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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벨 May 09. 2022

서로의 안식에 최선을 다하는 길

"아빠가 간암에 걸려서 수술날짜가 정해졌다."

늘 그렇듯 아빠와 엄마는 통보했다. 자식에게 1도 짐이 되지 않겠다던 분들이니 이상할리 없다. 그 소식을 듣고 봉은사에 가서 처음으로 부모를 위해 연등을 올렸었다. 평생 나를 위해 연등을 달았던 부모처럼 그분들을 위해 연등을 올리고 기도를 하는 게 기도빨이 더 있을 것 같았다. 남편과 만나기 전, 그때부터 매년 부모를 위해 연등을 올리기 시작했다. 매번 다른 절에서.




"일 년에 한번 같이 연등을 달아줄 수 있을까?"

어려운, 무리한 부탁이었다. 나 혼자 해도 되었을 일인데 굳이 남편까지 끌어들인 것을 보면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지 확인하고 싶었나보다. 남편의 종교는 불교가 아니었다. 물론 나도 불교가 아니다. 어릴적부터 부모가 절을 데리고 다녔지만 스스로 나의 종교가 불교라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하지만 모태신앙이 있는 그는 신을 섬기는 사람이었다. 미안하고도 억지스러운 부탁이었다. 



"올해는 여기에 달거야."

잠깐 나가자던 남편은 서울에서 한시간 반 거리에 있는 절로 향했다. 어버이날 전에 장인장모를 위해 등을 달고 싶었단다. 남편은 여행을 하면 꼭 절에 들렀다. 절에 가면 내 얼굴이 평안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시끄러운 그의 마음도 잠잠해졌다고 했다. 그렇게 결혼 9년차, 매년 전국의 어느 절에서 일년 내내 부모를 향한 우리 마음은 반짝이고 있다.




프라하의 어느 성당

"신은 마음 속에 있어."

종교에 대해 남편은 자기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시어머니가 내게 세례를 강요하던 때가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남편은 그때가 지금보다 더 효자였다. 그런데 종교와 관련해서는 캡틴아메리카 방패를 들고 시어머니와 싸웠다. 남편이 생각하는 종교는 신을 섬기는 일이었다. 강요해서는 안되는 신성한 일. 덕분에 신혼집에서 다음 집에 이사갈즈음부터 시어머니는 더이상 종교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프라하의 어느 성당

나는 성당에서 남편의 모습이 참 좋았다. 남편의 눈빛과 손짓, 옆 사람에게만 들릴듯한 남편의 목소리는 진실된 믿음을 향해 있었다. 성당에 들어가면 두터운 갑옷과 허물을 벗어놓고 남편의 가장 사적인 모습이 드러나는 듯 했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종종 성당에 들러 그에게 미사를 보자고 했다. 나는 들어갈 수 없는 그만의 동굴에 초 하나를 켜주고 싶었다. 부부는, 서로가 줄 수 없는 안식의 영역을 인정해야 한다.



부모님의 종교는 불교지만 그림을 그리는 엄마는 마더 테레사를 그려 시부모님께 선물했고 아빠는 추기경 기념 우편을 사서 남편에게 선물했다. 나는 남편을 위해 침실에는 그가 결혼 전부터 가지고 있던 십자가를, 현관에는 결혼  명동성당에서 내가 고른 십자가를 걸었고, 남편은 매년 나의 부모를 위해, 나의 안식을 위해 연등을 함께 단다.



종교는 중요하다. 하지만 서로의 안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이 우리를  부부답게 만들고 있다.






+날선 평가와 지적은 잠시 내려놓으셔도 괜찮습니다. 비방을 위한 공유는 사양하겠습니다. 아무런 평가 없이 그저 자유로워질 수 있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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