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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Navy Apr 14. 2020

집사의 셀프 미용 도전기

짬타이거 줍냥기 3



본가에 있는 고양이 랑이(12세, 길거리 캐스팅)는 단모종 코숏이라 함께 사는 동안 털을 굳이 밀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흰둥이는 집으로 데려온 뒤 어디까지 털이 자라나 지켜보니 정말 하염없이 자라났다. 보통의 장모종 고양이들처럼 부드럽고 긴 털이 아니었다. 흰둥이의 털은 곱슬기가 강하고 피부에서 피지가 많이 분비되는 체질이어서 군데군데 털들이 떡지기 시작했다. 빗질도 쉽지 않아 떡지고 엉킨 털은 가위로 잘라주다 보니 못생김이 추가되었다. (미안)



(화난 거 아님) (흰둥이는 원래 이런 표정)






결심했다. 미용하기로.


고양이 미용은 마취하고 하는 곳이 많은데 심장병이 있는 흰둥이는 평생을 떡진 털로 산다고 해도 마취 미용은 절대 할 수 없었다. 마취 없이 한다고 해도 고양이 특성상 낯선 곳에서 미용을 당하는 게 보통 스트레스가 아닐 거라 생각해서 직접 해 보기로 했다. 실제로 많은 집사님들이 미용을 직접 하신다. 결심과 동시에 옆 동네 반려동물 용품점으로 달려가서 이발기를 사 왔다.


첫 시도에서행여라도 흰둥이가 아파하거나 다칠까 봐 털을 대충 밀다 만 수준으로 마무리했다. (미안2)


(2017 F/W 흰둥이 첫 누더기 st.) (좌절한 거 아님)




고양이를 오랜 시간 키워봤지만 미용은 처음이라 내가 몰랐던  하나 있었다. 고양이들도 털을 밀면 사람이 옷을 벗은 것처럼 수치심을 느낀다는데... (미안3)


미용 첫 시도에서는 내가 워낙 쫄보라 자신감 있게 밀지 못했다. 피부 가까이 미용기를 갖다 대면 왠지 다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털이 길게 자란 갈기 부분 위주로만 밀어냈더니 저런 누더기를 걸친 고양이가 되었다.


흰둥이에게 연신 사과했다.



(이발기 상자 위에 앉아서 항의하는 거 아님)






미용을 시작하면서 알게 된 점인데, 흰둥이는 나에게 한 번도 하악질을 한 적이 없다. 미용을 할 때도 목욕을 할 때도 순둥순둥 하게 가만히 있다가 다 끝나면 애옹애옹- 울었다. 싫지만 열심히 꾹 참고 있었다는 듯이.


집사와 다르게 흰둥이는 대인배였다.


이발기가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걸 알게 된 후로 이제는 자신감이 붙어서 피지가 많이 분비되는 턱과 꼬리 위주로 자주 밀어드린다. 흰둥이 몸 어느 부분에서 피지가 많이 나오는지도 알게 되었고, 털을 어느 정도 밀고 나서 약용샴푸로 목욕시켰을 때 피부 상태가 더 좋아지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그래서 무더운 여름에는 자주 전신 미용을 해 드리기도 한다.


흰둥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피부가 좋지 않은 이 녀석의 건강상태를 더 잘 체크할 수 있다는 이유로 흰둥이는 (원치 않는) 평생 무료 미용권을 획득하게 되었다. (미안4)



(생닭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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