 독재 등 인류가 무 비판적으로 따랐고 신비화시켰던 대의의 사회경제적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것이다.
힌두교인들의 암소 숭배
마빈 해리슨은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인도의 암소 숭배를 첫 분석대상으로 삼는다. “힌두인들은 암소를 숭배한다. 암소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마리아가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어머니인 것과 마찬가지로, 힌두교인들에게는 암소가 삶의 모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힌두교인들에게는 암소를 죽이는 일보다 더 큰 신성 모독이 없다. 인간의 살인행위조차 암소를 죽이는 행위에 부여된 신성모독적인 의미가 주어지지 않는다.” 서구인의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다.
서구의 여러 전문가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인도인들이 굶주리고 가난하게 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암소 숭배의 전통 때문이라고 한다. 유럽에서 교육받은 농경학자들은 암소 도살 금기 때문에 ‘아무 쓸모없는’ 1천만 마리의 동물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또한 암소 숭배 전통이 농업 능률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까닭은 그 ‘아무 쓸모없는’ 동물들은 우유도 고기도 공급하지 못하면서도 유용한 가축 및 굶주린 인간들과 식량 그리고 땅을 가지고 경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서구와 같이 ‘고에너지 사회’의 시각으로 인도와 같은 ‘저 에너지 사회’를 분석하다 보면 아주 빗나간 결과를 얻게 된다. 예를 들어 미국 같은 나라에서 농업은 자연, 인간, 사회의 순환시스템에서 벗어나 있다. 대규모 기계 영농을 하는 서구 농업은 자연이나 사회관계와 중요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농업은 자연과 사회관계와는 독립되어 있으며 농업 수확량은 기계와 화학비료, 살충제 등에 의존한다. 하지만 '저 에너지 사회'인 인도 같은 사회에서 농업은 인간, 자연, 사회, 가축의 생태 시스템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안의 상호관계가 어떻게 맺어지고 있는가를 바라보아야 농업이라는 단일 실체도 이해할 수 있다.
인도의 암소는 우유생산을 주목적으로 사육되는 '고에너지 사회'의 암소와는 다르게 생태순환 시스템 안에서 다양한 역할을 담당한다. “인도의 암소는 매년 7억 톤의 분뇨를 배설한다. 이 배설량의 약 반 정도는 비료로 사용되고 나머지 대부분은 연료로 사용된다. 이 소똥이 방출하는 연간 총열량은 2,700만 톤의 등유, 3,500만 톤의 석탄, 혹은 6,800만 그루의 땔감용 나무의 열량에 해당한다.” “소똥은 이외에 다른 한 가지 주요 용도가 있다. 물에 개서 반죽을 만들어 마루에 까는 데 사용된다. 더러운 마루에 소의 분뇨 반죽을 발라 매끄럽게 다진 후 굳히면 먼지가 잘 흡수된다. 흡입된 먼지는 비로 쓸어내면 된다.
암소는 이외에도 사회가 해야 할 역할의 한축을 담당한다. 암소의 분뇨는 인도 사회의 특수한 계급인 카스트제도의 최하층의 생계를 담당한다. “도시의 ‘청소부 카스트’들은 거리를 방황하는 암소들이 배설한 소똥을 거두는 독점권이 부여되어 있어, 거둬들인 소똥을 가정주부에게 팔아 생계를 꾸려나간다.” 인도 암소의 쓸모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마르고 바싹 마른 암소이지만 몬순기후가 찾아와 식물들이 자라나면 암소들은 다시 살이 오르고 우유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이때의 우유는 가난한 농민들의 마지막 생존수단이 된다.
암소를 키우기 위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농민들에게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암소는 일종의 자유방목 상태일 수 있다. “때때로 암소들은 목장이나 경작지를 침범한다. 이에 대해 지주들은 불평을 하지만, 가난한 농부들은 자신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항변하면서, 암소 숭배를 내세워 소의 반환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일들은 농촌에서 뿐 아니라 도시에서도 벌어진다. “도시에서도 암소의 주인들은 자기들의 소를 낮 동안 돌아다니게 방치했다가 밤이 되면 우유를 짜기 위해 불러들인다.” 이 모든 것이 암소 숭배 의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분실의 위험도 크지 않다. “소 양로원이나 경찰서의 공공 우리 등이 있기 때문에 도시에서 소를 잃는 위험은 극히 드물다. 소에게서 우유를 더 이상 짜낼 수 없게 되면, 소 주인은 자기 소가 방황하게 방치해 두어 경찰에 끌려가 공공 우리에 갇히게 한다. 잃은 소를 다시 찾게 되면, 소 주인은 소액의 벌금을 납부하고 평소의 방목 지역으로 끌어온다”. 암소 숭배는 인도 사회의 특성, 즉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생산성을 유지하며 사회관계를 존속시켜 나가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다. 인도에서 암소의 역할은 '저 에너지 사회'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전투적 메시아 운동과 마녀사냥
마빈 해리슨은 암소 숭배 이후 돼지 숭배, 원시 전쟁, 선물 경제 등을 분석하고 후반부에서는 메시아 운동과 중세 마녀사냥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그는 13세기에서 17세기 무렵 부패한 기독교에 저항하는 ‘메시아 운동’과 함께 ‘마녀사냥’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다는 것에 주목한다. 종교개혁(메시아 운동)은 사회,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이런 사회적 저항이 전투적 매시아니즘의 형태로 나타났다고 보고 있다. 전투적 메시아니즘이란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하는 사람들이 기존 종교와 사회에 저항하는 일종의 혁명운동의 성격을 가지며 나타난 것을 말한다.
노만 콘이라는 작가는 그의 책 ‘백 장(章)의 책’에서 프레드릭이라는 사람이 백마를 타고 와 전 세계를 통치할 것이라 예언하며 ‘전투적 메시아니즘’ 운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교황에서부터 시작하여 전 성직자들이 하루 2,300명꼴로 전멸될 것이다. 프레드릭 황제는 또한 모든 고리대금업자, 물가를 조작하는 악덕 상인들, 파렴치한 재판관들을 대량 살육할 것이다. 모든 재산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될 것이며 사유재산 제도가 사라지고 모든 물건이 공유화될 것이다.” 전투적 메시아 운동은 명확하게 민중 저항운동과 맥을 같이한다.
전투적 메시아 운동이 지속될수록 이에 대한 탄압(마녀사냥)도 점점 강해진다. “종교개혁의 과격파들은 16세기와 17세기 초반까지 총력전을 계속했다. 그런데 가톨릭 지도자들은 프로테스탄트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런 운동들을, 모든 재산 관계를 붕괴시키고 교회와 국가의 부를 가난한 자에게 분배할 목적을 지니고 온 유럽에 널리 퍼져 있는, 이단들의 음모라고 여겼다. 예컨대 뮌처의 제자의 한 사람인 한스 후트는 자유로운 사랑과 재산을 모두가 나누어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그리스도가 1528년에 재림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민중 저항운동이 메시아즘으로 나타났다면 이를 탄압하는 권력은 마녀사냥 방식으로 나타난다. 마녀사냥은 전투적 메시아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기 시작할 무렵 ‘이노 센트 8세’에 의해서 공식적으로 인준되었다고 한다. 신비적이고 비이성적 행위를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저자는 “마녀 광란의 원인을 밝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마녀 광란이 지녔던 천상적 목적보다는 그 세속적 결과들을 고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마빈 해리슨은 “메시아적 사회 저항운동과 마법 광란이 평행을 이루고 전개된 까닭의 실제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설명”해나간다.
“결국 마녀 광란이 지닌 실제적인 의미는 마녀 광란을 통해 중세 후기 사회의 위기에 대한 책임을 교회와 국가로부터, 인간의 형태를 취한 가상의 괴물들에게 전가시켰다는 데에 있다. 이 괴물들의 환상적인 행위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소외되고 영세화된 대중들은 부패한 성직자들이나 탐욕스러운 귀족들을 저주하는 대신에 미쳐 날뛰는 악마들을 저주하게 되었다. 교회나 국가는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대중과 사회에는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존재들이 되었다.” 마녀사냥은 부의 재분배를 바라는 민중들의 요구를 좌절시키고 이웃끼리 의심하며 싸우게 만들고, 모든 사람들을 공포 분위기로 만들어, 종교와 지배자에게 다시 기대게 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전투적 메시아 운동과 마녀사냥의 감추어진 사회경제적 비밀이다.
마빈 해리슨은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다양한 문화 현상을 분석하며 객관적인 과학적 사고만이 인류가 벌이고 있는 비합리적인 행위를 근절시키는 핵심적 도구라는 생각을 깊게 담아내고 있다. 그는 도덕성을 붕괴시킨 베트남 전쟁,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레닌의 공산주의 이상은 “애국심의 상징들과 영광에의 꿈, 억누를 수 없는 자만심, 제국의 환상들에 의해 우리의 의식을 신비화했기 때문에” 지상에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고 사회의 불평등 요소들을 변경시킬 수 있는 것은 과학적 객관성을 중시하는 인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