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생애 첫 내 집을 사다니…
요즘 날씨가 많이 춥다, 화씨 29도. 섭씨로 환산해 보니 영하 2도 정도 된다. 우습지만 미국 몇 년 살았다고 이제 화씨온도가 익숙하다.
매번 외출이나 여행에서 돌아오면 입에 붙어서 하는 말이 , 아고 뭐니 뭐니 해도 내 집이 최고지 라며 따틋한 내 집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미국집은 목조 주택이면서 참으로 다들 오래된 집이다.
우리 집은 1948 년도에 세워진 집이다. 그러니 정확히 76년이 된 집이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는 그 년도수에 기겁을 했지만 점점 익숙해져 100년 된 집도 지금껏 잘 쓰고 있는 미국 사람들을 많이 보다 보니
우리 집은 양호하네 하는 수준이 되었다.
지금껏 한국서 온 여러 가족이나 친구들, 아들딸 친구들도 하나같이 그렇게 오래된 집처럼 보이지 않고 되게 조목조목 야무지게 잘 지어진 집 같아 보인다 했다.
이 집을 산 지 5년이 돼 간다. 처음 Homeowner라는 말을 들었을 때 참 실감이 안 났다. 이 먼 미국 땅에서 여기가 진짜 우리 집이라니 …
간호사 이민 서류를 준비하면서 주민등록 등본을 보다가 처음으로 우리가 정확히 결혼 후 13번 이사한 사실을 알게 됐다. 한 장을 넘겨 두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남편은 신혼 초 개척교회 목사를 하면서도 그랬고,
우리 아들을 낳고 출산 며칠이 되지 않았을 때도 우리 집에 교회 청년들 뿐만 아니라 노숙인을 데려오곤 했었다. 내가 많이 싫어하고 싸움이 되니 어느 순간부터는 노숙인들에게 돈 2만 원을 주면서 여관에 가서 자라고 내 보내더니,
어느 정도 교회 안정이 되고부터는 노숙인들이 예배드리러 오면은 오천 원씩 새 돈으로 봉투에 넣어 목욕비로 주고 점심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부터는 이 교회 가면 돈 주고 밥도 줘라고 전국에 소문이 났는지 전철 타고 버스 타고 노숙인들이 120명 , 150명까지 모였다. 정부 지원금 한 푼 없이 자체 교회 예산으로 감당하다 보니 교회는 점점 빚이 쌓여 갔고 , 우리는 작은집 작은집을 찾아 13번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그때는 애들이 어려서인지 하루하루 어찌 보냈는지 힘든지도 모르고 노숙인 냄새로 가득 찬 예배당을 보며 그저 한주한 주를 버텨왔던 거 같다.
많이 버겁고 고달팠고 , 점점 빚이 늘어나고 일반 성도들이 많이 떠나게 되면서 ,
우리는 퇴직금으로 교회 빚을 정리를 해주고
미국 간호사로 이민 결심을 하게 되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그러니까 이민 자금으로 오천불 한국 돈으로 5백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을 들고 4명 식구와 개 한 마리가 뉴욕에 이민을 온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무슨 배짱이었는지 …
이곳 미국은 한국처럼 전세 개념이 없어 렌트 아니면 내 집을 사야 한다. 아니 목돈이 없는 우리 가족 상황에는 매달 열심히 벌어 감당할 수 있는 월세로 지낼 곳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잘 된 셈이었다.
다행히 뉴욕에서 , 롱아일랜드 안전하지만 저렴한
지역에 방 3개 욕실 1개 집을 2600불에 렌트를 해서
3년을 살았다. 한 달이 어찌나 빠른지, 1년 2년 3년 동안 월세로 낸 돈이 한국 돈으로 계산해 보니 얼추 1억이 되었다.
1억을 3년 새에 버리다니 … 최대한 빨리 집을 사는 것이 돈을 아끼는 것이다라는 생각에 나는 기도하면서 온갖 지혜를 모으고 집사는 방법을 공부하고 연구하였다.
그 당시, 처음 일을 시작하면서 병원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 얼핏 First Home Buyer benefits 이 생각났다.
HR 인사과에 가서 자세히 알아본 결과 병원에서 직원에게 주는 복지 중 하나로 처음 집을 사는 사람에게 지원금 5천 불과 집 수리비 2만 5천 불을 무상으로 지원해 준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보통 집값의 20% 를
down payment 보증금으로 현금을 지불해야 하지만 간호사라는 직업적 신용으로 3% 만 현금으로 down payment를 하고 97%를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고 30년 상환으로 갚으면 된다는 것이다. 이 processing을 하는데 총 6개월이 걸렸다. 수많은 서류들을 제출하고 사인받고 Loan banker와 변호사와 만나고 …
같이 일하는 다른 동료들이 참으로 대단하다며 자신은 병원 20년을 다녀도 이런 benefits 이 있는지도 몰랐다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나는 너무나 절박한 마음으로 정말 간절했기에 그 6개월 과정을 인내하며 감당했던 거 같다.
마지막으로 집 열쇠를 seller로부터 받는 closing day때 한 시간가량 거의 책 한 권 분량의 서류에 사인을 했지만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다. 이 먼 미국땅에 더 이상 이사 가지 않아도 되는 진짜 우리 집이 한국에도 없던 우리 집이 생긴 것이다.
작고 오래된 집이지만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등 따시게 누울 수 있는 집. 13번 이사하며 가득 메운 주소지들이 있기에 더욱 감사하고 소중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