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평생 풀리지 않는 숙제. 통번역 기술이 발달해 앞으로는 영어를 하지 못해도 불편 없이 살 거라는 말들은 하지만 아직까지는 큰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왜 옛날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아서 전 세계에 여러 가지 언어가 생기게 된 거야! 성경책을 보며 혼자 씩씩 거린 적도 많다.
70년대생 치고는 영어를 일찍부터 접한 편이고 언어감각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24에 미국으로 유학 가서 학교 공부는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던 정도였다. 여하튼 외국생활 10여 년 하면서 이런저런 케이스들을 많이 본 경험을 나누고 싶다.
1. 어학연수
영어를 배우고 싶어서 어학연수를 가는 건 반대. 영어를 못하는 애들만 모아놓은 교실에서 영어 못 배운다. 이미 2개 국어 이상을 하는 아이들은 그런 환경에서도 영어를 잘 배우는 애들이 있다. (영국에서 살던 적이 있는데, 영어를 더듬더듬 말하는 17살 스위스 여자애 둘이 있었다. 영어 빼고 4개 국어 능통. 한 달이 지나니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더라...) 이미 많은 언어에 능통하고, 또 어순이 영어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애들은 ESL 같은 프로그램 통해서도 영어가 확 늘지만 한국 사람은 아닌 듯하다. 한국 학원에서 영어 배우는 게 더 빠르다. 어학연수의 목적은 "그 나라의 문화를 접해보기"가 맞다고 생각한다. 이미 달달 외웠던 단어, 문장, 어구들을 현지에서 문맥에 맞게 실제로 사용해보기. 그 나라에서 직접 생활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뉘앙스, 라이프스타일등을 경험해보기. 그럼으로써 내가 알았던 영어를 더 세련되게, 적시적소에 적합한 표현으로 사용하기. 이게 어학연수의 목적이면 성공적인 어학연수를 할 수 있다.
'새우깡'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우리는 단순히 과자 이름. 이렇게만 끝나지 않는다. 70년대 이전 생이라면 새우깡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본 과자라는 기억이 있을 거고. 일반적으로 술안주로도 연관이 된다. 이건 한국에서 생활해봐야 아는 것들이다. 새우깡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어릴 적 추억, 새우깡의 냄새와 맛이 불러일으키는 이런저런 기억들. 미국에 골드피시라는 과자가 있다. 공갈젖꼭지 물고 다니는 어린 아가들이 작은 손에 꼭 쥐고 다니며 먹는 그런 과자다. 직접 살아본 사람만이 골드피시가 주는 느낌을 안다.
2. 크게 소리 내어 읽기
예전에 박찬호 선수가 인터뷰를 하는데 "몇 년 미국서 살았는데 한국어 못한다"며 사람들에게 안 좋은 소리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내가 직접 살아보니 그렇더라. 한국사람 거의 없는 환경에서 한국어 쓸 일 없이 몇 년 살다 보면 한국말이 바로 안 나온다. 머리에서 뜻은 생각이 나는데 입 밖으로 소리가 제대로 안 나오고, 정확한 단어들이 생각이 안 난다.
바꾸어 말하면... 영어를 매일 말하지 않으면 아는 말도 입 밖으로 안 나온다. 한국어와 영어는 발음하는 입안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아주 쉬운 영어도 갑자기 말하려면 발음이 정확하게 빨리 나오지 못하는 거다. 굳이 어려운 책을 읽지 않아도 된다. 쉬운 책이라도 매일매일 정확하게 소리 내서 읽어보자.
3. 어린이 책 외우기
4-5살 어린이들이 읽는 영어동화책을 읽어보면 깜짝 놀랄 거다. 첫째,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아서 둘째, 내가 아는 쉬운 단어들만 쓰여 있는데 뜻을 모르겠어서. 유아동을 위한 동화책은 일상생활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쉬운 단어들로 쓰여있다. 그런데 우리는 시험용 단어, 어구들 중심으로만 배우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막상 free-talking을 하려면 말이 안 된다... "이 글에서 말하는 주제는..."이런 문장은 읽고 쓰고 듣고 말할 줄 알면서 "바람 부는 어느 날 오후, 아기가 새근새근 잠이 들었습니다"라는 일반적인 말은 도대체 말할 줄 모르는 거다. 그러니 외국인이랑 대화가 안될 수밖에... 오늘부터 어린이 책을 읽고 외우자. (애들 책 쉽게 외울 수 있음). 나의 영어에 생명력이 생김을 느낄 수 있을 거다. 참, 외국에서 발행한 어린이 동화책 읽기. 우리나라에서 지은 영어책은 가끔 어색한 영어가 있어요~
4. 나에게 필요한 영어는 어떤 영어? 전략 세우기
성인이 되어 영어를 배우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실을 인정하고, 가장 효율적인 전략을 세워야 한다. 나는 어떤 영어가 필요한가? 비즈니스 영어? 생활영어? 학술적인 영어? 이메일/서류 등의 writing중심? 나의 필요에 맞는 영어를 공부하는 게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생활영어를 잘하고 싶다면 미국 드라마 통으로 외우기. 무식하게 외우는데 당해낼 장사 없다. 참고로 ESL 첫 시간에 받은 강의계획표의 syllabus라는 단어도 몰라서 사전을 찾아야 했던 한 친구는 영화 1편 통으로 한 달 만에 외우기 같은 식으로 엄청나게 모든 걸 외워버렸더니 1년 후에 그 학교에서 통역을 맡았다.
5. 최고가 되기
세계적으로 권위자인 한국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석박사 및 연구활동을 독일에서 하신 분이라 그분의 한국식 & 독일식 영어는 더더욱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그분의 수업은 바로 수강신청 마감. 왜? 그분이 그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Top이니까. 그분의 contents가 너무나 거대하기에 언어의 부족함 따위는 아무 문제가 안되는 거다. 알아듣는 건 나의 몫인 거다. 못 알아들으면 내 손해인 거다.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내 분야에서 내가 top이면 그걸로 끝이다. 나의 발음이 부정확해서? 악센트가 있어서? 오히려 나의 매력이 된다 (7살에 이민 간 내 sister-in-law는 자기보다 2살 어린 동생한테 놀림당한다. 언니 영어 할 때 한국 악센트 있다고. 성인인 우리는 네이티브처럼 말하지 못한다). 영어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는 사람이 가진 콘텐츠가 더 중요하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내가 공부하고 일하는 분야는 상담분야라 더더욱 언어가 중요하다. 그런데 언어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음을 깨달은 경험이 있다.
내가 힘들어하는 이슈가 있었다... 나의 어려움과 상처를 오픈해도 이해해주는 사람을 못 만났었기에 혼자 찌그러져 울기도 하고 삭히기도 하며 지내던 때에 한 영국 할머니와 일대일 시간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는 영어권에 있은지 2년 차였기에 그다지 영어가 훌륭하지도 않을 때였다. 별 기대 없이 나의 고민을 이야기하는데 이 할머니가 내 마음을 그냥 알아버리시더라...
언어 자체가 전부가 아니구나. 언어 자체는 일부구나. 아주 자세하게 세밀하게 나의 맘과 생각을 이야기해도 1%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인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런데 내가 영어로 충분히 표현하지 못해도 나를 이해하고 받아주는 영국인 할머니가 있구나.
영어를 문법에 맞게 고급 단어를 써가며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우선이 되어야 하는 것은 내가 대화하는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야 한다.
당신이라는 사람은 소중합니다.
당신과의 시간을 귀하게 여깁니다.
지금 여기, 당신과 함께 하기 위해 내가 있습니다.
이제 이야기합시다. 우리 함께 성장하기 위해...