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레 나의 삶을 마주하기

Part 9: 나는 네 덕분에 살아나고...

by 바람꽃

문득 ‘나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었던 분들은 어떤 분들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금세 네다섯 분의 얼굴이 떠오르며 그분들과 쌓아온 소중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20여 년간 한결같이 내 인생의 멘토님이 되어주신 분이 계십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을 정도로 바쁘신 분입니다. 그런 분이 나의 시답지 않은 이야기와 고민을 들어주신다고 가능한 시간을 내어 주십니다. 그분과 있는 시간에는 내가 ‘이 시간의 주인공’ 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분의 눈과 귀, 마음이 온전히 나에게 집중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그분의 존재 그 자체가 나에겐 힐링이었습니다.


박사과정 때 나의 지도교수님은 학과장, 상담센터장, 종교기관 사역자 등등 맡은 역할이 전부 메이저 급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5자녀를 둔 가장이었고요.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던 그분이 천천히 걸어 다니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 키가 거의 2미터였기 때문에 긴 다리로 빨리 걷는 그분을 따라가려면 저는 뛰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기억합니다. 나와 함께했던 미팅 시간에 그분은 한 번도 귀찮아한다든지 다른 생각 한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나의 학교생활뿐 아니라 삶 전반에 걸쳐 문제가 없는지 살피고, 전공 영역의 동료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글을 쓰다 보니 그런 분들이 나의 인생에는 여러 분 계시네요. 참 축복받은 인생입니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나에게 온전히 집중해 주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나만 바라보고 있구나.'

'나 이외의 그 어느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구나.'

'나와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저 사람의 삶에는 나만 있구나.'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이 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공감이고 경청이었습니다. 공감의 어원은 “들어가다”라고 합니다. 상대방의 삶 속으로 쏘옥 들어가는 겁니다. 그냥 맞장구 쳐주는 수준이 아니라 아픔을 느끼는 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실제로 아픔을 느끼는 당사자의 뇌와 공감해주는 사람의 뇌를 찍어보면 같은 부분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합니다. 나를 공감해주는 누군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회복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마땅히 보호받고 보살핌을 받아야 할 부모님으로부터 학대를 받는 등 어려운 상황에서 자랐음에도 자신의 존귀함을 잃지 않으며 건강한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연구가 있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일곱가지 공통점 중 하나가 자신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능력이었습니다.


학교가 끝났는데도 집에 안가고 자신을 챙겨주는 선생님 곁을 맴도는 아이들.

집에 안 들어가고 자신에게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주는 점원이 있는 가게에 들리는 아이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들 곁에 가능한 붙어 있으면서 집에서 받지 못하는 영양분을 조금이나마 섭취하려는 아이들의 눈물겨운 삶의 몸부림입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해 그 아이들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거였습니다.

그 연구를 접하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게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 건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공감이 어렵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공감한다면 상대방의 생각과 의견에 동의해야 한다’라는 오해일 것입니다. 공감한다고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전히 나와 그의 가치관은 다를 수 있습니다. 5년 단위로 삶의 계획을 세우고 이를 철저히 지켜가는 삶의 방식을 가진 나는 즉흥적인 ‘감’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는 친구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기도 힘들고 동의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감’이 와서 선택한 직장생활로 힘들어하는 친구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해줄 수 있습니다.


내 주변을 둘러봅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구일까?

자신의 이야기를 공감하며 경청해 줄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사람이 누구일까?


그런 사람에게 기꺼이 나의 삶의 일부를 내어주며 한 해를 마무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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