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프카 단편 전집 - 출판사 “솔” 』
카프카의 단편 “나무들”은 메모 글 같은 아주 짧은 단편이니 먼저 전문을 읽어보자.
①“우리는 눈 속의 나무 등걸과도 같기 때문이다. ② 겉으로 보기에 그것들은 미끄러질 듯 놓여 있는 것 같아서 살짝만 밀어도 밀어내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③ 아니, 그럴 수는 없다. 그것들은 땅바닥에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④ 그러나 보라. 그것마저도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카프카의 첫 단편 소설집에 실린 글인데 인물도 나오지 않고 서사도 없다. 비교하자면 한 두 개의 색과 극히 단순한 형태만으로 구성된 말레비치의 작품 같기도 하다. 극한의 단순함 속에서 자신이 탐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실험했던 것 또한 비슷한 것 같다.
나는 카프카의 단편 “나무들”을 두 단락으로 나누어 읽었다.
첫 단락은 ①번 문장 “우리는 눈 속의 나무등걸과도 같기 때문이다.”이다. 그러나 ①번 문장은 쓰이지 않은 앞의 큰 여백과 함께 읽어야 한다. 카프카는 첫 문장을 “우리는 눈 속의 나무 등걸과 같다”가 아니라 “우리는 눈 속의 나무 등걸과도 같기 때문이다.”라고 쓰고 있다. “--과 같이 때문이다”가 만든 앞 여백에는 인간이 “눈 속의 나무 등걸”과도 같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서사가 존재한다. 그래서 앞의 큰 여백과 함께 첫 단락을 읽어야 한다.
두 번째 단락은 ②③④번 문장이다. 두 번째 단락에서 카프카는 두 번의 부정을 사용하여 “눈 속 나무 등걸”을 우리 인간에 비유하고 있다. ①번 문장에서 우리는 ‘눈 속 나무 등걸’처럼 살짝만 밀어도 밀어내 버릴 수 있는 나약한 존재로 비유한다. ②번 문장은 앞문장의 내용을 부정한다. “아니, 그럴 수는 없다” 눈 속 나무 등걸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지만 대지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중요한 것은 ③번 문장의 부정이다. ③번 문장에서 “그것마저도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는 인간존재를 ①번 문장의 비유로 사유거나, ②번 문장의 비유로 사유하는 것을 강력하게 저지한다.
아주 뻔한 예를 보자. 한 연인이 사랑에 힘들어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해보자. ①나는 그녀를 정말로 사랑한단 말이야, ② 아니야, 아니야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 ③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렇지 않아." 여기에서 ③번 문장 '그렇지 않아'는 앞에 말한 '사랑하지 않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①번의 '사랑해'와 ②번의 '사랑하지 않아'의 충돌에서 발생하는 방향성 잃은 모든 파편을 담고 있는 표현이다.
카프카의 단편 "나무들"에서 두 번째 부정도 그와 같다. 두 번째 부정인 ③번 문장의 "그것마저도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는 ②번 문장의 부정이 아니라 ①,②번의 비유의 틀의 뚫고 인간존재의 모호성과 복잡함이 사유의 품 안으로 다가오게 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부정다.
극한의 단순함으로 자신이 탐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실험한다는 것은 작가의 세계관의 토대가 되는 근원을 탐구하는 것과 같다. 가끔 작가들의 이와 같은 작품을 보곤 한다. 라울 뒤피의 전시회에 갔을 때이다. 뒤피의 그림을 시대순으로 보고 있는데 인생 후반부에 왔을 무렵이었다. 재현된 형태는 완전히 없었고 색의 조화로움 만을 실험한 뒤피의 작품이 한쪽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