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 후 흰둥이의 구내염이 좋지 않은 상태인 것을 병원에서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이 녀석에게는 심장병이 가장 큰 문제였고, 밥을 못 먹는 상태는 아니어서 우선 잘 먹는 것들 위주로 잘 먹여서 살도 찌우고 기력부터 회복시키기로 했다.
(짬타이거 시절)(배고픔이 통증을 이긴 고양이)
그런데 흰둥이의 구내염에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입냄새였다.
흰둥이는 기력을 회복하면서 틈 나는 대로 열심히 그루밍을 했는데, 내 곁에 붙어서 그루밍할 때마다 풍겨오는 구릿한 입냄새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가끔 내 손이나 얼굴까지 그루밍해줄 때는 정말 정말 고마웠지만.. 구릿한 침 냄새 때문에 흰둥이 몰래 씻고 오기도 했다.
(요염)
흰둥이와 함께 한지 1년 정도 지났을 때 나는 흰둥이와 함께 다시 도심 속 부대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동안 흰둥이는 체중도 정상 수컷의 수준으로 늘어났고, 이젠 집사를 하찮게 여길 줄 아는 평범한 집고양이가 되었다.
(퇴근한 집사를 반기는 흰둥이)
흰둥이는 어느 정도 건강을 되찾았지만, 구내염이 나은 것은 아니었다. 입냄새야 뭐.. 말할 것도 없었고, 염증 때문에 앞발로 볼을 비비는(?) 행동이 잦아질수록 구내염을 어떻게든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흰둥이가 다녔던 산속 부대 근처의 동물병원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큰 종합병원에서 다시 심장 초음파와 건강검진을 했다. 역시 구내염도 심하고 이빨 크기만 한 치석도 있었다. 하지만 그곳의 수의사 선생님도 가장 걱정하셨던 건 흰둥이의 심장병이었다.
(수술 전에도 쫄지 않는 대인배)
흰둥이의 구내염 치료는 이빨을 전부 뽑는 전발치 수술을 해야 되는데, 나이도 많고 심장병까지 있는 흰둥이에게는 너무 위험한 수술이었기 때문에, 수술 가능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사전에 할 수 있는 모든 검사를 진행했다.
(적금, bye)
모든 검사를 마친 후에 수의사 선생님은 흰둥이의 전발치 수술 성공률이 50%라고 했다.
한마디로 살 가능성 반, 죽을 가능성 반...
선택은 보호자인 내 몫이었다. 한동안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던 나에게 수의사 선생님께서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어쩌면 흰둥이는 심장병이 아니라, 구내염으로 밥을 못 먹게 돼서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살기 위해서 나를 찾아온 이 녀석.
나와 묘연이 닿은 이 녀석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었다.
2018년 10월 1일, 흰둥이는 발치 수술을 했다.
원래 계획은 전발치 수술이었지만 수술 진행 간 급격하게 떨어지는 흰둥이의 체력 때문에 치아 흡수 병변이 심했던 송곳니만 발치하고 수술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수술 후 약 20여 일간 흰둥이의 사진첩은 비어있다. 회복하는 흰둥이를 케어하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고, 아파서 울부짖는 아이를 보면서 도저히 셔터를 누를 정신이 없었다.
흰둥이는 수술 후 원래 늘 함께 자던 내 옆자리가 아닌 방바닥 구석 후미진 곳에서 잤고, 컨디션이 급격히 떨어져서 토하거나 설사를 자주 할 때는 화장실 안에서 하루 종일 웅크리고 있었다.
뒷다리에 힘이 없어서 주저앉은 채 변을 보고 나면 자존감 강한 흰둥이는 더욱 구석으로 숨었다. 흰둥이에게는 어쩌면 묘생 최고로 굴욕적이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와중에 집사는 흰둥이가 이러다 무지개다리 건너는 건 아닌가 하고 주책바가지처럼 울면서 지켜보고 있었으니..
다행히 흰둥이는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았다. 이제는 비록 이빨 빠진 (귀여운 앞니만 남은) 고양이지만 당당하고 자존감 높은 고양이로 다시 되돌아왔다. 물론 강렬했던 입냄새는 없어졌고, 수술 이전보다 밥도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살도 조금 더 쪘다.
아픈 심장 때문에 나와 다른 고양이들의 시간보다 빨리 흘러가는 흰둥이의 시간. 나는 이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삶의 의지를 보았고, 나 역시 많은 용기를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