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말(馬)을 마구간에서 끌어내 오라고 명했다. 하인이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몸소 마구간으로 들어가 말에 안장을 얹고 올라탔다. 먼 데서 트럼펫 소리가 들려오기에 나는 하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는 영문을 몰랐다. 그 소리조차 듣지 못했던 것이다. 대문에서 그가 나를 가로막으며 물었다.
[어딜 가시나이까? 주인 나리] [모른다] 내가 대답했다. [그냥 여기를 떠난다. 그냥 여기를 떠난다. 그냥 여기를 떠나 내처 간다, 그래야만 나의 목표에 다다를 수 있노라] [그렇다면 나리의 목표를 아시고 계시는 거지요?] 그가 물었다. [그렇다] 내가 대답했다. [내가 <여기를 떠난다>고 했으렷다. 그것이 나의 목표이니라] [나리께서는 양식도 준비하지 않으셨는데요] 그가 말했다. [나에게는 그 따위 것은 필요 없다] 내가 말했다. [여행이 워낙 길 터이니 도중에 무얼 얻지 못한다면, 나는 필경 굶어 죽고 말 것이다. 양식을 마련해 가봐야 양식이 이 몸을 구하지는 못하지. 실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야말로 다시 없이 정말 굉장한 여행이란 것이다]
◈ "돌연한 출발"에 대한 짧은 해석
돌연한 출발은 목표가 있기에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 근거되었던 것을 파괴하고 흔들리는 삶 속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돌연한 출발”에서 들려오는 트럼펫 소리는 토대되었던 것을 파괴할 수 있는 자들만이 들을 수는 소리입니다. "돌연한 출발"은 우연이 나의 삶에 제기하는 의문을 출발점으로 삼는 것이기에 너무도 예측 불가하고 방향성마저 모호합니다. 이 여행은 불안과 공포를 동반합니다. 그러기에 주인의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출발이 불가능합니다.
하인이 알아듣지 못하자 주인은 몸소 마구간으로 들어가 말에 안장을 얹습니다. 주인이란 저 멀리 별을 보며, 지금 시간이 바로 그 시간이기도 한 사람입니다. 이는 현재를 미래에 도래할 자신을 예비하는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방랑자와는 다릅니다. 방랑자는 자신의 삶의 몰락과 소생을 버티지 못하기에 여기에서 저기로 떠나는 사람입니다. 카프카의 단편 “돌연한 출발”은 ‘익숙해진 토대에 낯섦을 기꺼워하는 여행’ 가들의 방식입니다.
휩쓰려 사는 사람은 소유한 양식이 준비되지 못하면 두려워하지만, 자신의 시간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굉장한 여행의 떨림이 있기에 다른 약속이 필요 없습니다. 하인은 말합니다. “나리께서는 양식도 준비하지 않으셨는데요.” 주인은 말합니다. “나에게는 그 따위 것은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