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비 Navy Apr 13. 2020

회색둥이에서 흰둥이로

짬타이거 줍냥기 2


흰둥이를 처음 만났을 때, 분명히 원래 흰색 코트였을 이 녀석은 솜방망이와 꼬리가 꼬질꼬질한 회색둥이였다. 날렵하고 깨끗한 짬타이거들과 다르게 항상 느릿느릿, 게다가 머리나 꼬리에 나뭇잎을 하나씩 붙이고 나타나길래 궁금해서 몰래 뒤따라 가봤더니 내 사무실 근처 숲 속 나뭇잎 더미가 이 녀석의 보금자리였던 것이 밝혀졌다.

'연'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닿는구나 싶었다.


숲 속 군부대에서 페르시안을 만날 줄이야.




난 흰둥이의 본래 모습을 찾아주고 싶어서 사무실에 놀러 와 한숨 자고 갈 때마다 물티슈로 닦아주고 깨끗한 물과 사료로 극진히 모셨다. 숲 속 생활이 어찌나 고단하신지 물티슈로 슥슥 닦아도 하악질 한번 하지 않았다. 이 녀석은 어쩌면 그동안 배고파 기운이 없어서 그루밍을 제대로 못했던 게 아닐까. 한 며칠 밥도 든든히 먹고 잠도 편안히 잔 흰둥이는 그루밍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흰색 코트도 조금씩 원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깨끗해진 야생의 흰둥이가 나타났다!) (이게 많이 깨끗해진 거..)


이 사진은 스트릿 시절 흰둥이를 찍은 사진 중 제일 좋아하는 사진이다. 매일 이런 느낌으로 느릿느릿 걸어와 사무실 앞에서 내가 출근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드래곤볼에 나오는 고양이 신선(?) '카린'처럼.


 

"인간. 출근이 왜 이리 늦은 게냐. 빨리 사료!"


(흰둥아 선두 없어?)






흰둥이를 집으로 데려온 뒤 솜방망이부터 깨끗이 씻겨봤지만 묵은 때는 단시간에 바로 없어지지 않았다. 일단 누추한 내 집에 모시게 된 점이 미안하기도 하고(아무리 봐도 부잣집 고양이였을 것 같은데..) 무엇을 좋아하실지 몰라 입맛대로 골라 드시라고 사료도 더 좋은 걸로 계속 바꿔 드리고 간식도 여러 가지를 사다 드렸다. 이미 친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제부터는 나를 가족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누런 솜방망이)








본격적으로 그 해 가을이 찾아왔고 피부병으로 털이 빠져있던 흰둥이 뒷다리에 솜털이 보송보송 자라나자 꼬질꼬질했던 털들도 점점 깨끗해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회색둥이에서 흰둥이로, 이름에 걸맞은 모습을 갖춰가 주니 참 뿌듯했다. 보송보송해진 흰둥이는 예상대로 너무 예쁜 아이였다.


(화난 거 아님)(뒤에 인형 때 거 아님)



처음에 흰둥이를 데려오기로 결심하고 병원에서 이 녀석의 남은 시간이 어쩌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난 흰둥이가 고양이 별로 가기 전까지 남은 묘생을 배고프고 춥지 않은 곳에서 편안히 지낼 수 있도록 서포트 하겠다는 마음이 컸다. 물론 지금도 그 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 한 해 두 해가 가고 어느새 흰둥이와 세 번의 겨울을 보내고 세 번 봄을 맞이했다.


요즘엔 매일 퇴근하면 흰둥이를 안아 들고 하는 말이 있다.


"흰둥아 지금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누나랑 오래오래 살자"



(2018년 12월 31일 고등어 선물 받고 기분 좋은 흰둥이)



작가의 이전글 너, 내 집사가 돼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