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판 해설
3장
1) 【 ‘옥스브리지와 펀엄은 왜 그렇게 차이가 날까?’. 이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지만 신빙성 있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탐구의 폭을 좁혀서 여성에 대한 역사 기록을 찾아봅니다. 울프는 역사책에 있는 여성의 기록과 픽션 속 여성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
셰익스피어 작품 속 여성 맥베스 부인, 클레오파트라에게는 존재의 독특한 개성이 나타납니다. 이와 같은 뛰어난 여성은 서구문학의 시원인 그리스 비극 속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 안티고네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문학 속 빛나는 여성의 모습과는 달리 역사적 기록에는 여성 자체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울프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문학에서는 영감이 풍부한 말들, 심오한 생각들이 그녀의 입술에서 흘러나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녀는 거의 읽을 줄 모르고 철자법도 모르며 남편의 재산에 불과했습니다.” 역사가의 글을 읽고 시인의 글을 읽으며 만들어진 여성의 모습은 기괴한 괴물의 형상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기괴한 괴물의 모습인 여성 존재의 실재성을 건지기 위하여 산문적(역사 속에서)이고 시적(시적 영감을 가진 존재)으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건너야 할 다리인 역사 속 여성의 기록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울프는 충분히 개연성 있는 상상을 합니다. 한 시적(영감이 넘쳐나는) 여성이 엘리자베스 시대(16세기)에 살았다면 역사는 그녀를 어떻게 맞이했을까?
2) 【 빛나는 지혜를 간직한 한 여성을 상상합니다. 그녀는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재능을 가진 그의 누이 주디스입니다. 주디스는 셰익스피어와 달리 관습에 따라 집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적 재능은 여성의 몸을 가진 주디스를 당대의 시간 속으로 끌고 나아갑니다. 】
“셰익스피어에게 놀랄만한 재능을 가진 누이, 이를테면 주디스라 불리는 누이가 있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를 – 사실을 얻기 어려우니까 – 상상해 보도록 하지요. ---- 그녀도 셰익스피어만큼이나 모험심이 강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세계를 알고 싶은 열망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요. 그녀에게는 호라티우스와 베르길리우스를 읽을 기회는커녕 문법과 논리학을 접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빛나는 시심은 시대의 규율에 의해 덮이지 않았습니다. 주디스는 가족의 식사 준비에 마음이 닿지 않았고 책을 읽고 글을 쓰거나 멍하니 창문 밖을 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써놓은 작품을 아버지의 눈을 피해 숨겨 놓기도 하고, 불에 태우기도 합니다. 결국, 그녀는 덫 씌워진 관습과 습성의 벽을 등지고 런던으로 가는 길을 선택합니다.
남자들처럼 술집도 가고 한밤중에 거리를 배회하며 세상을 읽어나가려는 갈망 앞에서 그녀는 모멸, 멸시, 적대감만을 경험합니다. 주디스는 우연히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배우이자 감독인 한 남성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임신하게 됩니다. 16세기, 주디스의 빛나는 시심은 이제 자신을 파괴하는 것 외에는 선택 길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주디스 셰익스피어는 “어느 겨울밤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지금은 에릴펀트 앤 캐슬(아들을 낳지 못하였다고 헨리 8세에게 파혼당한 첫째 부인 캐서린에서 유래된 이름) 바깥쪽의 버스 정류장 근처 교차로 어딘가에 묻혀 있습니다. 만일 셰익스피어 시대에 한 여성이 셰익스피어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이야기가 아마 이렇게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3) 【버지니아 울프는 18세기 이후 시작된 (남자) 작가들의 자의식이 담긴 고백문학과 자기 분석 문학을 살펴봅니다. 남성 작가들이라 하여도 시적 재능을 발휘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시련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시인으로 살아가며 겪게 되는 모든 것들은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가난, 병, 가족의 생계가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키츠, 플로베르 칼라일의 고뇌는 중력에서 벗어나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물질적 환경뿐 아니라 세상의 무관심은 그들(남성 작가)에게 견디기 힘든 좌절을 맛보게 하였습니다.
“(남성들의) 자기 분석과 고백을 담은 책에서는 저주와 고통의 비명이 솟구치지요. ‘비참하고 죽은 위대한 시인들’ - 이것이 그들 노래의 무거운 짐입니다. 이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가 나온다면 그건 기적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구상되었던 대로 온전하게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는 책(세상에 대한 분노를 거르고 예술성 자체만을 온전히 담은 책)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
버지니아울프는 여성의 작품을 찾아보기 힘든 서가를 보며 생각합니다. 여자에게는 “키츠나 테니슨, 칼라일처럼 가난한 남성들에게도 허용되었던 도보 여행이나 짧은 프랑스 여행, 누추한 곳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가족의 압제와 권리주장으로부터 보호해 줄 독립된 숙소”가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키츠와 플로베르와 그 밖의 천재적인 남성들이 몹시 견디기 힘들어했던 세상의 무관심이 그녀에게는 무관심 정도가 아니라 적대감이었습니다.”
(남성의 세계) 잔혹한 적대감에 세상 안쪽으로 들어가지 못한 이름 모를 수많은 에밀리 브론테, 제인 오스틴은 “악마에 사로잡힌 여자, 약초를 파는 현명한 여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들이 만든 (익명으로 남은) 민요를 침대 곁에서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있을 수도 있고요. 아니면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작품을 내기도 했을 것입니다. 커러벨(살럿 브론테의 필명), 조지엘리엇(메리 앤 에번스의 필명), 조르주 상드(오로르 뒤팽의 필명)가 그랬던 것처럼.
4) 【물적 어려움과 무관심에서 하나의 걸림도 티끌도 없이 예술의 정신을 온전히 펼친 사람은 존재했을까요? 버지니아 울프는 셰익스피어가 그랬다고 합니다.】
벤 존슨이나 밀턴에 대한 개인적 인생 이야기들은 후대에 전해 지지만 셰익스피어의 개인적 일들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은, 셰익스피어는 온전히 시적 재능만이 담겨 있는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라고 울프는 말합니다. 후대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펼쳐진 예술의 전개에 만 정신을 집중한 것입니다.
“예술가의 마음은 자기 속에 내재한 작품을 흠 없이 완전하게 풀어놓으려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서 셰익스피어의 마음처럼 작열해야 합니다. 그 안에 어떤 방해물이 있어서도 안 되고 태워지지 않는 이물질이 끼어서도 안됩니다.”
“아마도 셰익스피어에 대해서 –벤존슨, 밀턴과 비교해 볼 때 – 거의 알지 못하는 이유는 그의 원한이나 악의, 반감이 우리에게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항의하거나 설교하려는 욕구, 자신이 받은 모욕을 공표하거나 원한을 갚으려는 욕구, 세상을 자신이 겪은 곤경과 불만의 증인으로 삼으려는 욕구, 그 모든 욕구가 그에게서는 불타올라 소진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시는 방해받지 않고 자유로이 흐르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의 작품을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셰익스피어였습니다.”
내가 고른 ‘3장’의 명문장 :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키기 과정에서 참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세상은 작가의 작품에 무관심합니다. 그들이 정확한 문장을 찾기 위해서 무엇을 하였는지, 자신의 논지를 입증하기 위한 작업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더하게 됩니다. 이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가 나온다면 그건 기적입니다.
그러나 여성작가에게는 이런 시련들이 무한히 가중됩니다. 그녀는 키츠나 테니슨, 칼라일처럼 가난한 남성들에게도 허용되었던 도보 여행이나 짧은 프랑스 여행, 누추한 숙소 등 이 모든 것들에게서 배제되어 있습니다. 비물질적 시련은 더합니다. 그녀는 사회적 무관심 정도가 아니라 그녀에 대한 적대감과 마주칩니다.】
우리는 셰익스피어가 “리어왕”을 썼을 때 어떤 마음 상태였는지는 모르지만, 칼라일이 “프랑스혁명”을 썼을 때 무엇을 경험했으며 플로베르가 “보라리 부인”을 썼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또 키츠가 다가오는 죽음과 무관심한 세상에 대항하여 시를 쓰려고 했을 때 무엇을 겪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 위대한 작품이 작가의 마음에서 완전하고 총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을 거스리는 것들이 도처에 존재합니다. 일반적으로 물적 환경이 그것에 적대적이지요. ----게다가, 이 모든 곤경을 가중시키고 더욱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세상의 악명 높은 무관심입니다. ---- 세상은 플로베르가 정확한 단어를 찾든지 말든지, 칼라일이 이런저런 사실을 면밀하게 입증하든지 말든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자기 분석과 고백을 담은 책에서는 저주와 고통의 비명이 솟구치지요. “비참하게 죽은 위대한 시인들.” 이것이 그들 노래의 무거운 짐입니다. 이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가 나온다면 그건 기적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구상되었던 대로 온존 하게 손상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나는 책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이러한 시련은 무한히 가중된다고 나는 텅 빈 서가를 보며 생각했지요. 우선 조용한 방이나 방음장치가 된 방은 말할 것도 없고,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은 그녀의 부모가 보기 드문 부자이거나 대단한 귀족이 아니라면 19세기 초까지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지요.
아버지의 아량에 달려 있던 용돈은 옷을 사 입는 데나 족할 정도였으므로 그녀는 키츠나 테니슨, 칼라일처럼 가난한 남성들에게도 허용되었던 도보 여행이나 짧은 프랑스 여행, 누추한 곳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가족의 압제나 권리 주장으로부터 보호해 줄 독립된 숙소 등 그녀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것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었습니다.
그런 물질적 곤경도 만만치 않았지만 비물질적인 시련은 더욱 가혹했습니다. 키츠와 플로베르와 그 밖의 천재적인 남성들이 몹시 견디기 힘들어했던 세상의 무관심이 그녀에게는 무관심 정도가 아니라 적대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