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레 나의 삶을 마주하기

Part 12: 본심

by 바람꽃

크리스마스 전날 받은 전화 한 통이 자꾸 신경 쓰입니다.

“내가 잘못 살았던 것 같아. 정말 가족만 위해 살았는데 다 부질없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다해 내 가족을 돌보았고, 배려했고, 챙겼는데 가족들은 오히려 그런 나의 마음에 비수를 꽂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런 계산 없이 나보다 내 배우자/부모/자녀를 좀 더 편하게 해주고 싶었는데… 정말 그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 내 몸이 피곤해도, 내 마음이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뒷바라지했는데… 뭘 바라고 한 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살아온 나를 향해 가족들로부터 원망과 비난을 들으면 정말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의도와 뜻을 상대방에게 관철시키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할 필요가 있는 걸까. 나와 내 가족이 항상 마음이 합해져서 살아가길 원하는 것은 나의 욕심이 아닐까. 나의 맘도 시시각각 변하기에 나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원하는지 모를 때가 많은데 상대방이 어떻게 늘 나와 같은 마음일 수 있을까.

때로는 평행선을 달리기도 하고, 나와 그의 삶의 곡선은 접점에서 한번 만나고 다른 방향으로 갈 때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상대방의 본심이라면, 또 나도 상대방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말입니다.


딸아이에게 자꾸 곰국을 끓여 먹이라는 시어머니 때문에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딸이 돌 지날 때부터 근 3년을 그 이슈로 힘들어했습니다. 옛날에는 어린아이들에게 곰국을 영양식으로 많이 끓여 먹였는데 요즈음은 거의 안 먹이는 게 추세입니다. 환경 문제로 여러 안 좋은 물질들이 쌓여있는 뼈를 고와서 먹이면 애들에게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3-40년 전 꽃 따먹고, 고드름 따 먹고, 아무 냇가에 들어가도 물고기들이 많았던 그 시절에 애를 키우신 어머님이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이해하실까요? 해외에 있기에 일 년에 한 번씩 보는 시어머니와 그 이슈로 갈등 겪는 친구를 보고 말했습니다. “그냥 어머님 오시면 들통에다가 곰국 끓여놔. 애가 그거 한두 번 먹는다고 뭐 크게 잘못되겠니?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일 년에 한 번 오시는 건데…그리고 한두 번 먹으면 입 짧은 니 딸이 그거 안 먹는다 할 거야. 손녀가 더 이상 못 먹겠다는데 할머니가 억지로 먹이시겠니?” 본인이 알고 있는 가장 좋은 영양식을 첫 손녀에게 먹이고 싶은 어머님의 본심에 초점을 맞추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어머님도 건강하게 딸을 키우고 싶어서 최신 정보를 검색하며 최선을 다해 키우는 며느리의 진심을 바라본다면 곰국을 내려놓을 수 있으실 테고요.


부부 사이의 문제에 단골손님인 ‘치약 짜는 법’도 그렇습니다.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서 쓰느냐 아니면 잡히는 대로 짜서 쓰느냐의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된 갈등은 경제관념, 가정교육 영역까지 번져 나갑니다. 치약 하나마저도 아껴 쓰고 저축해서 가정을 잘 꾸려나가고 자식들 뒷바라지를 조금이라도 더 해주고 싶은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에게 큰 실망을 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죽고 싶다’까지 생각이 확대됩니다. 이런 나의 숭고한 마음을 상대방이 이해해주고 인정해줬으면 하는 바람에 자꾸 상대방을 찔러댑니다. “내 말 들리냐고!” 그런데 이미 마음이 상해버린 상대방에게 나의 말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뿐입니다. 내 생활방식을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든 중간에서 짜든 조금도 안 남기고 깨끗이 쓴다면 그걸로 ok입니다. 내가 너를, 네가 나를 "최고"라 여기는 마음만 확인한다면 치약 한 개 가지고 나를 우습게 안다는 둥의 불필요한 기싸움, 자존심 대결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직장맘이라 입주도우미를 쓰는 분이 있습니다. 아이는 당연히 엄마보다 입주도우미에게 달려갑니다. 넘어져도, 졸려도, 무서워도 엄마가 아닌 ‘할머니’를 찾습니다. 아이 엄마가 아이와 좋은 시간을 가져보고자 큰 맘먹고 반차 내어 집에 일찍 왔는데 웬걸요. 아이는 입주도우미 분 옷만 잡고 다닙니다. 엄마의 마음은 무너집니다. 아이에게 서운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아이에게 ‘내가 엄마니까 어서 나한테 와!’ 요구할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가지고 있는 엄마에 대한 마음을 알기에 기다려주는 수밖에요. “엄마를 이모님처럼. 이모님을 엄마처럼”여기는 아이가 가장 효녀 효자라는데 우리 애는 최고네! 웃어넘기며 아이를 기다려주는 여유를 가지고.


올 연말연시에는 내 가족들의 진심을 바라보고 귀 기울여 봐야겠습니다. “내가 정말 어렵고 힘들 때 기대도 될까요?” 이 질문에 ‘당연하지’라는 답을 준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저 사람이 내 마음을 오해하고,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등등의 서운함, 배신감, 좌절감 등은 잠시 접어두렵니다.


나의 마음도 살펴봐야겠습니다. “내 손 잡아줄래? 날 좀 안아줄래?”라는 질문을 받을 때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그 손을 꼭 잡아주고, 품에 꼭 안아줄 수 있을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 가족의 범위가 새해에는 조금 더 넓어져서 올해보다는 조금 더 많은 사람을 그렇게 품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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